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은평시민신문과 함께 진행한 기획취재 <오래된 도시조직의 공존방안>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정체성 있는 도시계획 위해서는, 실사용자의 목소리로부터
'길과 골목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염두하고 블록 단위로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 진정성을 담아 도시 조직 보존 방법 고민 필요
도시의 재개발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전진일까, 아니면 과거의 소중한 기억을 지우는 일일까? 도시조직은 도시 내에서 사람, 공간, 건축물, 인프라, 사회적·경제적 활동 등이ᅠ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배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인간활동과 상호작용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도시조직은 이러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도시 전체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 할수 있게 만드는 체계로 도시조직의 변형은 도시의 정체성과 기능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를 어떻게 보존하고 발전시킬 것인지가 도시계획과 정책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최근 을지로3가 일대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상가·철공소 상인·기술자들이 모여 도심 산업 생태계를 이루던 자리에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던 골목은 사라지고 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크게 변화를 맞이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몇 년간 서울 중구 입정동 상인·기술자와 연대하고 현장에서 목소리를 낸 청계천 을지로 보존연대 안근철 활동가를 만나 도시조직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짚어보고 현 상황에 맞게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해 나갈 수 있을지 의견을 들어보았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도시계획 공학 전공이고, 도시 참여형 및 정체성 계획에 관심이 있습니다. 마을 만들기, 도시재생 주민 참여 사업 등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계획 할 때 도시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가 드물어요. 30년 이상 거주한 세입자 기술자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풍경과 경관을 만들며 공간을 사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과 기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체성 있는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실사용자의 목소리와 생활방식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Q. 청계천·을지로 보존 연대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9년에 철거 예정이었던 서울 중구 입정동 조사 작업에 참여했는데 작업 중에 순식간에 건물이 철거되는 것을 목격했어요. 조사 대상지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조사하는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때는 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는 없었지만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관심 있는 사람 20~30명으로 구성된 초동 모임이 있었어요. 제가 도시계획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는 비판의식이 있었어요. 학교에서는 “도시 역사나 정체성이 중요하다”라고 하는데 정책이나 현장에는 전혀 반영이 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 지점이 아쉽기도 하고 부채 의식 같은 것이 있었죠.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관련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Q. 도시조직보존이 어떤 면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나요?
조사하는 건물마다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지 듣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꼭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도시환경 측면에서는 개별 단위 건물 보존보다는 조직보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건물이 일제강점기 가옥이면, 길·필지는 조선시대 후기 때부터 있던 겁니다. 길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된 건 아니지만 필지가 합필되거나 골목이 생겨나는 등 필요에 의해 변형되었습니다. 이때 건물과 골목이 집합적으로 보존되어야 기존 분위기가 유지됩니다. 그래서 ‘길과 골목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염두에 두고 블록 단위로 보존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청계천·을지로 일대 도시조직**이 현재까지 유지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청계천·을지로 일대가 재개발 사업 지구로 정해진 것은 1970년대인데, 건물이 철거될 것이라 소유주들이 개·보수를 하지 않습니다. 건물이 노후화된 부분이 있고, 임대료가 저렴해요. 형태를 변형시키면서 없던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화장실처럼 필요한 시설인데도 없앤 경우도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도시계획·정치·개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섞여 있어요. 도심 산업 기술자분들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도 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하면서 사용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철문을 달거나, 창고로 사용하거나, 작업장이 좁은 곳은 골목길 공간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환경을 개선해 온 거죠. 때로는 사유지가 공유지가 되기도 하고, 시간대별로 다르게 사용하도록 규칙성을 부여하면서 의미를 만들어 갔습니다.
Q. 시민이 청계천·을지로 일대 도시조직의 의미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요즘 ‘걷고 싶은 도시’, ‘보행 도시’라는 키워드가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보행 관련 선행 연구가 있는데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보행을 활성화하기 위한 직선의 길보다 보행의 재미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건물 1층에 보행 행위와 연결될 수 있는 용도의 상점이 있으면서 역사가 있으면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을 것이고 앵커시설도 만들고요. 시민 보행권과 일상성이 지켜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편익이 경제적 가치보다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책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해야 하는 거잖아요. ‘걸으세요’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걷고 싶다’고 마음먹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도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사동에 길이 하나 있는데, 조선시대 후반 지도에는 다리가 표기 되어 있어요. 조선시대에는 이 길이 큰길이었거든요. 생태나 용도에 맞는 다양한 것들이 있어서 이 길을 연결하여 활성화시키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매력적일 것 같아요. 앵커시설도 만들고요. 시민 보행권과 일상성이 지켜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편익이 경제적 가치보다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보행 일상권, 15분 도시 만들겠다.’라고 정책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해야 하는 거잖아요. ‘걸으세요.’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걷고 싶다.’고 마음먹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도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도시조직: 도시ᅠ내 사람, 공간, 건축물, 인프라, 사회적·경제적ᅠ활동ᅠ등이ᅠ서로ᅠ연결되어ᅠ있는ᅠ구조
Q.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보존해야 할까요?
을지로·노가리 골목의 경우, 야장이 원래 불법인데, 합법화시킨 사례예요. 중구청에서는 상권 활성화 측면에서 다양한 노포들이 상생·성장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특정 가게가 골목을 독점하다시피 해서 영업하니까 여기는 도시 다양성 측면에서 무너졌다고 판단해서 취소된 거거든요. 좋은 의도로 시작한 것이지만, 과정에서 왜곡돼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재개발 사업 이후에는 ‘골목 흔적 남기기’ 사업을 진행하도록 했는데, 형식적으로만 표현됐어요.기존 골목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땅에 단순히 페이빙**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행자가 걸을 때 경험하는 느낌을 전하기 위한 휴먼 스케일적인 요소가 필요해요. 안 하는 것보다는 개선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면 좋은 사례로 볼 수는 있겠죠. 그만큼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게 되니 소유주 입장에서 반응이 있으면 진정성 있게 도시 조직을 남길 수 있도록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요.
** 페이빙: 땅에 널돌 등을 깔아 만든) 포장된 표면, 포장재
Q. 도시조직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지는 부분도 있는데, 보존하는 것이 유효할까요?
입정동과 산림동의 경우, 주거지였다가 기술자들이 들어오면서 공간에 적응하고, 적극적인 개입의 결과입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고 상황에 맞게 활용합니다. 도시의 역사성, 정체성을 이어가는 것이 좋은 도시계획이고, 매력적이고 경쟁력있다고 여겨진다면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자원이자 요소일 수 있는 거죠. 관련 법도 동시에 작용한다면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재개발사업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기술자들이 골목에 면한 1층 높이의 기존 공간과 다르게 5~6층 높이 건물로 이동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설 측면에서는 좋아졌는데 서로 소통하고 마주할 기회나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문을 닫아도 유리문이어서 지나가다 보면 뭐 하는지 보이고, 가다가도 마주치면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은 문이 닫혀 있고, 열고 들어가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재개발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20~30년간 관계 맺은 커뮤니티가 와해되기도 합니다. 기존 생태계를 유지하고 일하던 사람들이 밀려나는 게 아닌 공존하면서 다양한 의견이 모이고, 시민 참여 기회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일방적으로 재개발을 진행하니까요. 갈등하는 시간 대신 이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 쓰고,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공동체 이익도 생각하면서 조직이나 거버넌스를 만들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좋겠습니다.
Q. 청계천·을지로 보존 연대 활동이 지역 정체성 혹은 고유성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까요?
정책에 반영되기도 하고, 기술자도 만나고, 기자회견도 같이 하면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담겨 의미가 있었습니다. 실사용자 입장에서 더 생각하게 된 부분도 있고 관점도 바뀌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시민활동에 대해 잘 몰랐는데, 청계천·을지로 보존 연대 활동 통해 알게 된 겁니다. 활동 초반에는 “사람들이 변할까?”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변하는 게 보였고 그때 시민 단체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한 사람이 열 사람 되고, 열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을 변하게 하면 문화가 되는구나. 그렇게 변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변하면 사회도, 도시도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변한다. 또 생각했던 것보다 금방 변한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그래서 사람을 더 만나려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Q. 을지로·청계천 보존 연대는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명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이런 것을 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나눈 것들은 있어요. 건물 설계할 때 ‘기존 도시 조직이나 골목 환경이 반영된 건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같이 논의하는 참여형 설계와 물리적인 영역에서 더 나아가 변화된 환경에서 적응하고 영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를 해보면 좋겠다고요. 상생 지식센터를 계획할 때도 상인들이 승강기 규모나 무게에 대한 부분을 요청해서 반영되었거든요. 또, 사람들이 찾아 올 수 있도록 홍보 과정에서 웹사이트를 만든다던지 시설 관련 안내 입간판도 만들고 계속해서 연결점을 만들어지는 시도와 노력이 이어져야 합니다.
세운상가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었을 때 세운상가에만 범위가 한정되었다는 한계가 존재하긴 했어도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센터가 있었거든요. 홈페이지 만들어서 홍보도 하고, 기술 중개소 같은 역할을 하게끔 만들어 놓은 거죠. 개발 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구역은 거점 시설로 활용될 수 있는 대안적 개발 방식을 생각해서 워크샵도 진행해봤는데, 완전 철거가 아닌 리모델링을 적용해서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지, 인쇄업 구역도 마찬가지로 도시 조직을 살리는 개발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