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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cle monica May 24. 2021

프롤로그 ;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변화는 시작되었다. 순간 삭제되어 버린 것만 같은 꿀 주말을 보내고 어김없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아직은 보건소에서 받아온 핑크색 임산부 배지가 쑥스러운 15주 차 임산부, 입덧기가 약간 있어 시도 때도 없이 내 코를 찌르는 격하 고도 역한, 세상의 모든 냄새를 잘 참아내야 하는 임신 초기였다. 아직 회사에는 비밀이었고, 나의 왼쪽 바지 주머니에는 항상 비상용 레몬맛 리콜라 캔디가 있었다. 



문득 그때,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서 아기 옹알이 소리를 들었다. 평소에는 절대 귀 기울이거나 신경 쓰지 않았을 그 주파수의 작은 소리였다. 그 날 따라 왜 이렇게 또렷하고 선명하게 내 귀에 꽂히던지. 무심결에 소리를 찾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짧은 탐색의 끝에 나는 털이 뽀얗고 하얀 작은 아기 길고양이의 눈망울과 마주쳤다. 빤히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왜 그렇게 애처롭고 쓸쓸해 보였을까. 



난 그렇게 아기 고양이의 처지에 쉬이 감정이입을 해버렸다. 그 사이 한 방울 눈물도 또르르 맺혔다. 내 몸속 어느 한 구석에서 멍울멍울져 올라오던 그 작은 생명체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의 그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는 내 배 안에 작은 생명을 품어 한없이 위대하면서도, 임신 호르몬에 취해 널뛰는 감정에 휘둘리는 임산부였다. 나 스스로도 여전히 생경하고 낯설었지만. 



임신하기 이전까지의 삶에서는 항상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잠시도 딴짓을 하거나 방황할 틈도 없이 교과서를 품에 끼고 10대를 보냈다. 어느덧 20대가 되어보니, 세상은 무한히 넓고 새로이 경험할 건 참 많았다. 캠퍼스의 안팎에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과 교류하고, 전공 수업에서 만난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그의 젊은 시절 일기에도 탐닉했다. 마음이 끌렸던 마케팅 분야와 마티스가 좋아 가장 상업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도시,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핑계 삼아 '살아보는'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미완성인 삶을 사는 중이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인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어디에 나를 위치시키며 살아야 충만함을 찾을 수 있을지 매일 헤매었다. 지금껏 충분히 잘 살아왔다고 한껏 고양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이룬게 없는 것 같은 불안감으로 침잠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자주 자기 불신과 확신 사이의 무한 소용돌이에 빠져 고민인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그 고민들이 이제는 다 해결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직장인 11년 차인 오늘날에도 나의 고민은 뿌연 미래 속에서 계속되는 중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마케터가 적성에 맞나. 나는 언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할까. 도대체 왜 나는 N잡러가 못 될직장인 사춘기는 언제 끝이 날지. 하염없이 고민인 와중에 뜨거운 연애를 하고, 무던하게 결혼을 해 버렸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 이전까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임신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아기였지만 삼십 년 넘게 살아온 내 삶도 확신이 없는데, 한 아이의 탄생과 앞으로의 삶에 온전한 책임을 져야 헌다니 덜컥 겁이 났다. '축하해. 이제 네 삶은 아이가 자라 독립하기 전까지 없는 거나 다름없어.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을 때야. 충분히 즐기렴. 참 태교 한다고 극성부리지 말고 원래의 너대로 제일 편안하게 지내.' 가까운 선배의 조언은 그 때의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는 상태. 자연스러움의 정의였다. 이러한 태도와 마음 자세로 임신 기간의 열 달을 크게 힘들이거나 애쓰지 않은 것처럼, 원래의 내 삶의 결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지내보려고 했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태교가 있다지만 제일 나답게, 자연스러운 나의 온전한 일상과 감정으로 뱃속의 아이에게 이어졌으면 했다. 평온하게 내 아이가 온전히 십 개월을 내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희망이 생겼다. 



자연주의 태교(Natural-Prenatal Training). 자연주의 출산으로 아기를 낳기로 정하고, 아기를 낳기까지의 나의 삶 그 자체를 자연주의 태교라고 명명해보기로 했다. 자연주의 출산이란 특별한 출산 방법이 아닌 아주 단순한 삶의 섭리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편안한 환경에서 평온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아기를 맞이하는 과정이었다. 으레 현대 산모의 출산에 필수적이라고 여겼던 의료 개입을 가능한 한 산모와 아기의 상태에 맞추어 최소화하는 과정에 그 의미가 있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열개의 챕터는 이러한 나의 시행착오와 고민이 담긴 10개월의 자연주의 태교와 함께 한 엄마가 되는 여정을 담았다. 거대해 보이는 삶 앞에서 항상 고민 많고 주저했던 내가 이제는 나보다 나보다 더 작고 힘없는 대상에 감탄하고 공감하며, 애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천천히 나답게, 나만의 태교를 통해 이전보다는 나아진 나로서 온전한 엄마가 되기로 노력해보기로 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처럼 고민 많고, 걱정 많을 초보맘들에게도 괜찮다고, 당신도 잘할 수 있다고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메세지를 건네 보고자 한다. 


생각이 달라지면, 모든 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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