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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Oct 30. 2017

브랜딩, 일의 시작: 두루뭉술한 브랜딩이 일로 변하다.

브랜딩이 실무가 될 때.

브랜딩은 단어가 멋져 보입니다. 브랜딩을 한다고 말하는 순간 우왕!! 뭔진 모르지만, 상당히 멋진 것을 한다! 라는 느낌이 있죠. 그렇습니다.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느낌이죠. 사실 추상적인 것들은 대부분 멋져 보이니까요. 실무에서의 브랜딩은 그런 멋진 느낌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오늘은 안 멋진 브랜딩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대표님의 번쩍이는 아이디어와 오전 회의 이후 브랜딩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 지 한번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하는 기분이 들 수 있으니 혹여라도 저장해놓고 주말에 읽는 비참함을 겪지 않으시기 미리 말씀드립니다. 시작합니다.




굳은 결심의 시작

                                

바로 그거야!

침대에 누워있던 대표님의 마음을 심하게 짓누르는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브랜딩을 완벽히 구축하고 회사를 만들진 않습니다. 일단 2, 3일 정도 고민한 회사명과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몇 명을 모아서 설득한 후 회사가 시작되죠. 브랜딩이란 것을 고민할 정도로 초기사업체는 여유롭지 않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브랜딩은 마치 중딩시절 덕질의 폐해로 만들어진 아이디 ‘치천사_세라핌’ 만큼이나 오글거릴 수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다음 한메일 주소에서 살아 숨 쉬듯 쉽사리 바꾸기도 힘든 파워를 자랑합니다. 초기 브랜딩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곧 사업체의 정체성과도 같으니까요. 그런데도 한 명 두 명 직원들이 채용되고 회사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춰가면서 다시 고민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대표님들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체계’


뭔가 체계를 갖추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솟구치면서 우리 브랜딩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회사소개서도 바꿔야겠고! 리플렛도 바꾸고, 홈페이지도 개편해야겠어!! 짜잔!! 하고 말이야.”라는 굳은 결심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생각은 당연하고, 필수적인 얘기입니다. 회사의 체계를 잡는 것은 중요하지요. 하지만 체계를 잡는 것이 곧 브랜딩은 아닙니다. 보통 의식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브랜딩개편? 회사소개서를 만들자!!! 라고 말이죠. 앞글에서 제가 설명했듯 브랜딩은 ‘정보제공’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걸 명확하게 해야 할 듯합니다. 회사소개서, 리플렛, 브로슈어, 웹/앱 개편은 필요한 일이지만 이걸 브랜딩이라고 부르는 건 좀 주객이 전도 된 느낌이죠. 이것은 그저 온드미디어나 홍보물 리뉴얼 정도라고 하는 편이 좋겠네요. 


브랜딩을 정비해야겠어! 라고 한다면 우선 5가지 질문에
답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우린 누구지?

2.     우린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지?

3.     우린 어떤 행동을 하고 있지?

4.     지금까진 어떻게 해왔지?

5.     앞으로 어떻게 할거지?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얘기는 잠시 미룹시다.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은 회사소개서와 제안서 등등에서 구체화시키면 됩니다. 브랜딩 작업에선 일단 당신이 어떤 사람들인지, 당신의 회사는 뭔지? 그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예능 캐릭터를 곰곰이 생각해볼까요? 정형돈의 화내기와 박명수의 화내기는 그 결이 매우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규정하죠. 정형돈은 투정, 박명수는 버럭! 정준하는 짜증!, 유재석은 진짜 화났다! 등으로 말입니다. 이것을 가르는 것은 캐릭터의 베이스성향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행위’에 가깝습니다. 정형돈은 옆집 형 같은 편안한 분위기의 베이스가 있습니다. 박명수는 어르신, 나이 많은 등의 베이스가 있죠. 이러한 베이스 때문에 같은 행위라도 그 결이 달라지는 거거든요.


 그러니 당신의 회사는 어떤 베이스를 지니고 있는지 먼저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린 전문가집단 베이스? 덕후모임 베이스? 대학동아리 베이스? 다차원세계의 이종집합체? 등등 비즈니스의 성향과 모여있는 집단의 성향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아침회의의 시작


회의가 시작됩니다. ‘우리만의 브랜딩을 해보자!’라는 주제로 말이죠. 물론 회사 분위기에 따라 케바케입니다. 성향이 시끄러운 집단이라면 산으로 가버릴 것이고, 성향이 국방색이면 명령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애당초 조용한 집단이라면 천 년의 침묵 끝에 머리 위에 눈이 쌓여 대답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버리는 슬픈 도시 전설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회의의 주제는 리브랜딩을 해보자! 라기보단 사실 ‘우리 비즈니스의 성격은 어때?’ 라는 주제로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곤 이상형 월드컵을 하듯 하나씩 선택해 나가는 편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죠. 비즈니스의 성향이 ‘유쾌하고 키치한 성향'으로 드러났다면 두 번째 안건은 그럼 직원들의 성격은 어때? 라는 주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다들 연구부원마냥 무테안경에 타이 정장을 고수하는 논리적이고 신중 신중한 ISTJ 타입의 인원들이 가득 모여 있는데 유쾌하고 키치한 전략을 만들어 내자라고 하면…… 아마 다들 꺾은 선 그래프를 들고 와서 데이터와 전략싸움을 하느라 에너지를 쏟다가 결국 자기 파티션 속 책상으로 돌아가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비즈니스의 방향과 구성원의 성향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모든 구성원이 다 똑같을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구성원에게 맞춰 비즈니스모델을 인제 와서 뜯어고치기도 힘들죠. 그렇다면 적어도 브랜딩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팀이나 구성원 정도는 BM과 비슷한 느낌으로 가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야 서로 즐겁죠. 

그래서 주로 회의의 내용은 이런 것들로 구성되고, 이러한 답변이 나와야 합니다.


01.   우리 회사 성격은? – 유쾌하고 키치하다.

02.   구성원의 성격은? – 논리적인 사색가형 3명, 모험가형 2명, 재기발랄활동가형 1명

03.   우리는 어떤 경험을 주는가? (소비자에게) – 서비스에 에너지를 담아줌

04.   그 경험은 누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 ‘에너지’라는 개념을 구체화, 실체화

05.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 채널, 방식, 제작방식, 시기, 기간, 컨셉 등

06.   누가 얼마나 담당할 것인가? – 업무분장시작

07.   PM는 BM와 제일 비슷한 성향의 기획자가.

08.   기획 서포트는 반대 성향의 담당자가

09.   중재자는 관찰자 성향의 담당자가

10.   실행과 운영은 모험가형 2명이

11.   검토와 트래킹은 사색가1명이

12.   기획안 도출과 프로토타입 제작은 언제까지

13.   리브랜딩 제작물과 디자인 작업은 언제까지

14.   사내 전체 공유와 적용 시기는 언제부터

15.   대외노출과 공표는 언제

16.   유지와 운영 점검의 1차 지점은 언제까지

17.   해당 업무에 대한 각 팀 별 세부업무 관리는 어떤 식으로

18.   총 예산은 어느 정도

19.   1차 랜딩이 끝난 후 2차 유지보수비(고정비)는 어느 정도 책정

20.   책임과 권한 부여


대략적으로 적어보았습니다만, 아마 이 정도의 회의내용이라면 물개 박수를 받을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면 컨설턴트나 전문가가 대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브랜딩 기획 회의 진행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논쟁과 한숨과 미간 주름과 커피와 담배가 함께하는 회의시간이 되겠지만 이 시간을 피해선 절대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브랜딩을 꼭 누군가에게 전담해서 네가 해! 라고 하긴 하지만, 이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에요. 회사 특성상 전담자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모든 걸 전가해버리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죠. 그래서 사실 이 회의에서 업무분장과 구성원의 역할의 명확한 구분은 아주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전담자가 있되, 사원 모두가 브랜딩에 하나하나 부분을 담당하는 형식이 되어주어야 해요. 그리고 그 업무분할은 각자의 성향에 맞춰서 분배하는 편이 현명하죠. 




일의 시작

   

 이제 다들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회의가 엄청나게 길고 피곤했겠죠. 한숨과 담배 연기와 와 씌……와 가슴 속 사직서를 검지와 엄지로 꼭 잡으며 가족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회의록을 보니, 이 모든 상황이 몰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 겁니다. 누군가가 뒷문에서 등장하여 지금까지 잘 견디셨습니다!! 하며 내 앞의 기획안을 짝짝 찢어 버리길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뭐사실 아무리 즐거운 브랜딩 프로젝트라도 일단 일은 일이기에 저녁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슬픔은 누구라도 피하기가 힘듭니다. 만약 치맥과 풀침을 보장받으며 브랜딩 프로젝트를 쭉 진행할 수 있다면 정말 직원들의 역량이 엄청나거나, 대표님의 지략이 거의 사마의 급이라고 칭송받아 마땅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몇 있긴 했습니다. 일전의 클라이언트 대표님은 장판교의 장비와 같이 몰려드는 업무를 장엄하게 쳐내며 11명의 직원 대군의 칼퇴를 보장하더군요. 진피층까지 소름이 돋아 어느새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있던 저를 발견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제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브랜딩 업무가 다가온 것이죠. 일단 일의 시작은 대부분 회의록의 정리부터입니다. 회의록을 정리해서 사내전체에 공유하죠. 회의록은 차지게 써서 넘버링을 해줍니다. 1번부터~20번까지 안건에 대한 결정사항과 TBD 여부 (+재결정시기)를 확정한 후 사내공유를 합니다. 그리고 담당자들끼리 모여 간략하게 담배타임을 가지며 업무재정비를 합니다. 이 때는 회의시간에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나는 엑셀 고자다, 나는 포토샵 공포증이 있다, 사실 나는 공황장애가 있어서 전시회를 나가지 못한다 등등의 세부적인 얘기와 개인 사정에 대한 조율을 진행합니다. 어쩌면 이게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재정비가 이루어졌다면, 누군가는 기획서를 써야 합니다. 기획안은 예쁘게 만들고 싶겠지만, 예쁘기보단 정확하게 만듭시다. 솔직히 딴 거 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방향성과 컨셉은 정해졌고, 이젠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실행방안, 운영에 관련된 것들만 나와주면 됩니다.그러니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단어와 숫자입니다. 어떤 워딩을 쓰고, 예산을 얼마 투입, 언제까지 누가,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만 정확하게 잡아서 원페이지로 딱딱 만들어냅시다. 이 단계에서 이제 제가 담당하는 비쥬얼브랜딩 실무도 함께 진행이 되죠. 소개서와 제안서는 언제까지, 얼마로, 어떤 자료, 어떤 컨셉으로 진행할 것인지 한 장으로 정리하면 됩니다. 


01.  고객초청 간담회진행

02.  브랜드 가이드구축

03.  로고/슬로건/컬러컨셉 적용

04.  전사 공유회의 진행

05.  현장관찰(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의 행동 구경하기)

06.  온라인이벤트기획

07.  홈페이지리뉴얼

08.  앱리뉴얼

09.  회사소개서/제안서 리뉴얼

10.  SNS컨텐츠 리뉴얼

11.  대외이벤트진행

12.  굿즈제작


 등등 각 항목별로 한 페이지씩으로 정리해서, 전체 브랜드구축 기획안을 심플하고 직관적으로 만들어낸 후 전사 공유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비용과 시기입니다. 대표님 입장에선 비용이 살벌하게 중요할 것이고, 실무자 입장에선 시기가 살벌하게 중요합니다. 이시기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23세기가 되어서야 우리 브랜드가 망원동 인근 주민에게 겨우 알려지는 사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도 끝도 없이 지지부진해지죠. 시기는 명확하게 가슴 졸리게 잡는 게 좋습니다. 데드라인이란 것은 참으로 일을 흥미진진하고 가슴 벅차게 만들어주니까요. 


표지포함 13장의 기획안이 완성되어 전사공유를 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하나일을 처리해봐야겠죠. 이제부턴 세세한 실무의 디테일과 폭망의 전조, 쓸데없이 생고생을 하지 않도록 현명하게 운영하는 다양한 슈퍼수프림 꿀팁과 각종 썰에 대해서 늘어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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