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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cle monica Sep 05. 2021

5개월 차 ; 지금 이 순간

자연주의 태교법 - 태교여행 고민고민 하지마

한없이 부족한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아가야 / 비안( b.ahn) 정원에서 진행한 셀프 촬영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채 남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내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참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감력이 다소 떨어지고 팔랑귀 타입에서 먼 나는 그래서 남의 이야기는 남의 사정일 뿐이라고 쉽게 단정해왔다.



임산부는 만사가 귀찮다. 아무리 멋진 풍광맛난 산해진미를 가져다준다 해도 그닥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이국적인 장소새로운 경험이 기대된다 한 오랜 비행기 이동시간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거기에 태교라는 이름을 붙이며 부산스럽게 챙길 필요가 있을까도 싶었다.



"그래서 넌 언제 가려고?" 막 임신을 한 지인의 질문에 굉장히 딱딱하고 날카롭게 반응했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무거워 임산부가 굳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마치 허니문처럼 반드시 임신 기간 중에 꼭 가야 한다고 귀에 인이 박히듯 들었던 바로 그 '태교 여행'이었다.  



나는 의외로 지극히 무던한 선택에 익숙한 사람이다. 주변에 과시하고 떠들기보다는 그저 내 온전한 경험에 푹 묻히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혼여행도 대단히 특별하지 않은 국민 여행지, 하와이로 다녀왔다. 나의 허니문 로망이란 선베드에서 늘어지게 낮잠 자기와 스노클링 정도의 해변 액티비티를 즐기고, 여유로운 하와이 사람들의 삶을 잠시라도 직접 온몸으로 체험하고 느껴보는 것, 그뿐이었다.



이름부터 남사스럽게 요란한 태교 여행은 원래 내 계획에는 없었다. 굳이 아기가 태어난 후에 기회가 적다는 이유로 혹은 남들이 다 간다기에 괌으로 발리로 요란하게 떠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앞으로의 여행은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갈 수 있으면 형편대로 가는 거라고 단순하고 시큰둥하게 치부했다.



그렇지만 여행에 이름을 붙이면 의미가 생긴다. 그래서 모든 제각각의 여행은 다 의미가 있다. 결국, 임신 중 여행이자 태교 여행이라고 이름 붙여질 여행이 가고 싶어 진 건 다름 아닌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본 독채형 숙소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앞 뜰에는 귀여운 귤 밭과 라벤더 꽃이 펼쳐져 있는 하얀빛의 심플하면서도 단아한 독채 건축물에 내 마음을 푹 빼앗겨 버렸다.



푸른 밤의 낭만이 가득한 제주였다. 결혼 초기에도 일 년에 두 번씩은 다녀왔던 익숙한 장소였다. 가까운 거리에 앞으로 갈 수 있는 기회는 많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조용한 휴식을 모토로 하고 있기에 영유아 포함 미성년자 동반 예약이 불가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앞으로는 다신 기회가 없겠구나. 간사하게도 남들 다 한다는데 나도 한번 해보지 뭐. 다 하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남편을 설득했다.  



태교 여행은 최대한 심플하게, 가능하면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급한 응급 상황이나 급격한 컨디션 저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일정도 설렁설렁 너무 빡빡하게 잡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임신 12주 이전과 36주 이후인 만삭 시기 때만 피한다면, 그리고 가능하면 10시간 이내로 비행기를 타는 건 태아에게도 무리가 크게 되지 않는다 한다.(물론, 개인차가 있으니 우려가 된다면 직접 전문의에게 상담해야 한다.)  



나도  단순하게 여행하기로 했다. 3박 4일의 일정을 평상시 가보고 싶었던 장소 중 하루에 한 곳 정도만 들르되 어디든 머물고 싶은 장소에서 여유롭게 보내고 오기로 했다. 청보리가 한창이라는 가파도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왕복 1시간 반 정도로 중기 임산부가 오르기에 적당하다는 새별오름을 들르는 코스였다. 더불어 숙소에서는 셀프 촬영을 진행하기로. 뱃속 아기와의 소중한 추억을 기념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는 길에 교통 약자로서 누리는 프리 패스 혜택에 꽤 놀랐다. (교통 약자에는 장애인, 임산부, 80세 이상의 고령자, 18개월 미만의 영아가 포함된다.) 탑승 수속 시 임산부임을 밝히고 교통약자 스티커를 받아 검색대를 별도의 줄 서기 없이 빠르게 통과했다.



예전 같으면 비교적 젊고 건강해 보이는 임산부에 대한 상대적 배려가 조금은 과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섬세한 배려와 따스한 눈길에 그렇게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다시 한번, 내 아기가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타자에게 관대하고,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날씨는 우리 편이었고, 대체로의 제주 일정은 평화로웠다. 차르르 흔들리는 청보리가 빠진 민 머리의 가파도를 만난 일만 빼면 말이다. 인원이 몰리는 축제 일정을 피해 방문한 가파도에서는 청 보릿대 꽁지만 달랑 볼 수 있었다. 축제가 끝나자마자 수확하는 줄은 둘 다 미처 몰랐다. 아쉬운 마음에 두 발을 동동 굴러도, 별 수가 없었다.



두모악 갤러리에서 만난 김영갑의 오름은 삶에 대한 그의 치열한 의지의 집약체였다. 오름을 둘러싼 제주의 바람, 구름, 나무, 풀이 모두 한 몸처럼 외로운 듯 외롭지 않은 듯 꼿꼿한 그의 사진에 담겨 있었다. 실제의 새별 오름에 올라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볼 때는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타오르고, 벅차올랐다. 이 아름다운 제주에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다시 와봐야 할 이유를 얻은 것만으로도 모든 게 충만했다.



의외로 제주 태교여행에서 즐거웠던 건 셀프 촬영이었다. 촬영은 나의 제주 태교 여행의 로망이었던 하얀 집 숙소 비안의 안팎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미리 블로그 검색을 통해 준비한 투명 메시지 카드와 D라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몸에 달라붙는 면 원피스, 귀여운 꼬까신도 찰떡궁합이었다.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만나자. 환영해 그리고 사랑해"와 같은 낯 간지러운 말들을 가득 써서 신나게 들고, 아기와 교감하고, 축하해주는 시간은 마치 뱃속 아가가 꼬물거리며 진짜 셋이 함께 하는 것 같았다. 오롯이 이 생명과 탄생이 만들어 내는 축제의 주인공처럼 신이 나는 기분을 충분히 만끽했다.



이제, 태교 여행이 과연 필요한지 누가 묻는다면 나는 무조건 예스다. 태교 여행을 임산부의 사치재처럼 치부하고, 꽤 시큰둥하게 반응할 사람도 여전히 있겠지만 (마치 예전의 나처럼 말이다.) 그래도 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태교라는 부담을 쫙 뺀 그냥 즐길 수 있는 여행이기만 해도 물론 좋다.




일상에서의 벗어남을 통해 얻어지는 경험과 그때의 순간적인 감정을 충분히 소화해내는 일들은 언제나 특별하기 때문이다. 몸과 기분이 시시각각 호르몬에 의해 좌우되는 임신 중이니 물론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필요하다.



문득, 임산부의 여행에 '자유' 대신 '태교'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엄마가 수행해야 할 거창한 무게의 의무와 중압감이 반영된 것 같기도 했다.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자유롭게 본인의 의지대로 여행을 다니지 못하고 앞으로도 사회의 시선 아래서 언제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감정의 정화뿐 아니라 부부 사이의 관계도 더 돈독하게 해주는 태교 여행을 예비 엄마의 몸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도, 뱃속 아기를 위해서도 적극 추천하는 바다. 여행은 우리가 지닌 능력 밖의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소중한 삶과 희망의 끈이기 때문이며 그 인과는 임산부라고 다르게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고민말고 떠날 것.








출처: http://www.dumoak.co.kr/bbs 두모악 홈페이지

삶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삶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람 능력 밖의 세계를 나는 믿는다.

(사진작가 김영갑)









*태교 여행을 위한 제주도 여행 추천 스폿


숙소- 비안(b.ahn)


갤러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새별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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