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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성 Dec 23. 2018

여자 그리고 엄마

2화. 미혼모를 돕는 가장 쉬운 방법



그녀는 아직 10대입니다. 가정폭력에서 도망쳐 집을 나왔고,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이 모여 지내는 ‘시설’에서 만나 사귀게 된 오빠의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홀로 육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도, 정당한 지원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도움을 받고 있지만 몇 달 뒤의 미래도 그릴 수 없는 현실입니다. 똑 부러지는 성격에 선한 마음씨를 지닌 그녀는 우리 사회 어딘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어린 미혼 엄마들의 현실을 증언하기 위해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편견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녀의 꾸밈없는 말투와 용기 있는 고백에 담긴 절박한 호소가 들릴 것입니다. 인천의 한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 아빠의 폭력성 때문에 집을 나왔다고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집이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고 휴식 공간이잖아요. 저는 집이 너무 싫었어요. 학교 끝나면 아빠한테 독서실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하고 집 위 계단이나 옥상에서 시간 때우다가 집에 들어갔어요. 씻을 때 환풍기를 켜놔도 습기가 차는데 문을 살짝 열어 놓으라고.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밖에 오빠도 있고 그래서 문을 닫으면 씻다가 도중에 아빠한테 혼나는 경우도 있었고. 제 방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으면 그거 안 치웠다고 머리를 밀어버린다고, 머리채 잡고 질질 끌고 가서 가위 들고 협박하고.”      


- 그러다 구타로 이어진 건가요?     


“옷걸이, 야구 방망이, 쇠파이프, 골프채, 안 맞아본 게 없어요. 근데 술은 또 안 마셔요. 아빠가 술 취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죠. 근데 학교 다니면서 정상적인 사람들 만나면서 그게 아니구나, 아빠가 잘못된 거구나 알게 됐죠.”       


- 알콜중독도 아닌데 왜 그렇게 폭력적이셨던 걸까요?       


“그냥 성격이 그래요. 바닥에 머리카락이 있으면 머리카락 하나 떨어졌다고 머리를 밀어버린다고, 잘라버린다고 하고. 언어폭력도 심해요. 엄마랑은 여섯 살 때 이혼해서 나는 기억도 없는데 초등학교 때 너 엄마랑 연락했잖아, 하면서 영문도 모르고 맞았어요. 그때부터 정이 떨어지기 시작했죠. 아빠라는 그 말 하나 때문에, 제가 십 년 가까이 아빠니까, 아빠가 나한테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거야, 하면서 참았어요.”     


- 엄마하고는 연락이 안 되는 거죠?      


작년에 처음 (엄마를) 만났어요. 청소년 쉼터에 있다가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 한번 만났어요. 왜 집을 나오게 됐느냐 묻더라고요. 제가 아빠한테 맞으면서 신고도 안 하고 항상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죄송하다고 그러다 정말 못 참겠어서 나온 건데, 친엄마는 ‘그래도 네가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하고 학교는 졸업하고 나와라.’ 이러는 거예요. 엄마도 그걸 못 버텨서 이혼해놓고서.      


-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나 보고 싶었다고, 어떻게 지내냐고 얘기해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오빠는 학교 잘 다니는지, 대학은 갔는지 그런 것만 물으니까 너무 싫었어요.”     


- 실망이 컸을 것 같아요.        


“친엄마가 되게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보고 싶고 연락하고 싶었는데 막상 전화 받으니까 아무 말도 생각 안 나고 서러워서 울다가 연락하지 말라고 끊었거든요. 괜히 화가 나는 거예요. 이제야 연락한 게. 그러다가 만났는데 저한테 정 같은 건 없는 것 같고 부모로서 의무감만 남아있는 것 보면서 저도 지금은 연락 안 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터뷰가 있기 전 한국미혼모네트워크의 관계자분이 그녀가 조금 예민하고 까칠하다며 신경을 써달라고 당부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내비친 모습은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며 굳어진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폭력의 기억이 가득한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상상해보았습니다. 내가 십대일 때에, 학교에 다닐 수도 없고, 투정부릴 가족과 밤이 되면 뛰어들 잠자리마저 없었다면, 그럴 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어떤 마음일까. 불안한 날들을 보내던 그녀는 어느 날 엄마가 되었습니다.      


- 아기 가진 걸 알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잘 모르지만, 모성애를 느끼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잖아요.      

 

“사실 모성애는 없었어요. 게다가 당장 저도 뭐 하나 먹지도 못하는 형편이니까 그냥 지우고 싶었어요. 태어나도 잘 못해줄 게 빤하니까. 앞날이 눈에 훤하게 보이잖아요.”       


- 아이 키우려고 다시 아빠 집에 들어갈 생각까지 했다면서요?

     

“아기를 낳고 나니까 아, 내가 지켜야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누가 번듯한 직장도 주고 새 인생을 준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까지 했었죠.”      


- 그런 게 모성애인 것 같아요.   

   

“사회에서는 누굴 좋아하는 데에도 조건이 있고 누구한테 뭔가 해주는 데에도 다 조건이 있잖아요. 사람들 간의 관계도 자기한테 맞는 사람끼리만 만나고. 아기하고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아기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엄마니까 웃어주고, 저밖에 모르잖아요. 근데 좀 미안하죠. 많이 못 해주는 게.”      


- 지금도 얘기하면서 계속 애기랑 눈 맞추고 하네요.  

    

“지금 밥 먹을 때 됐거든요. 근데 잔대요. 다행이죠.”(웃음)    

 

-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을 텐데 아기 챙길 때는 정말 엄마다워요.      

  

“사람이 신기한 게 아무도 안 알려줘도 어떻게든 알고 하게 되더라고요. 제 주변을 봐도 너무 신기해요. 기저귀 가는 것부터 애 씻기는 거 밥 먹이는 거 어떻게든 알아서 하더라고요. 신기해요, 너무 신기해요.”   

   

- 주위에 청소년 미혼모들이 많아요?    

   

“제 주변에만 해도 동갑내기가 다섯 명 정도 있어요. 쉼터에서 알게 된 애들도 있고, 학교 친구들 중에도 그런 친구들이 세 명이고, 임신 중인 애가 한 명, 입양 보낸 친구도 한 명 있어요.”       


- 미디어 때문이겠지만 청소년 임산부라고 하면 영아 유기나 살해 같은 뉴스들이 먼저 떠올라요. 그런데 사실은 낳아서 키우고 있는 청소년들이 훨씬 많은 거잖아요?     


“맞아요. 의외로 자기 애 지키려고 하는 애들, 어떻게 해서든 집에 다시 들어가서 키우는 애들, 혼자서 키우는 애들도 많아요.”       


-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요?     


“저는 안타까운 게 굳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나, 미혼모 시설도 있고 시설에서 낳으면 먹고 자는 거 다 해결해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학교나 방송에서 그런 방법들을 알려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 시설에서 도움을 많이 주나요?      

 

“전부는 아니어도 산모의 식사나 잠자리 같은 거, 아이도 돌봐주고 해요. 시설에서 아이를 낳으면 입양을 보내던가, 거기서 계속 키우거나, 나와서 자기가 따로 키우거나 셋 중 하나예요.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느니 차라리 입양기관에 연락해서 입양을 보내도 될 텐데 왜 그렇게 까지 하는지 모르겠어요.”     


- 그런 상황은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 두려움이나. 아이를 낳기까지 가장 갈등하게 만드는 게 어떤 걸까요?      


“(아기한테) 잘 해주고 싶은데 못해줄 것 같으니까, 애가 좀 크면 자기 왜 낳았느냐, 이런 소리를 할까봐 무서워요. 언젠가 그런 얘기가 나올 텐데 그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때도 상황이 안 좋고 이런 식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식이라면 아이도 저를 싫어하지 않을까요? 걱정이에요. 경제적으로 뭔가 안 되면 정말.”  

   

- 아이를 키워야 하니까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걱정일 것 같아요. 더구나 미성년자니까 더 보호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봐요.      

   

“집 같은 것도, 신혼부부나 한부모 가족 지원하는 데에 신청하면 최우선으로 집을 지원을 해주는데 미성년자라고 더 안 해주시는 거예요. 아예 안 돼요. 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아이와 엄마가 거주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해서 거기서 상담도 받고 일주일에 한번 선생님들이 다녀가시면서 챙겨주시는데 그게 유일한 지원이었어요.”     



- 나이를 떠나서 아이를 가졌으면 사회에서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청소년 미혼모들은 미성년자라서 통장 개설부터 해서 아무 것도 본인 스스로 할 수가 없어요. 만약에 가정폭력 때문에 집에서 나왔는데 그렇게 되면 다시 집으로 연락을 해야 해요. 기초소득이나 그런 것도 집에서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가족 구성원의 수익이나 재산을 확인한 뒤에 지원을 해주고 안 해주고 결정하는지 모르겠어요. 집에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저한테 해주는 게 없는데 그런 것 하나 하나 서류가 있어야 해요.”      


- 지원받는 기금이 하나도 없어요?     


“긴급지원이라고, 구청에서 혼자 사는 엄마들한테 나오는 게 있는데 한 달에 70만원, 말 그대로 긴급지원이어서 다음 달이 마지막이에요. 원래는 3개월인데 당장 수입도 없고 아무 것도 없으니까 3개월을 더 해줬는데 이게 마지막이에요. 나라에서는 다 알고 있잖아요. 구청에서도 제가 아빠 때문에 돈을 못 버는 것도 알고, 수익이 20만원 밖에 없는 것도 아는데. 그걸로 어떻게 못 하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밖에 못하는 게.......”     

 

- 제일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사회적으로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저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나라에서 모르니까, 교회나 개인 자원봉사자들이 어떻게든 발품 뛰고 다니면서 도와주는 반면에 나라에서는 아무 것도 해주는 게 없어요.”      


-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혼자서 애를 키우고 있으니까 자금을 마련하기도 힘들어요. 시설에서 3년 동안 있으면 200만원인가 300만원을 주는데 그 돈으로는 집도 구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기본적인 거라도 해줘야 어떻게든 먹고 살 텐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가 애를 키울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 평소에 사람들의 시선이나 편견에 대한 불편함은 없나요?     


“그런 건 많이 없어요. 제 친구는 오히려 보기 좋대요. 그 친구한테 15만원을 빌렸었는데 못 갚았어요. 애기 가져서 그렇다니까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하더라고요. 친구들도 그렇게 도와주는데 나라에서 왜 안 도와주는 거예요.”       


- 나라보다 친구가 낫네요.(웃음) 혹시 아기가 크면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애기랑 같이 여행 가는 거요. 어릴 때 강아지 데리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가족 여행 갔었는데, 가서도 저는 눈치만 살피고 거기서도 계속 혼나고 정말 싫었어요. 그냥 애랑 편하게 남 눈치 안 보고, 잘은 아니더라도 그냥 어떻게든 살고 싶어요.”      


- 나이는 어리지만 마음씨나 생각이 성숙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 이 글을 보게 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하면 방법은 있는 것 같아요. 진짜 아무도 안 도와준다고 해도 자기가 노력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나오고, 잘 사는 모습 보여주면 그만큼 돌아오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안 되겠으면 차라리 입양을 보내면 애기도 좋은 가정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 어떻게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해보면 할 수 있더라고요. 제 새끼인데 안 예쁘겠어요. 남들이 봐도 예쁜데. (아이 가리키며) 예쁘잖아요, 그죠?”      


- 아이가 오히려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임신 했을 때부터 진짜 좋았어요. 배가 진짜 안 나왔었거든요. 6개월까지 안 나오다가 확 나왔는데 아무도 몰라보더라고요. 태동이 있어도 저만 알고, 제가 힘들 때 애한테 말 걸면 애가 움직여주고 그런 게 정말 좋았어요.”      


- 저한테도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철없고, 말 안 듣고, 뭐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 지금 속으로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진짜예요. 안 키워도 좋으니까 애한테 기회를 만들어주길 바래요. 아동복지회 통해서 입양을 보내면 외국의 경우는 간간히 애기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라나는 그런 게 없대요. 입양 보내고 나면 더 이상 소식을 알 수가 없어요. 어쨌든 애기 친 부모인데. 제 친구는 입양 보내고 나서 진짜 보고 싶은데도 연락이 안 닿아서 엄청 힘들어해요.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소식 정도는 듣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입양 제도를 자체를 바꿔버렸으면 좋겠어요. 싹 다. 입양부터 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 그동안 혼자서 참 많이 싸웠을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좀 여유로워지면 자신을 위해서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다 하고 싶죠. 플로리스트부터 해서 웨딩 플래너 같은 것도 하고 싶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하고 싶고. 학교에서 나름 공부도 진짜 열심히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수학이제일 어렵고.(웃음) 요리도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거 엄청 많아요.”       


그녀는 언제쯤 지금의 치열하고 막막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인터뷰 하는 동안 강인한 태도와 어른스러운 생각 너머에 나이다운 천진함과 밝음이 느껴져서 여러 번 가슴이 저렸습니다. 지금까지의 어려움보다 앞으로 헤쳐가야 할 일들이 훨씬 많을 텐데, 어린 그녀가 잘 견디어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보통의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마음 편히 아이와 웃으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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