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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Sep 24. 2023

왜 죽어서도 일을 하고 있는가

악마를 잡으러 출근합니다 제7화

이번에 새롭게 기획한 10회 분량의 사내 판타지 소설입니다 :) 처음부터 보셔야 꿀잼이고, 중간에 갑자기 보시면 뭔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이곳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와 이름, 상황은 가상이고 특정한 기업, 성별, 종교, 신앙, 동물, 음식, 신념, 가치관 등을 비하하거나 저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01 과거의 기억


얼마나 지났을까. 냐봉의 눈앞이 흐렸다. 


[잠이 든건가...]


냐봉은 옆에 기대어 곤히 잠든 엠제이를 바라보았다. 눈의 초점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햇살이 군데군데 비추는 사무실의 모습이 보였다. 악마는 소멸되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얼마나 잠들었는지 알 수 없어, 기억을 잠시 되돌이켜보았다. 목걸이와 상관없이 악마의 공격을 받았고 녀석과 잠시 연결되는 동안 수많은 말소리와 장면들이 머릿속을 할퀴고 지나갔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냐봉의 기억과 악마의 기억이 흐릿하게 섞이며 생소한 기억들이 군데군데 어울리지 않게 남아있었다. 아릿한 두통에 잠시 머리를 짓눌러야 했다. 


[으..음...]


엠제이가 꿈틀거리며 간신히 눈을 떴다. 거의 녹초가 되어버린 엠제이의 체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아니, 육체가 없으니 영력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냐봉 또한 마찬가지였다. 냐봉은 문득 손에 쥐어진 목걸이를 바라봤다. 목걸이는 끊어졌고 펜던트는 산산조각 나있었다. 


[이 펜던트는 그 악마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어]


순간 냐봉의 관자놀이에 찌르는 듯 엄청난 두통이 몰려왔다. 그리고 스쳐가는 몇 개의 장면들이 있었다. 냐봉은 눈을 감고 장면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바늘같은 자극 속에서 몇 마디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케이트, 솔직히 제가 이거 디렉션 안했으면 케이트 혼자 할 수 있었겠어요? 말은 바로 하자 우리]


[그래도...사실 제 아이디어였는데...]


[아이디어 좋지, 하지만 성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아니 내가 뭐 지금 케이트 공 차지하고 막 그럴려고 그러는 것 같아? 우리 팀이 성과를 내야 연말에 인센티브도 받고 그럴 거 아니에요. 우리 지금 눈치 챙겨야 해]


[눈치요...?]


[저 인티제라 말 길게 하는 걸 별로 안좋아해요. 딱 말할게요. 이건 팀이 낸 성과에요. 케이트 것이 아니라. 이번 고과는 팀 전체로 받게 될 거에요. 그리고 승진은 원래 순서대로 진행될거니까 케이트는 순서를 기다려요. 알잖아 어차피 밀어주기로 고과주기로 한거. 왜 그 순서를 깨려고 해. 팀원을 생각해야지.]



케이트라고 불리던 여자는 떨리는 심장을 겨우 달래며 나지막히 [네에...] 라고 외치고 돌아섰다. 케이트를 잔뜩 쏘아부치던 의문의 목소리의 나지막한 혼잣말이 들렸다. [아니 요즘 애들은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것 같아. 다 자기 고과만 챙기려고 팀을 생각 안한다니까] 냐봉은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아마 기억을 공유하며 감정까지 함께 반응하는 듯 했다.


[이게...악마의 기억인가? 악마가 어느 쪽이지?...케이트? 아니면 목소리?...]


다음 장면은 케이트의 책상이었다. 동료로 보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새끼는 그렇게 친한 척하고 잘해줄 땐 언제고... 와 진짜... 배신 미친...이거 가로챌려고 지금까지 그렇게 잘해준거야? 가스라이팅해서 혼자 일 다 떠넘기려고... 저 새끼 진짜 저런 식으로 하는 거 우리가 다 알아. 울지마 울지마]



케이트는 고개를 떨구었다. 떨구어진 고개아래 딸랑 거리며 빛나는 펜던트...


[펜던트??]


냐봉은 순간 손에 쥐어진 부서진 펜던트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의 펜던트와 똑같은 그것이었다.


[그럼 이게..케이트의 ...펜던트. 악마는 원래 이 펜던트는 본인이 만든 힘이라고 했었어. 그럼...케이트가 악마였단 말인가. 원래 악마들은 천상오피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고 했엇지.]


냐봉은 하나하나 기억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문제는 의문의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억에 남겨진 케이트의 시선이 항상 발 끝을 향하고 있어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단편적인 기억만으론 목소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냐봉...? 우리 잠든 거에요?]


잠에서 깬 엠제이가 몸을 겨우 일으키며 말했다. 엠제이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엉망이 된 사무실의 모습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다시 천상오피스로 소환되지 않았네..?]


냐봉은 엠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그놈과 연결됐을 때... 어떤 기억같은 게 공유됐거든요. 군데군데 끊어진 기억이라 명확하진 않은데... 이 악마의 이름은 케이트였어요. 원래 천상오피스에서 근무하던 사람이었던 거죠. 왠지 모르겠지만... 이 펜던트를 차고 있었고. 팀장? 아무튼 어떤 상사에게 엄청 혼나는 기억이 있어요.]

[응?..상사에게? 왜?]


엠제이는 몸을 바로 세우고 냐봉을 쳐다보았다.

[그 상사가... 뭔가 케이트의 성과를 훔쳐간 것 같아요. 케이트는 울고 있었고, 주변 동료들이 케이트를 위로 하고 있었어요.]


엠제이는 인상을 찌뿌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우리 옆에 본부장이랑 똑같은 짓을...이게 천상이나 지상이나 결국 회사란 곳은 에휴... 근데 그럼 케이트가 악마에요? 그럼 피해자였던 거야?]


냐봉은 미간을 찌뿌리며 어딘가 조각이 맞지 않는 기억들을 떠올려보려 애를 썼다.

[정황상... 케이트와 친했던 상사였고. 그녀를 이용해 일을 시키고, 그 성과는 낼름...?]

[쓰레기같은 놈일세...근데 케이트는 왜..그럼 악마가...?]


냐봉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기억 속의 펜던트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케이트의 꽉 쥔 주먹부터 어깨까지 잔뜩 경직된 채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펜던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선명했고, 무언가 의지가 담기고 있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악마가 펜던트에 담긴 힘은...자신의 힘이라고 했어요. 악마의 이름은 이기심이었고요. 그럼 펜던트에 담긴 힘은 이기심이라는 건데...케이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배신당하고 나서... 어쩌면..흑화?...같이...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었어요.]


02 의심


[그럼... 그 악마는 케이트가 흑화한 형태였던 거구나. 믿었던 상사에게 상처받았던 것을... 오히려 복수하듯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표현하면서 말이지]

[근데... 그 배신자 상사놈이 뭔가 익숙해요... 뭔가 어디서 들어본 말투인데...]

[어떻게 생겼는데?]

[얼굴은 기억에 없어요. 그래서..목소리만으로 유추하고 있는데. 말투가...어디서 들어봤더라.....]

[우리 회사 미친놈들 중에 그런 사람 많아서 헷갈리는 거 아냐?]

[아뇨..조금 최근의 기억인데.........]


냐봉과 엠제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갸웃하더니 엠제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또 그런 촉이 좋지. 뭔데 어떤 말툰데요]

[기억 나는 말투가... '나 인티제라 말 길게하는 거 안좋아한다...' 하고 막말을 쏟아내는데...]

[어?......... 나도 들어본 듯 한데...?]

[그죠?]


엠제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냐봉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고민했을까 먼저 포기한 쪽은 엠제이였다. 

[에휴...모르겠다. 안그래도 피곤한데 머리까지 쓰려니 더 피곤하네...]

엠제이는 냐봉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냐봉의 주머니에 있던 구슬이 빠져 또르르 흘렀다. 엠제이는 구슬을 집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신이란 양반은...뭐하는 거야. 일 끝났으면 빨리 소환을 해주던가..........어?]

[어?]

[맞죠?!]

[맞네!]


엠제이와 냐봉은 서로 마주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서로를 가리킨 손가락을 내려놓으며 먼저 입을 연 쪽은 냐봉이었다.


[신이다. 그 상사란 사람]

[맞다. 우리 처음에 미팅룸에서...똑같은 말을 했었지?]

[맞아요... 그럼 신이 케이트의 상사였고. 케이트의 공을 가로챘어. 그리고 그 펜던트가 케이트의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거고... 그걸 우리에게 줬고. 케이트...를 막으라고 내려보냈다?...]

[펜던트가 통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어]

[이름을 불러서 소멸하지 않을 수 있단 사실도 말하지 않았어]

[지난 여러 사람이... 이번 스테이지에서 아무도 돌아온 적이 없었다고 했죠?]

[반려와 구슬까지 챙겨주며 내려보낸 건... 우리가 사라지길 바란걸까요. 케이트가 사라지길 바란걸까요.]


엠제이는 순간 무언가를 떠올렸다.

[모든 게 마치... 당연하단 듯이 흘러갔어. 가만 생각해봐. 우린 죽었고, 어떤 문을 만났어요. 무작정 들어갔고... 자길 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등장했어.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있었나...?]


냐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냥 그렇다니까 그렇게 믿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안해봤네요.]

[그곳은 진짜 오피스가 맞는걸까?... 어쩌면. 그냥 회사같은 공간이어서... 늘 해오던 대로...]

[아무런 의심도 뭣도 없이 시키는 대로 그냥 일단 했다?]

[이유도 근거도 없는데... 그냥 그걸 하면 살려준다니까 무작정 일을 한 거잖아.]

[그렇네요... 일하듯이 말이죠.]

[일하듯이]

[어쩌면... 모든 게.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을지도...]


냐봉과 엠제이는 순간 스산한 한기를 느꼈다. 창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던 햇살이 잦아들었고, 사무실의 어지러진 모습이 차츰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다시 해가 져가고 있었다. 천상오피스에선 어떠한 반응도 연락도 없었다. 냐봉과 엠제이는 신이 말했던 조건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10명을 찾아 없애야 한다. 10일의 기한이 있고, 그게 지나면 우린 소멸한다. 그 말은 진짜였을까. 그 10명은...대체 왜 오피스를 떠나 탈주한 걸까. 만약...케이트와 같은 사연이 한 명이 아니라면...


냐봉과 엠제이는 잠시 말없이 어둠 속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둘의 어깨까지 그늘이 드리웠을 때였다. 


-덜그럭...-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냐봉과 엠제이는 순간 움찔하며 조심스레 일어났다. 냐봉은 반려를 다시 움켜쥐고, 엠제이도 주머니 속 구슬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옆에 있던 모니터를 둥실 띄워,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덜그럭..!-


책상의자가 발로 채이는 소리였다.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있다!

냐봉의 침삼키는 소리가 엠제이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저벅..저벅..-


발걸음소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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