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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영단주택단지 보전 그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똑같은 것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없는, 대체불가능성

by 이경민

나에게 있어 <문래동 영단주택단지>는 서울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성을 부각하는지, 어떤 대상을 보존할 때 어떤 지점에 주목하는지, 보전대상이 위치한 지역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살피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래동 영단주택단지>는 서울의 남쪽, 영등포구에 위치하며 1940년대에 조성된 주택단지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주택이 아닌 철공소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일부 주택은 철거되어 10층 내외 높이 상가건물로 바뀌었고 공지였던 부지는 건물로 채워졌다. 하지만 1940년대에 구획된 길, 건물이 배치된 질서 같은 형태는 8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지점에 주목하여 <문래동 영단주택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문래동이, 영등포구가, 과거에 어떤 곳이었는지, 왜 영단주택지가 생겼는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도시 맥락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슷한 성격을 가진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와 어떠한 연계성이 있는지, 비교하면서 살필 수도 있다. 지속적인 개발 상황에 놓이면서 오랫동안 철거 대상지로 인식됐던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 일대는 현재 단계적으로 철거되어 사라지고 있다. 서울 도심 산업생태계를 형성하며 많은 이의 일터이자 생활공간이 되어주었지만, 그와 무관하게 개발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문래동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특히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 일대 공간(철공소로 사용된 한옥 주택, 옛길, 골목)은 사람들이 일하고 생활하면서 적응해 왔다. 필요하다면 변형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합을 맞춰왔다. 그들에게 맞는 적합한 공간으로 변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방문객들과 관계를 맺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부분들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민의 주체는 서울시)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보전했다면 어땠을까? 굳이 모두 없애야만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문래동 영단주택지가 생각났다. 문래동 영단주택지는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 일대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여러 차례 재개발 추진이나 문래동 철공소 집적지 이전에 대한 논의들이 계속 있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차례 문래동 영단주택단지를 혼자 답사하며 과거 흔적을 찾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런 찰나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건축 답사를 진행한다기에 다녀왔다.

KakaoTalk_20250830_172616543_03.jpg 영등포역 앞에서 집결, 문래동 건축답사를 진행하는 안창모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답사를 위해 모인 장소는 영등포역이었다. 본격적인 답사 이전에 ‘어떤 곳에 기차역이 생기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영등포역이 왜 이곳에 생겼는지, 영등포역 일대 지형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 배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영등포역 뒤쪽으로는 구릉지, 앞쪽으로는 저습지인데 구릉지가 있다는 것은 그곳에 주거지가 형성된다는 것이라는 것, 뒤쪽에는 토건 공장이 있었는데 침수 위험을 고려해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당산동 피혁공장도 영등포역 앞이 저습지여서 피해서 위치를 선정하게 된 것이라 했다. 단순한 이유지만 영등포 지형을 모르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설명을 듣고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영등포역은 민자 역사로 운영 중인데, 한국에 민자 역사가 생겨난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옛. 경성방직 터로 이동했다. 옛. 경성방직 터에는 타임스퀘어가 생겼고 옛. 사무동 건물이 남아 있지만 노동자와 무관한 공간이라는 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해 주었다. 타임스퀘어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옆으로 성매매 집결지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과연, 이곳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집결지 끝 지점에는 밀가루 공장인 대선제분 공장이 있다. 대선제분 공장은 몇 년 전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진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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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퀘어 주차장 인근에는 성매매집결지와 대선제분 공장. 개발과 도시재생 이슈가 있지만 애매모호한 상태로 있다.

병원 건물을 지나 골목으로 진입하면 ‘금속’, ‘정밀’, ‘스틸’이라는 간판들이 보인다. 그 순간 철 냄새가 강하게 나는데 여기가 문래동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골목을 거닐다 보니 출사를 나왔는지 카메라를 든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을 지나쳐 드디어 영단주택지에 도착했다. 공장 출입구로 쓰이는 메인 도로변이 아닌 반대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주택 형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좁은 골목길로 이동했다. 영단주택이 철공소로 사용되며 내부 구조와 외관이 변형된 곳이 많아 초기 영단주택 원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창 둘러보는 중에 <이곳만은 지키자!> 시민공모전에 영단주택지 보전을 제안한 팀이 합류하여 영단주택지 설명과 함께 안내를 해주었다. 골목골목을 다니며 철공소로 쓰이지 않으면서 주택 형태가 남아 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개인이 도보로 이동하며 일일이 살피기에는 규모도 크고 범위도 넓어 선별해서 보기가 쉽지 않은데 미리 몇 개를 선정하여 안내해 주니 훨씬 더 수월하고 생동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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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영단주택지에 도착 후 설명이 있어졌다. 문래동영단주택지 보전 의미와 가치를 전하기 위해 합류한 이정주, 김보배 작가

다만 일부 골목에는 철공소가 아닌 주거지로 사용되며 현재 거주하고 계신 분들이 있었다. 큰소리로 말하진 않았지만 많은 인원이 갑작스럽게 좁은 골목길을 드나드는 게 괜찮은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곳을 방문한 분들이 문래동 영단주택지 보전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해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전 대상지에 와서 보고 느낀 것이 있어야 의견도 생기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필요한 과정인 것은 틀림없다. 여러 지역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인프라가 다르게 갖춰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도시환경과 조건이 갖춰진다. 이 과정에서 개선되는 부분도 있고 적응하면서 맞춰가야 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역사와 풍경이 존재하고 원래 그 지역이 가진 ‘시간의 켜’가 단절되기도 하면서 그 지역만이 가진 특수성을 잃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문래동 영단주택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져 오는 문래동의 역사와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곳이다. 이를 잘 보전하고 재해석하여 미래가치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 이 글은 8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진행한 건축답사 후기로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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