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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cle monica Aug 05. 2024

무지에서 앎으로, 우연의 필연 김종영 조각

 <제작과 반성> 김종영미술관 @북악정

혼종의 도시, 뒤섞여서 더 흥미로운 도시 서울 탐구


자기를 개척하고 표현하려면
우선 남의 일을 이해해야 한다.
자기를 비옥하게, 사고를 풍부하게,
대등한 처지에서 이해해야 한다.
-1966년 미술해부학 수업에서
(우성 김종영, 1915~1982)




 주말에 친정 가족 모임이 있어 평창동을 찾았습니다.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에, 부암동과 정릉동 사이에 위치한 평창동은 전통 부촌이자,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지 않은 탓에 무언가 다소 어렵고, 깐깐한 인상을 주는 동네입니다. 서울 옥션과 가나 아트센터, 토탈 미술관 등을 위시해 오래된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다수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번의 아트 앤 노포 산책은 정말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김종영 미술관은 예전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적에 따로 방문을 계획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미술관 운영의 긴급 사정으로 문 앞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갔었거든요. 연이 안 닿았나 싶어 그 후로는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평창동의 오래된 노포로 식사 자리가 정해진 까닭에 주변의 미술관을 한 번 찾아서 들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주말 가족과의 스케줄은 이미 제 것이 아니니까요. 대세에 따라야 하는 법. 그런데 식사 후 들른 근방의 경치 좋은 카페가 글쎄 김종영 미술관 건물 내에 있는 거였더라고요.

 

 되는 놈은 엎어져도 금가락지라고 운수가 꽤나 좋은 날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매일이 이렇게 럭키비키한 날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을 가족에게 맡기고 2~3번은 미술관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제 마음껏 그렇게 궁금했던 김종영 작가의 작품을, 그의 철학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에 꼿꼿한 작품까지 온전히 즐긴 이 날이 아직도 여운이 남습니다.  



  


 


 

 김종영(1915-1982)은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세계 속의 한국미술을 꿈꾸며 서구 미술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킬지 늘 고민했던 예술가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개별 작품의 아름다움보다는 조각의 보편적 형식과 입체, 구조에 대한 순수 조형 적 논리 탐구를 통해 조각의 미를 추구했어요.


 솔직하게는 개인적으로 이전까지 회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턱이 높은 조각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작품들이, 더 마음 한편에 깊숙이 들어오는 작가들이 조각이라는 매체의 범위 안에 들어오더라고요.

 

 신기한 인연은 더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5월의 아트 앤 노포 포스팅에서 다룬 최종태 작가가 바로 김종영 작가의 제자였던 거예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연은 더 깊고, 특히 최종태 작가의 작품 세계에 있어 스승인 김종영 작가의 영향력이 매우 깊었다고 하니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것 치고는 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참, 제가 언급한 적 있는 최종태 작가의 초록색 성모상과 비슷한 채색 목조 조각 작품도 발견했습니다! 굉장히 현대적이죠. *http://kimchongyung.com/work/solid)  

 

 큰 사전 지식 없이도 본관의 소담한 4개의 전시실을 둘러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작품 사이를 거닐며 작가의 말과 글들도 함께 감상하다 보면 과장된 기교도, 복잡한 이론도 큰 소용이 없었거든요. 주로 청동, 나무, 돌을 재료로 한 조각들과 그 원천이 된 드로잉들을 둘러보며 단순한 형상들 안에 정제된 기운을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생각에서 글로, 평면의 드로잉에서 입체의 조각으로




  "예술가는 자기 예술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자부심을 갖되,

   인간적으로는 절대로 겸손, 인자해야 한다.

   먼저 眞善美勇(진선미용)의

   인격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제일 몰입하여 감상했던 작품은 바로 1971년에 제작된 <자각상 B>이었습니다. 자화상은 많이 접해보았는데,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조각한, 자각상은 처음이었죠. 굉장히 어두운 단독의 전시실 안의 좌대 위에 작가의 형상이 담긴 목조각상 하나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머리의 묘사도 제거된 비대칭의 눈, 코, 입은 당시 쉰여섯 해를 살아낸 작가가 스스로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각 부위의 형태는 명확하지 않고, 입체감도 없이 지극히 평면적인 모습입니다. 오히려 드로잉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정면을 응시하며 관조하는 듯하기도 하고, 무언가에 홀린듯한 모습 같기도 합니다.   


 얼굴의 드리운 굴곡지고, 촘촘한 나뭇결의 흔적이 유달리 눈에 띄었습니다. 작품 설명의 도움으로 해당 작품의 재료가 된 나무가 국보 1호인 숭례문의 대규모 해체 보수 작업 과정에서 수집된 폐목재인 것을 알고 나니 또 작품의 의미가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특히 서예에 조예가 깊었던 작가의 정체성이 연결되어 전통을 뿌리에 두고, 그 위에 자신의 철학을 더한 김종영 작가 미감의 정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주 우연한 만남에, 모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가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더 찾아 함께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던 미술관 산책이었습니다. 드로잉, 조각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예술 세계를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글들도 앞으로 쭉 꾸준히 찾아 읽어보려고요. 그것이 일상 속 무지에서 앎으로 향하는 제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과 희망!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추상하는 과정의 결과물이 김종영 작가의 자화상/자각상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옛 느낌 정취 인테리어 그대로! 80년대 오리지널 감성은 흉내 불가


 1982년에 개관한 북악정은 북한산을 등에 진 위치에 오랜 맛과 전통으로 40년 넘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평창동의 노포 생갈비 맛집입니다. 자작하게 배어있는 갈비 양념이 불과 맞닿아 지글지글 구워지면, 더 늦기 전에 입으로 쏙 가져가야 합니다. 씹을 필요도 크게 없이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딱 적합한 남녀노소 무소불위의 달큼하고, 고소한 육즙의 맛입니다.


 본관의 건물은 향수를 자아내는 레트로, 옛 느낌 그대로의 정취를 신기하게만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멀리서도 오래된 지역 명소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짙은 녹색의 북악정 글자 간판도, 원형의 벽돌로 마감된 건축도 딱 80년대의 감성 그 자체입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길의 계단 옆에는 졸졸 작은 물이 흘러 1층의 작은 연못 혹은 폭포로 연결되는 인테리어적인 장치도 굉장히 예스럽습니다.


 이것 또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듯합니다. 공간과 맛 탐색이 아닌 온전히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들렀던 만큼 제대로 속속들이 북악정을 둘러보지를 못했습니다. 아스라이 부모님과 함께 외식마다 들렀던 어린 시절의 갈빗집을 연상하게 하는 느낌만 오롯이 남아 있기에 조만간 호젓하게 김종영 미술관과 카페 사미루를 즐기러, 또 오랜 내공의 갈비맛을 음미하러 한 번 더 가보아야 할 듯싶어요. (시시각각 사진으로 기록하기 좋아하는 제가 갈비 사진도 놓쳤을 정도입니다 ㅎㅎ)


 



 우연 안에는 촘촘하게 쌓아 올린 필연의 과정이 숨어 있다고 믿습니다. 딱 지금, 다시 김종영 미술관과 북악정을 만난 것도 과거의 어느 날, 그리고 먼 훗날의 어느 날을 연결해 주는 어떤 특이점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기시감도 듭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야 할 장소에서 만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 또 고된 날들이 있었습니다. 무려 한 달이 넘게, 심지어 여러 번을 고치고 다듬다가 호로록 작성해 둔 문단 전체를 날리는 일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끝을 냈다는 것에 작은 의미를 두어보려고 합니다 :)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제작과 반성>이라는 화두로 다시 돌아오게 되네요. 무조건 글을 쓰다가 잘 저장해 둘 것. 한 자리에서 한 호흡으로 가능한 쓸 것. 먼저 생각하고 쓸 것.



 폭염에 너무 지쳐있지 않기로 해요. 8월에는 더더더 부지런히 흔적 남겨보겠습니다 :) 그럼 또 만나요. 곧!     






⭐️See

김종영의 조각과 글 part 3 《제작과 반성》

장소- 김종영 미술관 본관 불각재

장르- 조각

관람시간- 화-일 10am-6pm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Eat

평창동 북악정 본관

서울 종로구 평창36길 6





 Isamu Noguchi, <Work (Mask)>,  1952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85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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