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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Oct 15. 2023

8시간의 다정함

악마를 잡으러 출근합니다. 제10화 - 최종

이번에 새롭게 기획한 10회 분량의 사내 판타지 소설입니다 :) 처음부터 보셔야 꿀잼이고, 중간에 갑자기 보시면 뭔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이곳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와 이름, 상황은 가상이고 특정한 기업, 성별, 종교, 신앙, 동물, 음식, 신념, 가치관 등을 비하하거나 저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01. 소환


- 냐봉과 엠제이가 천상으로 올라오기 전-


케이트는 지상으로 떨어져 홀로 지내온지 5년이 넘었다. 그 사이 들러붙은 주변의 어두운 말과 감정들은 케이트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믿고 일했던 회사, 그리고 믿었던 상사의 말의 뒷면을 발견했을 때, 케이트는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다정함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다정함과 배신의 기억의 거리만큼 케이트는 추락해갔다. 끝내 케이트가 추악한 악마로 변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체념 하나로 충분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거친 생각이 케이트의 눈에 가득차올랐고, 손끝부터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었던 희미한 자신을 펜던트에 봉인했던 것이다.


냐봉과 엠제이는 다시 천상으로 올라가기 전 케이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우리가 올라가면 그 신이란 작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우릴 케이트처럼 만들려고 할거야. 아마 포털을 열어 지상으로 떨어뜨리겠지. 포털이 열리면, 좌표를 알 수 있을거야. 이게 하나 남았거든.]


엠제이는 자신의 목에 있는 펜던트를 들어보이며 생긋 웃었다. 케이트의 주변에 종이를 깔고, 라이터를 케이트의 손에 쥐어주었다. 


[좌표가 느껴지면 불을 붙이고, 올라와.]

[그 다음은요...?]


침을 삼키며 말하는 케이트를 보며 냐봉이 말했다.


[목격자가 생긴 거잖아. 모든 정황을 알고 있는. 회사의 부정한 일들은 침묵으로 정당화되는거야. 그러나 누군가 입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지지. 케이트는 입을 열면 돼.]

[하지만...만약 실패하면...]

[실패해도 다시 원점일 뿐 더 나빠질 건 없잖아.]


엠제이가 지니고 있던 펜던트도 케이트의 일부였다. 작게 쪼개진 자신이 분신처럼 케이트의 본체를 소환할 신호가 되는 것이다. 엠제이는 포털이 열리고 적당한 시점에 펜던트를 깨뜨려 케이트에게 좌표를 보내기로 했다. 직원들까지 달려들 줄은 몰랐지만, 작전은 성공했고. 케이트는 다시 오래 전 그곳으로 소환됐다.


02. 고발


[저..저게 왜 여기에...]


매니저는 한껏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케이트를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소환의 충격으로 달려들던 직원들은 나가떨어졌고, 매니저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뭐... 뭐든 좋아. 어차피 저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일단 쟤부터 잡아]


매니저의 심드렁한 지시에 직원들은 다시 몸을 일으켜 케이트를 향해 다가왔다. 냐봉은 반려를 거꾸로 쥐고, 직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감히!!] 반려의 칼날에선 묘한 빛이 뿜어져나오는 듯 했다. 칼날의 두 배이상 길어진 빛은 날카로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냐봉은 자신의 팔을 옭아매려는 녀석을 향해 반려를 크게 휘둘렀다. [어?] 칼날이 닿는 느낌이 없었지만, 녀석은 분명 타격을 입은 듯 연기를 뿜어내며 나뒹굴고 말았다. 반려는 거절의 기운을 강하게 응축시킨 영구였다. 거절의 정당성이 강해질 수록 반려의 힘도 세지는 것이었다. 검기는 더욱 길어졌고, 직원들은 냐봉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케이트!! 이제 빨리 자료를 찾아봐!!]


냐봉은 케이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동시에 엠제이도 옆에 있던 커다란 모니터를 들어 매니저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엠제이의 머릿속에 매니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갑자기 찾아온 두통에 엠제이는 염동력으로 허공에 띄운 모니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엠제이는 사방이 깜깜한 공허한 공간에 서있었다. 




[뭐..뭐야!]


그리고 멀리 의자에 앉아있는 매니저의 모습이 보였다.

[여긴 어딘데! 뭐하는 거야?]


매니저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단 둘이 얘기할 게 좀 있어서 말야.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좀 들어보도록 해. 바깥의 시간은 멈춰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엠제이는 구슬을 만지작 거렸지만, 주변에 어떤 것도 조종할 수 있는 물체가 없단 것을 깨닫고는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뭔데.]

[사실 생각해봐. 너도 8년째 직장생활을 했잖아. 이제 결혼준비도 하고 있었고 말야. 물론 죽어서 의미는 없어졌지만. 그러니 들어보라는 거야. 회사생활을 하면서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잖아. 하지만 그들이 항상 옳았던가? 회사에선 상식적으로 옳은 것보다 모두가 따르는 방식이 우선이라고. 룰이란 그래서 존재하는 것 아니겠어? 아니 상식이 통하는 집단이라면 왜 조직문화가 있고 사내 룰이 따로 존재하겠어.]


[그래서, 니가 한 행동이 모두를 위한 방식이었다고 말하고 싶은거야? 그런 개소리를?...]

[이봐 엠제이. 냉정하게 생각해. 이곳은 내 공간이야. 일개 영에 불과한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내가 한 번 더 포털을 연다면 아마 몇 초안에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게 될거야. 그리곤 다신 돌아올 수 없겠지. 거기서 케이트같은 모습으로 어둠에 젖어들어갈거야. 니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겠어. 천국? 현실? 어떤 것도 갈 수 없어. 우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잖아.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게 직장인의 숙명아닌가? 지금 니가 케이트를 위해 하려는 건 용기도 정의도 아냐. 그냥 알량한 정의감.. 아니지. 니가 살아있을 때 당했던 분노를 여기서 그냥 풀고싶은 거잖아.]


[.....그게 잘못됐어?.... 난 팀장으로 승진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옳은 소리를 해본 적이 없어. 그냥 위에서 하라니까, 부당해도 억울해도 짜증나도. 그냥 했다고. 때문에 항상 피해를 보는 건 우리 팀원들이었고.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온 이유는 그 업보를 씻고 싶었기 때문이야. 아직 나에겐 한 명의 팀원이 같이 있다고. 영혼이든 뭐든 상관없어. 마지막으로 떳떳해지고 싶다고.]


엠제이는 혼잣말같은 대답을 중얼거리며 호흡이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울컥함에 목에 메였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래, 내 말이 그거야. 니 팀원과 함께 여기서 다시 시작해보는거야. 이제부터 또 잘하면 되잖아.]

[여기나 저기나... 어차피 지랄맞은 건 매한가지인 걸..쿨럭!!]


숨통이 옥죄어오는 듯한 느낌이 점점 선명해졌다. 

[시간이 많지 않아.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거든. 영은 주변의 에너지를 빌려야만 존재할 수 있어. 주변의 기운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선... 얼마 버틸 수 없을거야. 여기서 지가 사라지면 냐봉은 어떻게 될까... 어떤 악마로 변할진 모르겠지만... 꽤나 골치아픈 녀석이 될 거란 건 분명해.]


엠제이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일은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게 아냐. 그건 목적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고.]

[그럼 왜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서 그렇게 죽상을 쓰며 일하는건데?...]


매니저는 비웃음섞인 말투로 엠제이에게 되물었다. 엠제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어. 물론 목표도 있고, 결과도 내야겠지.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엔 결국 팀원과 동료가 있다고. 회사가 뭔데. 사람이 모인 곳이란 뜻 아냐? 결국 누군가를 도와주고, 내 역할을 해내고 싶고, 고객에게 도움이 되고...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애쓰는 곳 아냐? 우리의 하루는 모두 다정함으로 채워져 있다고.]


엠제이는 말을 끝내고 헐떡이는 숨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양손을 뻗어 허공을 훑기 시작했다. 손 끝에 미세하게 걸리는 물체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다른 세계가 아니야. 내가 서있었던 그곳에 있어!] 오른손 끝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언진 모르겠지만,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고 조심스레 공중으로 띄워보았다. 


[다정함?... 정말 순수한 소리만 하고 있네, 헛수고 하지마. 바깥의 물건은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

[그럴 생각은 없는데?]

[뭐?]


[크헉!!!!!!!!!!!!!!!!!!]

매니저가 갸우뚱하던 찰나 엠제이 앞에 서있던 매니저는 비명을 지르며 저멀리 날아가 쳐박혔다. 그 순간 둘을 둘러싼 어두운 공간이 해제됐고, 멈춰있던 시간도 다시 흘렀다. 냐봉은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깜짝 놀란 듯 엠제이를 쳐다보았고, 짧은 순간 엠제이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매니저는 잔뜩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켰다. 엠제이는 장막 바깥에서 이 공간을 유지하고 있던 매니저에게 직접 물건을 날려보낸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건 꽤나 묵직한 3단서랍이었다. 


[난 문제의 본질을 보는 걸 좋아해. 니가 만든 허상에 놀아날 생각은 없거든]


엠제이는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나쁜 의도의 말들은 항상 달콤했어. 상무도 그랬고, 너도 그렇고. 되도 않는 소리를 포장하기 위해 오만 것들을 가져다 붙이지. 미안하지만... 다정함은 회유가 아니라 헌신일 뿐야. 매일매일 동료와 함께 동료를 위해 일하는 그 노력과 고민이 본질이라고. 그러니 맘에도 없는 다정한 말투는 제발 그만해]

[미친, 죽은 년 주제에 나를 가르치려 들어!!!?]


매니저는 이제 아무 상관없다는 듯 엠제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냐봉이 그 모습을 보고 외쳤다. 

[팀장님!!]

[괜찮아!! 빨리 그걸 완료해줘!!]

매니저는 순간 엠제이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 떨어진 컴퓨터에 케이트가 앉아있었고, 무언가를 급하게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매니저는 순간 멈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케이트 쪽으로 몸을 틀었다.


[저런 미친것들이!!!! 지금 뭘 쓰고 있는거야!!! 이런 개같은!!!! 당장 저것들 좀 끌어내]

매니저의 말에 직원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케이트를 향할 무렵, 냐봉은 1미터가 넘게 검기가 자란 반려를 들고 말했다. 검기는 다가오려는 녀석들에게 경고하는 듯 사납게 웅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퍼런 빛을 일렁거렸다.


[막지마. 몇 분 후면 너흰 공범이 될거고, 모든 것이 밝혀질거야. 더 이상 너희들이 저 사람의 말을 따를 필요는 없어.]


냐봉의 차가운 말투에 직원들은 공허한 눈빛으로 발걸음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뒤에선 달라가라고 소리치는 매니저가 있었고, 그 때 케이트가 외쳤다.


[마지막!!! 그 파일이 필요해요!!]


매니저의 눈이 동그래지며 직접 케이트를 향해 뛰어갈무렵, 엠제이도 매니저를 향해 달려들었다. 달리면서 엠제이는 주머니 속 구슬을 한 번 더 확인하며 케이트에게 외쳤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무슨 파일!!]

[지난 10년간 직원들을 지상으로 보내고 이들을 사냥한 기록이 있는 클래스원파일이 있어요!!! 그 파일이 어딨는지 찾아야해요!!]

[클래스원파일!!!]


엠제이는 케이트가 말한 단어를 더 크게 되뇌이며 몸을 날려 매니저를 껴안았다! 책상을 넘어 의자에 부딪히며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고 케이트가 말했던 파일이름을 몇 번 다시 크게 외쳤다. 그리곤 엠제이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내 매니저의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소유자의 강한 생각대로 움직이는 구슬의 능력을 역이용한 것이다. 매니저에게 구슬이 닿자, 파일이 있던 27번 노트북이 들썩이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니가 지우고 싶은 파일, 클래스원파일..! 저깄구나! 케이트 저 노트북이야!!!!!!]


[이런 어디서 꼼수를!!!! 저리 꺼져!!!]


매니저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휘두르며 들러붙은 엠제이를 발로 차 멀리 날려보냈다. 순간 구슬을 놓친 엠제이였다 [앗!!!] 

[멍청한 년!!] 매니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기어가 구슬을 집어들었다. 오른손을 번쩍 들어 27번 노트북을 허공으로 높이 들어올렸다. [안돼!!!] 그 모습을 본 냐봉이 한껏 팔을 뒤로 젖혔다가 온 힘을 다해 반려를 집어 던졌다. [슈우우우우우욱!!!!!!!!!] 찢어질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간 반려는 매니저가 손을 아래로 휘두르기 전 매너지의 어깨를 관통한 후 뒷벽에 그대로 박혔다. 허공에 떠있던 노트북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케이트는 몸을 날려 노트북을 잡아냈다. 


[찾았어요!!]

[이제 보내자!!]


케이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증거파일들을 드래그해 첨부한 후 발송버튼을 눌렀다.

[보냈어요!!]

[보냈어!!]





03. END


그 순간이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사무실 전체가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궁!!!!!] 

그리고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엠제이와 냐봉, 케이트는 모두 눈을 가려야만 했다. 진동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겨우 눈을 떴을 땐 냐봉과 엠제이가 처음 들어왔던 그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실루엣처럼 보이던 5명의 사람... 그리고 빛이 걷히자 정장차림에 눈코입이 없는 존재들이 그들 앞에 서있었다. 매니저와 직원들은 몸부림치려 해봤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듯 나자빠진 그 곳에서 낑낑대며 움찔 댈 뿐이었다.





[오딧츠....!]


케이트가 나지막히 외쳤다.

[오딧츠?]

[천상의 감사팀이에요. 이들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고위신의 직속팀이에요. 모든 것을 멈추고 심판한다고 해요.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기 위해... 눈코입귀...심지어 머리카락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머리카락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개쩌는 것은 분명하네...]


키가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오딧츠요원들은 사무실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매니저와 직원들을 하나하나 잡아 어디론가 소환시키기 시작했다. 멍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냐봉이 소리질렀다.


[으아아아가각!!!]


거대한 오딧츠 요원 한 명이 냐봉의 앞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실 눈이 없어서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지도 확실하진 않았지만, 이내 오딧츠는 손을 뻗어 냐봉을 향했다. 냐봉은 소리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엠제이는 뛰어들어 냐봉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이내 거대한 기둥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깜짝 놀란 엠제이가 올려다보니, 엠제이의 앞에도 거대한 오딧츠 요원이 우뚝 서있었다. 저항할 틈도 없이 오딧츠의 손에 붙잡힌 냐봉과 케이트와 케이트는 투명한 장막같은 것에 둘러싸인 채 이내 조금씩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다..이겼다고 생각했는데...]


엠제이는 희미해져가는 목소리로 문장을 끝내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 이후의 이야기


둘은 푸른 빛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화는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엠제이는 중간중간 웃어보였고, 냐봉도 깔깔거리며 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오딧츠에게 끌려간 후 4개월이 지났다. 길고 긴 조사를 받아야 했다. 지루한 시간이 끝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조사가 끝나고, 둘에겐 선택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다시 만나 하나의 길을 걸으며 대화는 이어졌다.


[팀장님이 말했던 거 꽤나 감동이 있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

[그 때 사실 저한테도 둘의 대화가 들렸거든요. 아마 녀석은 팀장님이 흔들리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봐요. 배신감 같은 걸 느끼도록... 마치 케이트처럼?]

[어떤 게 감동이었는데]

[뭐였더라. 다정함으로 일하는 거라면서요.]

[그 땐 뭐라했는지도 모르겠어.]

[그 단어가 꽤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데이터, OKR, 매출, 투자, 시스템... 항상 이런 것이 일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걸 잘 모르기도 하잖아.]

[맞아 본질쟁이니까.]

[이놈이!]


엠제이와 냐봉은 투닥거리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케이트는 언제와요?]

[지상에서 벌였던 일들이 조금 복잡한 게 많나봐. 뭐...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니. 정상참작이 되기도 하겠지만... 글쎄]

[어?!]

[케이트?!]

길의 맞은 편에서 둘을 향해 손을 흔드는 케이트가 보였다.


[저도 같이 가게 됐어요!!]

[아래에서의 일은?]

[그것 때문에 보직이 조금 변경되긴 했어요. 저는 봉사직으로 지상에서 세리프역할을 3년 이상 하는 걸로...]

[오호... 그래도 다행이야. 이젠 조금 다른 느낌으로 지상에 내려갈 수 있겠네?]


길은 한없이 이어지는 듯 보였다. 케이트와 냐봉과 엠제이는 잠시 말없이 걸음을 계속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케이트쪽이었다.


[둘은 다시 살아나고 싶지 않아요?]

엠제이와 냐봉은 케이트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케이트를 만나기 바로 직전, 무진장 지쳐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 이게 죽었다는 느낌보다... 뭔가 발령받아서 천상에 유배온 느낌이랄까... 심지어 사후세계가 있단 걸 알게 되니까... 어차피 좀 기다리면 다들 만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야. 그럼 우리가 선배가 되고?...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하지만 사후세계에서도 일을 해야할 줄은 몰랐어요.]

[생각해보면 신도 6일일하고 하루 쉬었다잖아. 창조가 아니라 사실 창업이었던 거야.]

[신은 좀 짠하네요. 특근수당도 없이...]

[자기가 대표잖아.]

[그러네]



대화가 끝날무렵, 둘은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문 앞에 당도했다. 세 명이 모두 문 앞에 섰을 때, 작은 진동과 함께 문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엠제이가 거대한 문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첫 출근이네.]


그 말에 냐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입사동기가 된거네요.]


케이트가 열린 문으로 한 걸음 걸어가며 냐봉과 엠제이를 뒤돌아보았다. 


[저도 동기에 껴주세요. 신입 오딧츠 요원님들]


냐봉과 엠제이는 케이트의 양옆으로 발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그러시죠. 케이트 요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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