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혜 Jan 23. 2016

3살 인생, 내방하시다

후반전의 일상다반사

수도권에서 며칠 보내다 부모님과 가족들을 보러 고향에 잠시 들렀다. 

다시 일하기 전, 오랜만에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 좋은 것 중 하나가 조카님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 사실 그가 나보다 더 바쁜 요즘이라 그의 여유 시간에 찾아주시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보고 있는 실정이다.                                                                                                                   

암튼 그 사랑하는 나의 유일한 조카님께서 불금을 맞아 어린이집 스케쥴을 끝내시고 내방(內房)을 하셨다.
태어난 이후로 난 서울에, 조카님은 지방에 살아 찐득한 정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 본 적이 많지 않은 탓에 
일년에 한두번 잠깐씩 볼 때마다 난 늘 조카님께 낯선 사람이었다. (38개월(?) 전엔 엄마 외에 병풍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넘 오랜만에 만난 조카님에게 난 낯선 이모.
사랑하는 조카와의 인연을 쌓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년 초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외마디 말 외엔 말을 못하던 아기가 
그새 말이 유창하게 늘어 하고싶은 말씀을 다는 아이가 되셨다.
그 중에서도 싫다는 의사 표현은 외가의 핏줄을 물려받은 탓에 유독 더. 하하하하^^;;

이래저래 여러가지 고집을 피우던 조카님과 대화를 하던 나는, 문득 그와 조곤조곤 대화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는 듣는지, 온전히 이해는 하고 있는지 그의 심연을 내 정확히는 알 길이 없으나,
왜 이모는 침 튀기며 메롱하는 것이 싫은지, 왜 너는 나를 주먹으로 때리면 안되는지 설명을 하면서
나는 이 만 세돌이 안된 아가와 인격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이와 소통을 하고 싶다.

그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란 존재로 태어나 자라가고 있고, 내가 지나왔던 시간을 똑같이 지나가고 있는,
그저 태어난 시간이 다르기만 할 뿐인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2주 후에 태어난지 3년이 된 조카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3살 인생의 생각과 특징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내 의사도 정확히 표현을 하였다.
그러니, 본지 3일 째에 늘 곁에 있던 외삼촌 정도야 가벼이 즈려밟고,
"이모가 좋아, 삼촌이 좋아?"에서 즉시 "이모!"라는 답변을 쟁취!하고야 말았다.

같잖지도 않은 글로벌하지 못한 '한국 나이'따위로 미운 4살이란다, 벌써. (언제 이렇게 컸는지 원)
어린이집을 다닌 이후로, 누구에게 배웠는지 입을 푸루루루루- 털고 침 튀기기 신공을 배워오셔서 
그 침이 드러워서 피하면 바로 "겁쟁이!!"라고 놀리는 세트 메뉴를  수시로 시전해주고 계신다. 하하하하;;;;
내 자식은 아니지만서도 지금은 우리 형제 중의 유일한 아기 사람이라 거의 내 자식급인데...
나가서 저러다가 미운털 박히지는 않을지, 버릇없는 아이로 찍힐까봐 신경이 쓰이고 있는데...
부모가 할 걱정을 같이 하며 고쳤으면 하는 바램이 없잖아 있다. -_-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에 들지 않고 고치고 싶은 부분이 그 세 살 인생 아이에게 한 두개일까마는...

그럼에도, 그 침을 피하여 틈을 타 "이모 뽀뽀-"하면 입술을 쪽- 갖다 대주고, 
쉬-하다가 조준을 잘못해 젖은 바지를 드라이기로 말리는 걸 배워 이모 보여준다고 자랑스레 뛰어오고,
내가 아끼는 스타벅스 컵의 빨대를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망가트리긴 하나 엄마 대신 이모에게 목마르다 물달라 해주고,
라바를 보면서 이모에게 안겨주고 그 새 나와 대화를 하며 살포시 기대주는 우리 조카님을 보면서
아, 사랑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가 내 영혼의 사랑을 느끼고 있구나-하는 확신이 든다.
이 아이의 영혼을 옳은 데로 이끄는 것은 오직 사랑 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뭉클하였다.
훈육하지 않고 오냐오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사랑해주고, 인간대 인간으로 소통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이 아이를 옳은 데로 이끌어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할 거라는 믿음이 마구 생긴다.

오직 사랑, 참다운 사랑,
주님의 사랑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
그가 가고 비록 방전된 듯 자리에 누워야 했으나 그가 그의 모친의 품에 안겨 떠나기 전, 

진심으로 "내일도 와서 이모랑 놀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랑.
오늘 조카님을 보며 그 사랑을 묵상하였다.                                                    


그리고 난 내 컵의 실리콘 빨대가 그의 이빨자국으로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지금 발견하였을 뿐이고...

막내한테 귀국 선물로 받은, 새 건데..... 하아..... 사랑.


작가의 이전글 무모한 도전의 마지막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