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아니라면 보전이라도....
지난 8월 30일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주최로 문래동 영단주택지를 포함해 건축답사가 진행되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공모전 <이것만은 지키자>에도 포함되어 있어 현장심사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문래동 영단주택지는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개인적으로 지켜봐 왔다. 개별단위 주택 용도나 형태는 다소 변형되었지만1930년대 후반에 형성된 집단주거지로의 도시조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조직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고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며 장소성이 형성됐다.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유입되는 사람들의 성격도 달랐다. 그것이 '문래동'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드러나면서 분위기를 만들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이 쌓아온 관계와 역사가 도시 공간의 역동성을 형성하며 살아있게 만들었다.'과거-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과 문래동, 영등포구라는 공간을 이어주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한편으로, 문래동영단주택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 일대 거주민들 중 일부는 문래동 영단주택지를 포함한 철공소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모든 주민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일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오해말기를) 문래동 4가 경우는 서로다른 주체가 개발 방식을 달리해 재개발을 추진하고있었다.(현재는 한 주체가 진행하고 있음.) 같은 지역을 이렇게나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장차이나 이해관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때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경계하고 거부할 것이 아니라 과거 문래동 공간의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과 현재 문래동 역사를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치 신도시를 조성할 때 이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그들이 살던 터가 사라지더라도 마을의 전통과 문화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더라도, 어딘가에 삼삼오오 모여 제를 지내고, 굿을 하면서 그들의 뿌리를 계속 이어나가고 과거 자신들이 살던 터전에 대한 존재를 재인식하는 것처럼말이다. 물론 이들이 점점 나이가 들고 대를 이을 사람이 없을 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이처럼 문래동 영단주택지는 다방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러한 가치와 의미를 알고 문래동 영단주택지 보존 필요성을 알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문래동을 기반으로 예술작업활동을 해오던 김보배, 이정주 작가, 아키비스트안근철이 팀을 이뤄 <문래영단주택탐사단>을 결성했고 문래영단주택포럼을 열었다. 이후 한국내셔널 트러스트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지키자>에 응모 대상지로 문래동 영단주택지를 제안했다. 그 결과 현장심사대상지로도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도 전해 듣고건축 답사도 할 겸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프로그램 후기 관련 글은 앞서 공유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현장심사를 하는 동안 영단주택지 골목을 이곳저곳 드나들었는데 한편에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준공업지역 개선 방안에 따른
서울시 조례개정 반영
정비계획변경(안) 접수완료
문래동 4사 재개발 사업조합, 조합장 OOO
한동안 잠잠하던 재개발 추진이 급속하게 물결을 타고 있었다. 답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올해 5월을 기점으로 정비계획변경을 총회에서 의결한 뒤 8월에 접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9월 말, 시공사가 선정되었다. 그동안은 재개발이 추진되고있다는 걸 알면서도 크게 실감이 안 났었는데 갑자기 진행속도가 빨라지니까 체감이 확 되었다. 동시에 문래동 영단주택지를 대상으로 도시조직의 보존이 어떤 유효한 가치를 가지는지, 앞으로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더군다나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보존에 대한 실험조차 해보지 못하는 상태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딱 한 가지 질문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영단주택지는 보전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