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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an 27. 2024

젖꼭지 아플 때

므아아

달리기란 그 변덕이 참으로 독특하다. 분명 같은 동작에 같은 옷을 입고 뛰고 있지만 한 번은 무릎이 시큰거리고 한 번은 발목이 시큰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간간히 젖꼭지가 시릴 때가 있는데, 오늘은 새 옷도 아니고 평소에 늘상 입던 옷을 입고 뛰었음에도 그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건 참으로 대단한 고통이라, 양 팔로 나를 감싸는 굉장히 자기애적인 동작으로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이외의 자세는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사실상 나를 감싸는 동작이 가장 설득력있어 보인다.


음...젖꼭지가 옷에 쓸려서 아픈 것이라는 건 알고있다. 그럼 팔을 앞뒤로 치는 동작이 오늘따라 더욱 과격했던 것일까. 마치 흥부가 톱질하듯 스르렁스르렁 꼭지를 스치는 섬유의 어떤 분자구조가 젖꼭지를 사정없이 발겨버린 것이겠지.


이불에나 부비적 대야할 주말 아침 난데없는 마찰공격을 당한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예상컨대 젖꼭지는 분명 내향형이다. 물론 젖꼭지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는(정확히는 그들은) 가슴팍에 파묻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 이외에 어떤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사실 어떤 운동도 젖꼭지를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은데 유독 달리기만은 한 번씩 그를 자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럴 때면 이처럼 신경질적으로 자기어필을 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어 사뭇 놀라곤 한다. 


한 번 화가 난 녀석을 달랠 방법은 거의 없다. 한 번 쓸린 젖꼭지를 부여안고 샤워를 해보자. 온 몸의 신경들이 혁명적으로 들고 일어나 저릿저릿함을 선사할 것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대부분의 불쾌감이 옥천허브마냥 젖꼭지를 거쳐가는 듯. 이쯤되면 바세린으로 잠시 그를 세상과 단절시켜놓고 케어리브로 봉인하고나서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샤워가 끝난 후 겁나 시린 녀석을 바세린으로 달래며 출근 준비를 해본다. 물론 몹시 불쾌하고 고통스럽지만 생각해보면 젖꼭지의 이런 모습은 꽤나 교훈적이다. 분명 내 몸의 점같은 두 개의 일부분일 뿐이지만, 오히려 전체집합인 나 자신보다 더 대단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분명 지나가는 행인에게 레이저를 쏠 것 같은 당당한 위치에 있지만, 딱히 본인을 드러내진 않고. 괴롭혔을 때 적당히 참아주는 인내심도 있는데, 한계를 넘어서면 온 몸을 뒤흔들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겸손하되 지랄도 할 줄 아는 꽤나 당당한 친구구나...이런 생각을 하며, 주말에도 일을 하러 사무실에 나섰다. 젖꼭지처럼 일해야지! 겸손하지만, 지랄할 땐 레이저도 쏴버릴 것 같은 카리스마로. 므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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