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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Nov 14. 2024

영등포의 변화하는 얼굴: 공간에 새겨진 도시의 시간

*해당 글은 은평시민신문과 함께 진행한 기획취재 <오래된 도시조직의 공존방안>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지역의 고유성을 유지,발전 방안 모색 위해 시민의 애정 담긴
공통기억 필요. 도시조직은 도시의 다양성 측면에서 보존 필요
하지만, 재개발을 막기 어렵기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선택과 집중 해야
신도림역에서 문래동 방향으로 오는 길목 풍경, 기찻길, 오래된 공장, 호텔 및 주상복합건물 등 한 장소에서 다른 시대를 읽을 수 있다.

영등포 거리를 걸으면 시간의 켜가 쌓인 독특한 경관을 마주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주택부터 현대적 아파트까지, 철공소와 인쇄소, 옛 군부대 흔적이 남은 공원 등 다양한 시대의 흔적들이 공존한다. 연속된 골목길은 시대를 넘나드는 경험을 선사하고, 오래된 시장과 현대적 백화점, 새로운 카페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풍경은 영등포의 역사와 변천사를 생생히 보여주며, 주민들의 일상과 방문객들의 경험,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쌓여 영등포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현대 도시 개발 과정에서 일부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가진 것들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영등포의 도시조직은 도시 보존과 개발 사이의 균형에 대해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에 공업 및 교외지역으로서의 영등포를 연구한 김하나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구획된 도시조직이 유지되면서 변화 해 온 영등포의 역사적 정체성과 현재의 고유한 가치, 그리고 미래 발전 가능성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인터뷰 ② 근대한국도시·건축을 연구하는 김하나 박사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근대 한국도시와 건축을 연구하는 연구자 김하나 입니다.


Q. 영등포를 연구지역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지역을 정해놓은 건 아니었고요. 근대기 주택 자료를 보다 경성 교외 관련 내용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보통 교외라고 하면 ‘주택지, 근교, 자연이 많은, 놀러 가는 유락지, 위락지’로 인식 되는데요. 영등포도 ‘서울 근교 공업지역’, ‘서울 교외 도시’로 언급되더라고요. ‘교외’는 단순히 ‘주변부’라는 뜻이 있지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교외지만 ‘자연이 많다.’는 지점보다 도시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독자적으로 발전된 모습과 공업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습니다. 


1930년대 보통의 경성교외지로 알려진 대표적 장소, 명수대(현 흑석동), 출처: 디지털동작대전


Q. 영등포가 공업지역이자 소도시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1899년 경인선 개통으로 시작된 교통의 발달은 영등포를 교통 요충지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경부선의 착공으로 영등포역은 두 주요 철도 노선의 분기점이 되어 중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러한 교통 발전은 인구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철도 관련 인력유입과 상업 활동의 증가로 시가지가 발전하기 시작했고요. 서울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리적으로는 평지인데다가 한강과 안양천과 인접한 위치에 있었기에 공업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1920년대는 소규모 공장들이, 1930년대 이후에는 일본 대기업의 대규모 공장 설립이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산업화와 인구 증가는 영등포의 행정적 중요성이 부각되며 시흥군청이 이전하게 됩니다. 우체국, 법원 등 다른 행정 시설도 모이게 되면서 영등포는 교통, 산업,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936년 영등포의 시가지 양상 지도 출처: 근대서울공업지역 영등포의 도시 성격 변화와 공간 구성, 김하나


Q. 도시계획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요? 
도시계획 이전 시가지1)화된 곳은 공장과 마을이 있었고, 기존용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확장된 것입니다. 토지구획 정리사업 구역을 겹쳐 놓은 이미지를 보면, 기존 큰 필지는 공장이 들어설 수 있도록 블록을 크게 만들고, 개발 안 되었던 필지는 작게 쪼개서 도시계획을 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업지역은 빨간색, 기존 마을이 있던 주거지역은 노란색, 미지정 지역인 곳은 초록색으로 표기하였습니다. 미지정 지역의 경우, 실질적으로는 경공업 지역입니다. 역 앞 상업지역은 이미 상권화가 진행되어 있었고요. 공장부지는 소유주가 한 명이기 때문에 재개발이 쉬워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변했습니다. 주거지는 1960년대 사진을 보면 도시형 한옥이 빽빽하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대부분 빌라·다세대 주택으로 개발된 상태이지만, 도시조직은 여전히 존속되고 있습니다. 

1)시가지: 도시의 큰 길거리를 이루는 지역.

Q.  도시조직이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확하게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경제적 논리에 의한 것이 가장 클 것 같습니다. 영등포는 1990년대까지도 공장이 많이 남아 있어 공업지역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후 공장이 사라진 터에 아파트가 우선적으로 개발되면서 다른 지역은 개발 압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죠. 1930년대 후반 도시계획으로 조성된 격자형 간선도로 구조로 자연발생적 주거지보다 개발 필요성이 적었습니다. 이러한 도시구조는 건물 노후화나 소방차 진입 문제 등 거주성 문제를 완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정부와 주민들이 긴급한 재개발의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되었습니다.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면서 영등포 지역의 개발 속도와 양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Q.  옛 도시 구조의 보존과 현대적 재개발 사이의 균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히 영등포 문래동의 재개발 추진을 고려할 때, 역사적 가치 보존과 도시 현대화 요구 사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문래동 재개발 논의는 수십 년간 이어져 왔지만, 복잡한 소유권 문제로 지연됨과 동시에 개발 압력을 피해가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도시에 역사의 켜가 쌓이면 풍성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단조로운 아파트 단지 풍경보다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 도시 조직이 공존하는 모습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과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이는 매력과 실제 주민들이 겪는 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 도시조직의 구조와 건물이 남아 있는 문래동 영단주택지, 문래동4가 ⓒ서울수집

Q. 재개발 가능성을 줄이고, 현 상황에 맞게 유지·발전시킬 방법은 무엇일까요?
문래동은 영등포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철공소 기술자와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문래창작촌은 다양한 세대의 서울 시민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과 추억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병참기지화 정책 흔적이자 지금은 희소해진 도심 공업지역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도 높습니다. 특히 80년 된 영단주택2)지와 상업공간이 공존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러한 특성을 시민들이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되면, 지역 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으면서도 지역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방문객 증가는 보존 가능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과도한 상업화로 인한 정체성 훼손 우려도 있어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2) 영단주택 : 식민지 조선에서는 전시체제하에서 일제가 조선의 병참기지화를 위해 건설한 군수산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주택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된 주택이다.
도시조직구조가 남아 있던 영등포구 양평동 주택지(현재는 철거됨), 출처: 서울데이터서비스

Q. 도시조직이 주민의 일상생활과 사회적 교류의 공간으로써 기능할까요? 
‘길’이라는 도시조직이 유지되면 여러 이점이 있습니다. 문래창작촌의 길은 중간에 도로가 있지만 접근성이 좋고, 문래동1가부터 4가까지 자연스러운 연결성으로 보행을 유도합니다.  철공소 아저씨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서로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길은 주민들 간의 사회적 교류의 장이 됩니다.

또한 동네 슈퍼마켓이 저녁 시간에 술과 라면을 판매하는 등 편의점 역할을 하며 커뮤니티 시설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통해, '길'을 중심으로 한 도시 조직이 지역 사회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일상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Q. 앞서 말씀 주신 부분들이 현재 재개발·재건축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옛 도시조직이 남아있다’는 점은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신축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촌의 거주환경과 얼마나 잘 맞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공장 부지는 아파트 단지로, 한옥 단지는 빌라촌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거 환경이 오히려 악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좁은 골목과 채광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단층 주택 부지에 3~4층 건물이 들어서며 고밀도 개발이 이루어진 것이고, 원래 도시 조직과 맞지 않는 변화였습니다. 실제 거주 경험이 없어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옛 도시조직도 어느 정도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문래 창작촌처럼 주거용도가 아닌 상업이나 문화 용도로 활용한다면 옛 도시조직을 유지하면서도 지역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63년 영등포 공업지대 모습,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Q. 서울에서 특정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연구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영등포만의 고유한 특성이나 정체성은 무엇이었나요? 
도시는 단순한 물리적 구조를 넘어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인구, 교육,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도시의 특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영등포의 경우, 연구 범위와 현재의 행정 구역이 다르다는 점에서 도시 변화와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현재 서울시 거주 초등학생들은 영등포 특성을 '행정의 중심'으로 배웁니다. 영등포 전체가 행정의 중심은 아니지만, ‘여의도’라는 특정 지역으로 인해 전체 구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연구 범위에서는 공업지역이라는 인식이 우세했던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박사논문 쓴 이후 다른 공업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북한 공업도시들을 순차적으로 하나씩 봤었습니다. 영등포의 경우, 논문쓴 지 10년이 지나니까 오픈된 자료를 찾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토지 정리사업 이후 해방 이전 시기에 어떤 공장들이 들어왔는지 꼼꼼히 못 봤었는데 자료를 찾아 논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구로공단과의 비교도 가능하면 해보고 싶습니다.  

*참고:  영등포 지역을 편의상 영등포로 통칭하여 기재하였습니다.

https://url.kr/s54s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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