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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Sep 17. 2023

그런 마음으론 결코 같이 일할 수 없을 것이다.

악마를 잡으러 출근합니다 제6화

이번에 새롭게 기획한 10회 분량의 사내 판타지 소설입니다 :) 처음부터 보셔야 꿀잼이고, 중간에 갑자기 보시면 뭔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이곳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와 이름, 상황은 가상이고 특정한 기업, 성별, 종교, 신앙, 동물, 음식, 신념, 가치관 등을 비하하거나 저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01 난전


땡!! 

엘리베이터의 차임벨과 잠시의 정적.



그리고 이내 갈라지듯 열리는 두 문 사이로 타오르는 듯 시뻘건 눈동자들과 거품을 머금은 입,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과 다리가 형체가 보였다. 한 두개가 아닌 구겨진 채 십수명을 구역질하듯 토해낸 엘리베이터는 다시 아랫층으로 향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쏟아진 아랫층 팀원들은 주섬주섬 좀비처럼 일어나 삐그덕거렸다. 그리고 이내 자세를 바로 잡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냐봉과 엠제이도 책상 뒤에 숨어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팀장처럼 보이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아랫층 팀원들이 모여들었다. 맞은 편에선 PR팀원들이 스크럼을 짜며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건 위험해 보인다. 처음 올라와 디자인팀을 공격했던 4명의 직원들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디자인팀과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양쪽에서 패싸움이 벌어지면... 좀 안좋은데요.]

[아무래도 저들은 우리의 존재를 아직 신경쓰진 않는 것 같죠?]

[일단은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여기서 염동력으로 일단 저들을 좀 막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들을 실제로 공격해선 안되잖아요. 염동력으로 사물들을 이용하면, 이 닮은 세계의 사람들이 실제로 다치게 될 텐데...]

[사실 아까 몇 번 쓰긴 했어요.]

[현실세계에선 엉뚱한 일이 생겼겠네요.]


엠제이와 냐봉이 있는 곳은 닮은 세계. 즉 실제 세상의 내면과도 같았다. 그들의 욕망과 어둠, 부정적인 감정들이 모여있는 안쪽의 세계. 아마 현실세계에서 저 아랫층 팀원과 디자인팀은 서로 웃으며 회의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그 진짜 속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냐봉과 엠제이가 서 있는 곳이었다. 엠제이와 냐봉은 영혼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엠제이의 염동력은 현실세계의 사물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물엔 내면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가 연결된 상태로 세계가 나뉘어져 있었다. 아마 엠제이가 의자를 던져 치고받던 두 팀을 떨어뜨렸을 때, 실제 세상에선 누군가가 의자에 부딪혀 꽤나 멍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염동력은 사물에만 적용되지만, 그렇다고 이 쪽의 사물을 자꾸 건드리면 현실세계에도 영향을 주는 모순이 존재하고 있었다.


[참... 별 도움 안되는 친구네 이거...]


엠제이는 이래라저래라 구슬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한숨을 쉬었다. 그때 냐봉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허리춤에서 주섬주섬 뭔갈 찾았다.


[이거]




02 반려


냐봉은 '반려'를 꺼내 엠제이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반려는 영구(靈具)니까...날아다녀도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맞아요. 그리고 반려의 공격은 영혼과 악마에게만 통하니. 저 쪽 세계를 걱정할 일도 없고]

[하지만, 반려로 사람들의 영을 공격하면 현실의 그들이 상당히 고통스러울 텐데?]

[물론 그렇겠죠. 근데, 저기 보아하니...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고통을 겪고 있을 것 같은데요.]


냐봉이 가리킨 곳에는 뒤엉킨 아랫층과 디자인팀의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당탕 거리며 의자와 책상이 넘어졌고, 입에 거품이 가득차 읍읍 거리며 벌개진 두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서로의 옷깃을 잡아뜯으며 팽팽히 힘겨루기를 하고, 서로의 목을 조르고 할퀴고 걷어 차기도 했다. 발길질에 저만치 날아가는 팀원도 있었지만 내면의 세계에선 피가 보이지 않는다. 현실이었다면 이미 혈투에 가까웠겠지만... 지금 저 모습은 영혼과 감정들의 싸움이다. 아마 현실세계에선 이유없는 엄청난 피로감이나 극심한 두통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반려로 공격당한다면 몸살이나 무기력, 시큰한 고통이나 우울증까지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를 빨리 잡아 없애는 것이 먼저다. 저들도, 엠제이도 그 편이 빨리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다. 엠제이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반려를 바라보며 잠시 집중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반려를 띄워 살짝 돌려보았다.


-후....웅-


반려는 엠제이의 의지대로 부드럽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엠제이의 손으로 돌아왔다.


[저기도 시작됐어요!]


냐봉이 말하며 가리킨 곳엔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서 올라왔던 15명과 대치하던 PR팀의 으르렁이 막 충돌한 상태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캐비넷에 부딪쳤고, 다른 사람은 의자를 밟고 PR팀의 누군가의 어깨를 꽉 붙잡고 몸싸움을 시작했다. 엠제이와 냐봉은 탕비실 뒤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에게 엠제이와 냐봉은 외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감정이나 관계가 없기에 아직은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서로 접촉하거나 존재를 너무 드러내기 시작하면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여기는 현실세계가 아닌, 내면의 세계. 그들의 공격이 엠제이와 냐봉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냐봉은 답답한 듯 엠제이에게 말했다.

[어쨌든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뒹굴고 있는데... 들키지 않고 나갈 방법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일단 빨리 돌파해 아랫층으로 내려가보면 어때요?]


엠제이는 잠시 주춤했다.

[그래도 상황이 좀 정리된 다음 가는게 좋지 않을까. 사실...저들이 타겟을 갑자기 바꿔 모두 우리를 향한다면 아무리 반려가 있어도 아랫층까지 무사히 내려가기도 전에 발목 잡히고 말거야.]


냐봉은 입을 꾹 깨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조금씩 이동하면서 우릴 발견한 녀석들만 제압하는 걸로?]


엠제이가 냐봉의 말에 끄덕이고, 손가락으로 다음 책상 아랫쪽을 가리켰다. [일단 저기로]

냐봉과 엠제이는 몸을 숙이고 무릎을 밀며 조심스레 기어갔다. 


우당탕탕!!!!


그 순간 싸움에서 밀려난 한 사람이 냐봉이 기어가던 책상으로 날아와 넘어지고 말았다. 책상에 있던 컴퓨터와 책들이 시끄럽게 넘어졌고, 몸이 거의 구겨진 채 일어나던 사람은 냐봉과 눈이 마주쳤다.


[........?]

[흐업!!...]


냐봉은 순간 들숨으로 비명을 삼키고 엠제이는 냐봉의 코 앞에 있는 그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엠제이의 손위에 떠있던 반려가 '휘이잉' 소리를 내며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의 복부를 관통했다. 실제 육신이 아니었기에 피가 쏟아지는 대신, 희미하게 터지는 연기같은 것이 눈에 보였고 복부를 관통당한 그는 눈을 부라리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제압되지 않아!!]

엠제이는 무척 당황했고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날아간 반려를 되돌아와 그의 심장을 향했다. [팡!]하는 파열음과 함께 가슴을 뚫고나온 반려는 다시 엠제이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듯 했다. 냐봉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 장면을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책상 아래를 향해 재빨리 몸을 숨겼다. 엠제이도 다시 손으로 돌아온 반려를 꼭 쥐고 냐봉의 뒤를 따랐다. 


[아무리 협업이 전쟁같다지만... 이런 묘사는 좀 심하네요.]

[실상 속으론 이렇게 치고받고 죽일 듯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건가...]

[사실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차피 자주 볼 사이도 아니었고...]

[아마 아랫층의 악마놈이 이런 감정들을 부추기는 것 같아.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저들이 싸우다 죽기전에 우리가 먼저 들켜서 난감해질지도 몰라요.]


엠제이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빠르게 말하곤 다음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냐봉은 비상구 계단문과 가까운 책상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곳으로 바로 가기엔 3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이에 버티고 서있었다.


[처리 가능할까요?]

[조준이 잘 될까... 한 번 해볼게요]


엠제이는 반려를 다시 손에 띄우고,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손가락 하나하나로 마치 무중력상태에 있는 반려를 만지듯 위치와 방향을 이리저리 섬세하게 조정해봤다. 약간의 딜레이와 관성이 있었다.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에 심장을 관통시켜야 한다. 엠제이는 가장 앞 쪽의 사람을 향해 손을 뻗었고, 반려는 잠시 뒤로 움찔하더니, 발사되듯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예리하게 날아간 칼 끝은 정확히 그의 심장을 관통했고, [펑!]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입을 벌린 채 넘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 사람들이었다. 파열음을 듣고 뒤를 돌아본 두 사람은 이내 반려를 조종하는 엠제이를 발견하곤 잠시 갸웃거렸다. -눈이..마주쳤어!-


날아간 반려를 되돌리기 위해 팔을 뒤로 휘젔는 순간, 두 사람도 엠제이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냐봉은 엠제이에게 달려오는 한 사람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렸고, 우당탕!! 소리와 함께 사무실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도 둘에게 쏟아졌다.


[....망한 것 같다!!]

[망했어!! 망했어!!!! 비상구로 뛰자!!!!!!! 뛰어!!!!]


냐봉과 엠제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속력으로 비상구 계단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둘을 향해 질주했다. 자동문을 열고 화장실 옆 방화문까지 열어야 하는데, 자동문이 열리는 그 작은 찰나!! 달려오던 사람들은 냐봉의 발목을 낚아챘고 냐봉은 정신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온갖 풍경이 눈 앞에서 섞이듯 어지러웠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몇 개의 손이 냐봉의 다리와 팔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엠제이는 냐봉이 다칠까봐 섣불리 반려를 날리지도 못했고, 그나마 엠제이에게 달려오는 몇 명을 처리했을 뿐이었다. 


[팀장님!! 빨리요!!!!!!]


냐봉은 겨우 사람들의 팔을 뜯어내며 소리쳤다. 엠제이는 눈을 가느다라게 뜬 후 다시 손을 휘저어 반려를 쏘아보냈다. 


팡!!! 팡!!!! 팡!!!!!!!!! 


냐봉을 짓누르던 3명의 가슴을 동시에 통과하며 다시 공중에 떠오른 반려는 엠제이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손을 내려 반려를 회수하려는 찰나!! 뒤에 있던 한 사람이 엠제이의 두 팔을 낚아채고 말았다. 반려는 순간 힘을 잃고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냐봉은 다시 반려를 쥐기 위해 달려나갔다.




03 아랫층으로


[히야아아아아!!!!!!!!압!!]


냐봉은 몸은 던져 반려를 움켜쥐었고 엠제이의 팔을 움켜쥐던 녀석들의 손목을 가볍게 날려버린 후 엠제이의 손을 잡고 비상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닫히기 시작한 자동문에 막혀 사람들의 추격이 더뎌졌고, 거칠게 비상구 문을 잡아당긴 냐봉은 엠제이를 먼저 밀어넣고 자신도 들어가 문에 등을 대고 숨을 골랐다.


[하아...........]


이미 죽은 몸이기에 상처는 없었지만, 점점 기력이 사라지는 듯 했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다리와 팔이 무거워졌다. 가볍디 가벼운 반려를 들고 있는 것 조차도 힘겨울 지경. 엠제이와 냐봉은 서로를 부축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랫층에 다다랐을 때, 둘은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살짝 움찔했다.


[준비됬어요 팀장님?]

[응... 또 뭐가 있을까...]

[문을 열기전에 생각을 정리해봐요. 악마의 이름을 알아내야 하니까]

[그래요. 협업이 저렇게 무시무시한 것인 줄은 몰랐네... 일단 사람들이 다른 팀원들을 공격하고 싶어하는 맘은 잘 알겠어요. 왜 공격하려할까. 어차피 다들 같은 처지일텐데]

[불만이 가득하겠죠. 아무래도...남들이 못하면 내가 힘들어지니까.]

[자기만 생각하는거네요]

[그렇겠죠? 일을 더 하고 싶은 욕심같은 건 아닐테고. 서로 욕 안먹고싶어서 미루는 걸테니]

[이기심 같은 걸까요]

[제 생각엔 그래요]

[후우..그럼 한 번 들어가볼까요?]

[목걸이 잘 가지고 있죠?]

[네네]

[가봅시다]


냐봉은 문을 돌려 아랫층으로 한 발 내딛었다. 차갑디 차가운 공기가 층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층 전체의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자...그제서야 악마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눈을 한 그것.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둘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죽은 자들이 왜 여기와서 헤매는거지?]


묵직하고 차가운 음성이었다. 그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뱉은 목소리는 입김과 함께 스산하게 둘을 압박했다. 냐봉은 꿀꺽 침을 삼켰고, 엠제이는 주머니속의 구슬을 다시 확인하며, 주변의 것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악마는 걸터앉아있던 책상에서 내려오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 거래를 했겠지. 죽음의 순간을 되돌려주겠다고. 그렇게까지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있나?]

[회사로 가고싶은 게 아냐! 그냥 살고 싶은 거지]


냐봉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악마는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작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살고 싶다. 너희들에게 산다는 건 뭐지? 퇴근 후에 즐기는 몇 시간을 의미하는건가. 회사에서도 살아있다고 여기나? 늘 고통스럽다고 외치고, 분노와 억울함과 비합리로 가득찬 이곳을 늘 떠나고 싶어하잖은가. 그래서 욕하고, 비웃고, 체념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네가 살아있는 시간은 몇 시간이나 되는거지? 눈 감은 시간과 회사를 제외하면... 글쎄. 하루에 2시간 정도 살아있는건가? 그걸 위해 이렇게 애쓰는건가]


[무슨 소릴 하는거야. 회사에 다니는 것도 삶의 하나라고]


냐봉은 반려의 날을 세우며 잔뜩 긴장한 자세로 말했다.

[회사 지겹지. 힘들지. 불만도 많지.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에 있는 시간이 무의미하고 죽어있는 건 아냐. 어쨌든 삶을 이어나가고...]


[허튼 소리. 윗층에서 치고받던 사람들을 보았나? 내가 무언갈 했다고 생각하겠지. 천만에 말씀. 난 그저 그들에게 함께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하나의 일이 더해졌을 뿐인데도... 알아서들 분노에 휩싸이더군. 난 그들에게 함께 해나갈 좋은 방법을 찾으라고 말했다. 대신 그들은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이 얼마나 쉬운가. 나는 눈을 가리는 자. 이간질하는 자. 부추기는 자다.]


냐봉과 엠제이는 이 말많은 악마의 소리를 들으며 끓어오르는 불편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 화가 나는 건 저 소리를 완전히 반박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 회사에서도 똑같았다. 협업은 언제나 엉망이었고, 이를 개선할 수많은 노력들이 제기됐지만 누구도 이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누군가를 비난하고 사정을 토로하며 나의 고생을 부풀리는 사람들은 있었다. 지금 이 닮은 세계도 현실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엠제이 라고 했던가. 너는 팀장이었지? 그래 너의 생각이 보이는구나. 죽기 전 너는 결국 부당한 일을 거절하지 못했다. 너희 팀의 일도 아닌데 가져왔었지... 그걸 팀원들에게 주려고 했었나? 그때 너의 마음은 어떠했나. 그래,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아니면 누군가 잠자코 이 일을 해주길 바랬나]


엠제이는 두 눈이 동그래졌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려다가 차마 목소리로 그것을 내뱉지 못했다. 엠제이 또한 밀리고 밀리는 협업이라는 이름의 일 돌려막기에 지쳐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팀장님 저런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을 필요없어요!! 그냥 이름을 외쳐봐요!!]


냐봉은 악마의 말을 끊고 냐봉에게 소리쳤다. 엠제이도 다시 정신을 차린 듯 냐봉을 바라보며 끄덕였다.


[협업의 악마, 니 이름은]

[이기심!!]

[이기심!!]





04 육탄전


[하하하하하하하!!!!!!...이름을 알아내서 어쩔건가!]

붉은 눈의 악마는 냐봉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엠제이와 냐봉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름을 불렀지만,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악마는 냐봉의 목에 있던 목걸이를 손에 올리고 있었다. 


[신이란 놈이 이것을 주던가? 너희들이 안전할거라고 말했겠지?...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이 목걸이...흐흐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냐봉은 악마의 손을 뿌리치고 한 발 물러서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넌 날 공격하지 못해! 주저리주저리..말만 많아서는]


[이 목걸이는 내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상대를 배척하려는 마음을 담은 이기심 그 자체지. 좋은 말도, 나쁜 말도 그래서 이 목걸이 앞에선 통하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혼자 출근했다 혼자 퇴근하고 싶은 고귀한 방어력이 담겨있으니까. 하지만, 이 힘을 만든 나라면 어떨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악마는 냐봉의 목을 옥죄고 그녀의 입에 붉은 연기를 가득 쏟아붓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


냐봉은 거세게 소리치며 발버둥쳤고, 엠제이는 주변의 의자 두 개를 오른손으로 가리키며 악마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의자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악마에게 향했고, 그가 한 눈 팔린 사이 냐봉도 반려를 꺼내 악마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잘린 팔에선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내 날아든 의자가 악마를 구석으로 쳐박아버렸다.

엠제이가 냐봉에게 외쳤다.


[냐봉!! 반려를 주세요!!]


냐봉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무릎을 대고 바닥에 앉아 두 머리를 감싸쥐기 시작했다. [아아악...]

엠제이가 냐봉 옆에 떨어진 반려를 띄워 악마에게 던지려는 순간! 냐봉은 떠오른 반려를 낚아채 자신의 손에 쥐었다. [냐봉..!? 뭐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킨 냐봉은 이미 한 쪽 눈동자가 붉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반려를 거꾸로 잡고 음산하게 말했다.


[이건 제껀데..이걸 왜 제가 팀장님에게 줘야해요?...애당초 나 혼자간다고 했을 때 팀장님이 오지랖만 부리지 않았어도 우린 지금 죽지 않았을 거에요. 당신이 날 태웠잖아.]


냐봉은 이를 까드득거리며 분노에 찬 말을 내뱉었다. 엠제이는 당황하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순간 엠제이의 눈에 들어온 건 아직 완전히 연결되지 않은 희미한 빨간 연기였다. 냐봉과 악마를 연결하고 있는 연기는 아직 단단해지지 않은 듯 박동하며 흩날리고 있다. [끊어야해.]


순간 냐봉은 윗층의 팀원들처럼 엠제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냐봉!! 냐봉!!! 이러지 마요!!!!]

현실세계에 육신이 없는 엠제이가 반려에 공격당한다면, 엄청난 데미지를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었다. 엠제이는 달려드는 냐봉을 피해 책상을 움직여 냐봉의 동선을 막았다. 순간, 냐봉이 꼭 쥔 반려에 시선이 쏠린 엠제이는 자세를 고쳐잡고 두 손을 들어 반려를 향했다. [잡고 있어도... 움직일 수 있어!]


엠제이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고, 책상에 부딪혀 넘어진 냐봉이 다시 몸을 일으킬 때쯤 냐봉은 자신의 손이 공중에 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뭐야!! 그만둬!! 나를 함부로 조종할 생각하지말라고!!]


냐봉은 소리치고 있었지만 반려를 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반려를 더욱 꽉 움켜쥐었고, 이제 엠제이와 냐봉의 힘싸움이 시작되었다. 냐봉의 집중을 흐트러뜨릴 뭔가가 필요하다!!... 엠제이는 냐봉의 힘을 버티느라 손이 부족했다. [작은 것이어도 돼!!...]


엠제이는 떨어져있던 보드마카에 시선을 돌렸다. [저 정도면!..]

엠제이의 시선을 따라 보드마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턱을 치켜들자 공중으로 휭 들려 엠제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실무자라면 보드마카로 쓰는 글을 참기 어렵겠지!] 엠제이는 어차피 보드마카 정도로 부딪혀봐야 눈이 뒤집힌 냐봉의 폭주를 막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엠제이는 턱으로 보드마카를 화이트보드로 날려보냈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냐봉 또한 날아간 보드마카를 따라 시선을 돌렸고,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적는 보드마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엠제이가 버티고 있던 냐봉의 오른손에 살짝 힘이 풀린 것이 느껴졌다. 냐봉은 두 팔을 치켜들었다. 반려와 냐봉이 함께 떠올랐다. 엄청난 무게를 버텨야했지만 승산은 있었다. 냐봉의 팔은 냐봉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였고, 냐봉과 악마를 잇고 있던 빨간 연기를 향해 큰 궤적을 그렸다.


[파앗!..]


연기가 끊어지며 흩어지던 찰나 냐봉 또한 다시 찾아온 두통에 고통스러워했다. 엠제이는 냐봉의 손에서 반려를 뺏어, 도망가려는 악마의 등을 향해 쏘아보냈다.


[휘이이이이!!!!!!!!!!!!!!!!!!!!!!!! 팡!!!]

쏜살같이 날아간 반려는 악마의 심장을 관통했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악마의 가슴으로 튀어나와 다시 목으로 달려들었다. 


[슉!]


반려의 날카로운 칼날이 악마의 목을 스치자 그의 몸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붉은 연기를 한껏 뿜으며 목부터 발끝까지... 재가 되어 사라져가고 있었다. 냐봉의 붉은 동공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엠제이는 팔을 툭 떨어뜨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공중에 있던 반려가 땅에 떨어지며 경쾌한 쇳소리를 냈다.

바닥에 드러누워버린 냐봉과, 책상에 기대 주저앉은 엠제이는 발끝에 작은 햇살이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이 감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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