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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Oct 23. 2024

도시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는가?


* 해당글은 저널서울에 기고된 글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도시탐구생활] ② 자신만의 시선과 해석으로 도시를 탐구하는 사람들

오근세의 길 영상캡쳐 ©김재민이

도시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저마다의 관점과 해석으로 다양한 시선이 쌓여갈 뿐이다. 스쳐 지나갈 법한 것들을 붙잡고 들여다보면서 발견하는 시간을 통해 생각이 확장된다. 도시에 쌓인 이야기 주제와 범위는 무한정 넓고 많다. 각각의 이야기는 도시마다의 특성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개인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연결되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도시를 바라보는 행위는 도시의 삶에 대한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단계적 탐구 통해 자신만의 관점과 세계를 구축하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타인의의견과 시선에서 벗어나 나만의 도시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읽어 내려는 시도는 재미만 추구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더 나아가 스스로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기반이 되거나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도시와 나의 관계, 도시와 도시 간 관계와 상호작용의 이해를 통해 관계적 범위가 확장되기도 한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도시와 도시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써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연관성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의미와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을 덧붙이고, 끊임없이 도시를 파고든다. 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하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가지처럼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과 사고를 확장한다. 각자가 경험한 도시에서 어떠한 것을 발견하고 어떠한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당사자들의 글과 말, 생각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사례1) ‘변두리’에 대한 해석과 시선 by 김재민이 작가(관계도시, 인천)


오근세의 길 영상캡쳐 ©김재민이


변두리를 위한 변명
한 나라의 수도가 아니라 해도 웬만한 대도시라면 주변부는 꼭 존재할 것이다. 주변부 중에서도 꼭 집어 변두리라 하면 나에게는 창고형 매장이 있는 곳이라 하겠다. 과거엔 가구 단지, 요즘은 창고형 할인 매장이나 아울렛 등이 있는 곳이 변두리다. 덧붙여 링 로드, 대도시를 원형으로 휘도는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살짝 외곽이라면 변두리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 외곽이다 보니 시내에서 보기 힘든 큰 차가 자주 다닌다. 공장을 드나드는 차, 쓰레기를 밖으로 나르는 그런 차들 말이다. 큰 차가 다니면 큰 먼지가 일고, 소음도 따라오게 된다. 매일 아울렛 가는 걸 즐긴다면 괜찮겠다.

그렇지만 서울의 서촌 같은 골목 골목 아기자기한 상점은 변두리인에게 사치스러운 풍경이다. 변두리 산다고 꼭 약자는 아니겠지만, 이동으로 고통 받는 정도 하나만 보면 단연코 변두리민이 서울 시민보다는 약자이다. 변명하자면 심적으로 위축되기도 쉽고, 어딜 가나 시간이 모자라니 사람이라면 응당 갖고 싶은 그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다. 변두리인에게 서울 사는 사람이 무슨 공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 너 얼마나 서울 오가기 힘드니', 겪어보지 않고 이런 말하기도 객쩍고 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주니 감사하다. 약자에 공감하기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차라리 서울이 보이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을, 부러운 걸 다 가지고 있는 대도시는 그래도 차 한두 번 갈아타고 한 두시간이면 쉽게 닿을 수는 있었다. 단지 본연의 나로 돌아오는 그 과정, 분수를 깨닫는 여정을 (직장인이라면 거의 매일 한 번씩) 뼈아프게 겪어야 해서, 뭐랄까, 아무래도 변두리 내면화가 깊게 이루어진다. 일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간혹 다니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광역시 같은 지역의 중심지 보다는 그 광역시의 주변부에 또 눈길이 간다. 서울과 타지역 광역시 비교는 종종 듣는다. 그렇지만 서울 주변부와 광역시 주변부, 변두리끼리 비교나 유사성 찾기는 어떨까? 이제 과거를 청산(?)하고 서울 울타리를 넘어 도시민인척 살고 있는 기만자이긴  하지만 중심으로 향하고 싶었던 애타는 마음과 결핍, 부러움과 절망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상처는 아니다. 그러나 가진 자, 갖춰진 자가 내뿜는 은근한 우월감은 아직 또렷이 생각난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서울을 살짝만 찍고 매일 변두리로 돌아오는 그 귀갓길이 바로 나에겐 변두리 정서이다.

*김재민 작가님이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https://youtu.be/skvnOiYNcac

오근세의 길, 영상기록버전 "오근세씨를 찾아서" ©김재민이 작가
변두리의 즐거움
요즘 한창 ‘소인 연구’ 중이라서 변두리도 소인(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른 동네는 잘 모르지만, 인천이라면 자조(自嘲)의 정서가 먼저 생각난다. 주성치 배우가 영화에서 보이는 정신 승리 쓴 웃음이 그것이다. 또 한 종류 웃음이 있다면 나, 혹은 우리동네가 어쩌다 어디선가 언급될 때 갑자기 들떠 흥분하는 함박웃음도 있다. 간혹 누가 더 힘든가, 어디가 제일 터프한 동네인가? 경쟁이 벌어질 때 우리 동네가 제일 거칠고, 낙후되었다며 기묘한 승리감에 들뜨다 보면 이 두 웃음이 함께 나오기도 한다.

 즐거움까지는 아니라도 ‘아무도 내가 사는 곳을 알지 못한다.'라는 사실은 마치 내가 비밀이 있는 양 잠깐 기분 좋기도 하다. 실상은 그냥 모르는 것이나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설정으로 어느 정도 즐겁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변두리의 즐거움은 서울 가는 달콤쌉쌀, 비터 스윗한 기쁨이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장병같이, 연차 쓰고 동남아 가는 직장인같이, 우리의 서울행은 끝이 보이지만 그래도 신나는 여행. 유행에 뒤떨어질지 모르는 옷이라도 신경 써서 차려입고 전철과 버스에 몸을 싣는 그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김재민 작가님이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사례2) ‘좋고 나쁘다.’가 아닌, 객관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기 by 낯선 작가

(관계도시 서울, 원주)


경계인의 원주살이 글 중 일부(낯선작가) ©매거진 점점


“아이들에게 큰 도시가 좋고, 작은 도시는 덜 좋다는 식의 마음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서울에 살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 ‘좋고 나쁘다.’라기보다, 객관적 사실을 이야기해 주려고 해요. “우리가 어딘가 가려고 할 때 차와 사람 이동량이 많아서 오래 걸렸었지, 자연을 보는 것이 어려웠지, 반면 원주는 그렇지 않지. 서울에서는 지하철과 버스를 많이 이용했었지, 원주에서는 지하철과 버스를 운영하기엔 인구가 적어서 자동차를 주로 타게 되지,” 이런 식으로요. 서울에 살았을 때 가족에게 의미가 있었던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원주에 살면서 생겨난 소중한 공간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눠요. 나중에 외국에 살게 될지 다른 도시에 살게 될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서울과 원주의 소중했던 공간과 비슷한 곳을 또 찾으면 된다고요. 어느 곳에 살게 되더라도 관광지처럼 지나치지 않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고 있어요.” _ 낯선 작가님과의 인터뷰 중 내용 일부 발췌

서울에서 원주로 이주한 낯선 작가는 아이들과 종종 서울을 방문한다. 큰 건물을 보고 감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목격하며 서울과 원주가 다른 도시임을 다시금 인지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이때 ‘어디가 더 좋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하는 흐름과 맥락을 설명한다.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태도를 이야기 해주는 것은 도시마다의 본질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좋은 방법이다. 애초에 서로 다른 도시를 비교·평가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순간, 경쟁하게 되고, 또 다른 편견과 고정관념에 갇히게 된다. 장단점을 받아들이되 ‘장점을 활용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오히려 특색이 잘 드러날 것이다.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도시가 없다.’라는 생각으로 도시를 이해하는 것은 자신만의 관점과 시선을 만들어갈 수 있는 출발인 것이다.


사례3) 보이진 않지만 사라진 것들에 대한 관심 가지기 by 여상희 작가

(관계 도시, 대전)

막다른 골목 사라진 집-목동3지구에 대한 기억과 기록. ©여상희 작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도시가 현재에 알고 있는 부분 말고, 과거에 어땠었는지를 알아가던 중에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런 것에 비해 현재의 우리는 평안하게 살고 있잖아요. ‘지금 보이진 않지만, 사라진 것들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하고 있던 터에 재개발 구역도 보게 된 거죠. 당시의 혼란했던 시기를 이젠 느낄 수 없지만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재개발 현장 가면 주민들이 가끔 6·25전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그만큼 혼란스럽다는 의미입니다.) 전쟁 때 폭탄 터져서 막 도망가고 피난 가듯이 이사를 가는데, ‘이거 뭐지?’ 싶은 거죠.

심지어, 재개발 대상지인 마을에 관심을 두고 들어가지 않으면, 옆 마을 사람들은 지금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모릅니다. 관심이 없고, 옆 동네에 살아도 반대 방향으로 출·퇴근을 하거나 생활을 하면, 이쪽 동네가 없어지는지도 몰라요. 비주얼적으로도 비슷비슷한, 재미없는 동네라고 생각했었는데, 근대 아카이브즈 쌤들 만나고, 역사 공부 좀 하면서 ‘아…….대전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알고 보면 참 파란만장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눈여겨보지 않았던 건물들. 오래된 집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아, 이게 이런 의미를 가졌고, 앞으로 볼 수 없구나.’ 이 생각을 하니까 재개발 구역 같은 경우 특히나 집의 유형이라든지, 거기서 버려지는 것들 이런 것들 보니까 아쉬웠죠.”
_ 여상희 작가님과의 인터뷰 중 내용 일부 발췌
막다른 골목 사라진 집-목동3지구에 대한 기억과 기록. ©여상희 작가

여상희 작가는 시간과 역사가 쌓인 동네가 사라지는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버려지는 물건과 현장을 통해 대전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혼란스러웠던 과거의 순간들이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과거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이 현재에도 진행 중임을 확인하게 되면서 더욱 더 적극적으로 도시에 개입하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전의 근·현대사를 비롯하여 대전에 살았던, 살고 있는 개인의 미시사에도 관심을 두고, 삶과 도시와 역사를 잇는다.


이처럼 여러 사례들을 통해 끈질기게 자기만의 해석과 관점을 가져가면서 재미 이상의 경쟁력을 발견하고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또 다른 문이자 미지의 세계로 탐험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문을 열고, 조각난 이야기를 발굴하며 하나씩 맞춰 가면서 누릴 수 있는 새로움과 기쁨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결국, 도시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그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관계 맺은 사람들이다.


‘도시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정작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있는지 보지 않는다면 ‘앙꼬 없는 빵’처럼 무언가를 계속 쫓아만 가는 도시로 밖에 남을 수 밖에 없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대해 무엇을 보고, 느끼고, 즐길 것인가?’를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재미가 아니라 각 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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