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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cle monica May 24. 2021

1개월 차 ; 임신의 시작

제각각 다른 시작점에서의 출발




인생이 다 계획대로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싶었다. 이제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여자의 삶에 임신과 같은 중대사를 받아들이기에 최적기가 따로 있지는 않겠지. 그런데 어느덧 내 나이 만 35세, 공식적으로 인증된 노산의 문턱을 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오빠와 나, 그리고 부모님을 포함한 4개의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모습을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생각해 왔었다. 이 같은 가족 구성의 청사진은 인생의 파트너로 삼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길지 않은 연애 동안 거창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가족계획까지 충분히 묻지는 못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2세를 언제쯤 준비할지, 딸과 아들 중에서 어느 성별을 선호하는지, 외동으로 충분할지, 아니면 둘 이상을 원하는지, 자식 교육에는 어떠한 방침이 있는지에 어떤 커플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나 있었겠는가. 그나마 막연하게나마, 각자가 살아오고 지금도 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각자 가족의 삶의 연장선상의 모습처럼 무던하게 우리도 비슷하게 꾸려가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게 다였다.



사실, 나와 그의 성향은 정반대나 다름이 없었다. 남편은 당장이라도 아이가 있어 안정적인 가족을 형성하고 싶은 굉장히 공동체적이며 가정 친화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개인의 독립성이 소중한 개인주의자에, 일 욕심도 많고 취미도 많은 성취 지향가에 가까운 타입이었다. 비록 평소에는 유부녀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그럭저럭 잘 수행하는 편이었지만, 아주 가끔은 다 벗어던지고 누구의 아내, 며느리가 아닌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은 날도 굉장히 많은 삼십 대 중반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비록 결혼은 했지만, 30대 싱글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게 꿈이라며 남편에게 자주 이야기 하곤 했다. 아이들을 보면 정말 사랑스러웠지만, 동시에 그들을 돌보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고에는 무심했다. 만  외동딸을 하루종일 끼고 사는 절친은 아이가 주는 행복감이 그 힘듦을 보상하고도 남는다며 나를 철부지 취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최대한 둘이 즐길 수 있을 만큼 신혼의 허니문을 즐기며, 가능한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뤄보자. 그리고 그때 가서 생각해도 전혀 늦지 않다고.  



딱히 큰 스케줄이 없는 주말을 앞두고 마음이 더 편안한 그런 금요일 밤이었다. 여기서 큰 스케줄이라고 함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가족 행사를 의미한다. 의외로 결혼을 하고 나면 챙겨야 하는 가정의 대소사가 굉장히 많아진다. 결혼 후에는 이것이 축복인가, 마법인가 싶을 정도로 2배 이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번 주에는 편하게 늘어져도 되고, 완전히 자유롭게 푹 쉬고 지낼 수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한 주의 피곤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남편이 지난 프랑스 출장에서 사 온 귀한 와인을 한 병 뜯었다. 안주는 고소한 큐브 치즈면 충분했다. 지난 한 주는 각자 회사 생활을 하느라 바빠 의외로 다정한 대화 한 번 하지 못했었다. 이렇게 둘이 마주 앉아 따뜻한 음악에 함께 한다는 사실이 새삼 위대하면서도, 대범한 일상처럼 느껴졌다. 오롯이 둘만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밀도와 우리 주변을 둘러싼 공기의 내음도 참 좋았던 걸로 기억된다. 남편이 이 한 마디를 꺼내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에게도 이제 아이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 갑자기 2세 계획이라니. 얼굴이 화들짝 달아올랐다. 최근 들어 속으로 은근히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내심 고민하고 있던 차였던지라 마치 숨기고 싶었던 내 치부를 들킨 것처럼 깜짝 놀랐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상대방의 직언이 나에게 들이 닥치니 나의 방어 기제가 금세 작동했다. 



"응? 내가 준비가 되면 얘기한다고 했잖아. 왜 이렇게 자꾸 나를 재촉해! 어차피 내 뱃속에서 키우고, 내가 아프게 낳고, 낳고 나면 거의 엄마인 내가 전적으로 키워야 할 텐데. 오빠가 낳을 것도 아니잖아. 기달려 달라고 했잖아.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 안방으로 들어와 문을 쾅 닫은 채, 침대에 달려들어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결혼이 아니라고. 임박해 오는 임신과 노산의 데드라인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으로 사로잡힌 나의 치부가 처절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렇게 밤새 나 만의 동굴 속에서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스스로도 참 멍청이 같다고 생각했다. 둘이 차분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풀어보면 조금은 나았을텐데. 솔직히 나는 그것이 전적으로 내가 우선해서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여겼던것 같다. 안 그래도 내 독립적인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임신에 대한 나의 의견을, 가장 적정한 시기를 묻기 위한 가장 좋은 타이밍을 찾기 위해 내심 며칠은 고민했을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건 온전히 내가 비겁했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없었다. 나는 분명하게도 임신과 출산을 내 삶의 장애물로 여기고, 그 두려움의 감정에 우유부단하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아기를 갖기 위해 갖은 주체적인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사실은 선명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도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아이는 원하는 때에 절대 원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주변 임신 유경험자들의 한결같은 조언이었다. 임신에 있어서라면 가능하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가 정답이었다. 



이제 당당히 맞닥뜨려야 했다. 그리고 인정해야 했다. 항상 매사 똑 부러지는 결단력에 냉철한 사고판단력으로 무장한 나도 임신 앞에서는 꽤 쭈뼛거렸다는 것을 말이다. 내 자신을 마주서고 임신 하기로 마음을 먹으니 의외로 후련했다. 안에 웅크리고 있던 막연한 무서움과 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서러움의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용기가 생겼다. 나의 임신 선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제 엄마가 되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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