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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성 Jan 05. 2022

내가 싱어게인에 출연한 이유_2

2화. 정신과 시간의 방


나에게만 어려운 일     


희망이 보였다. 적어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컨디션이 좋을 때면 목소리에서 본래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중저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다시 듣는 것만으로, 예전처럼 감정을 담아 음을 이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 감격스러웠다. 가수가 아니어도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내게는 그렇게 귀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 건 2020년 가을에 발표된 발라드곡 ‘그대에게’ 녹음을 준비할 때였다.     


2020년 2월, 후배 가수 홍창우로부터 피처링 제의를 받았다. 내 오랜 팬이라며 듀엣곡을 부르고 싶다고 했다. 나와 부를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며 곡을 보내왔는데, 멜로디와 구성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완성도 높은 발라드곡이었다. 편곡도 좋았고, 특히 따듯한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불러온 노래들과 결이 맞아서 불러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하지만 나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내 목소리에 말이다.


걱정이 앞섰다. 내가 녹음할 수 있을까? 자칫하면 후배 신인 가수의 소중한 기회와 비용을 날려버리는 게 아닐까? 행사나 공연이라면 부담이 적었을 것이다. 녹음은 다르다. 녹음에서는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다. 기계로 튠을 잡더라도 내 경우처럼 불규칙한 떨림은 잡아내기 어렵다. 특히 발라드 녹음은 섬세하고 정교한 보컬 역량을 요한다. 더구나 당시에 나는 녹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건 전 소속사에서 앨범을 녹음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2017년도에 나는 소속사에서 미니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녹음 날이었다. 녹음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두어 시간 정도 노래하다가 부스에서 나왔다. 작곡가를 비롯해 소속사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회의가 열렸다. 목 상태가 좋지 않으니 이대로 녹음하는 것은 무리다, 녹음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방송에서 라이브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회사의 보컬 코치와 한두 달 레슨을 해서 보완한 뒤 다시 녹음하자고 결론이 났다. 나도 동의했다.     


2018년, 그 시절 고민이 담긴 포스팅


서너 달이 지나도 소리는 좋아지지 않았다. 녹음을 한참 미루더라도 더 긴 호흡으로 연습해야 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노래하는 감각, 체력, 몸의 밸런스 모두 깨져 있었다. 보컬 코치와 상의해 기본부터 다잡기로 했다. 다시 8~9개월이 지났다. 업계의 내로라하는 보컬 코치가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있었지만, 내 노래는 어느 지점을 넘지 못하고 정체돼 있었다. 소속사는 내 목소리가 돌아올지 의심하고 있었고, 녹음해보자고 채근했다. 연습할 때는 그럭저럭 되던 노래가 녹음실에서는 다시 최악의 상태로 돌아왔다. 아마도 긴장과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해야 했다. 하루 7~8시간 가까이 연습하고 쉬기를 반복하며 일주일에 5~6일을 보냈다. 그렇게 1년 4개월이 지났다. 그 기간에는 노래 연습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회복되어야 녹음이든 활동이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인’이었다. 분명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속도가 더뎠다. 여전히 노래할 때면 몸이 삐걱대는 느낌이었고, 녹음할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 시기에 <복면가왕>에 출연했는데, 역시나 연습한 시간과 노력이 무색하게 부족한 모습만 보여주고 내려왔다. 그 씁쓸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무대에서 형편없는 노래를 들려주고 내려올 때의 좌절감은 낫지 않는 상처처럼 가슴에 새겨진다.    


https://youtu.be/W6QF6p5Gy4c

MBC 복면가왕 출연 영상


나는 후배의 듀엣 제의에 응하면서 연습할 시간을 충분히 달라고 요청했다.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석 달이 넘게 걸렸다. 녹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제안을 받아들인 건 오랜만에 좋은 노래를 들려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다니며 틈틈이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내심 자신도 있었다. 노래 녹음을 수락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꼭 해낼 거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그해 봄을 순삭해버린, ‘정신과 시간의 방’이 활짝 열렸다.     


정신과 시간의 방     


나는 그 시기를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비유하곤 한다. 녹음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된 훈련으로 나를 몰아넣어 연습에만 매진했던 시간이었다.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면 차를 몰고 정자동으로 향한다. 연습 공간은 후배가 운영하는 드럼 연습실이었다. 원래는 20여 분 정도 걸리는데 퇴근 시간에는 50분가량 소요된다. 연습실에 도착했다고 바로 연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20대 나이의 건강한 가수라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목을 다친 40대 가수였다. 피곤하고 지친 몸 상태로 연습하는 건 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습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게 몸과 목소리 컨디션이었다. 정자동에 도착하면 한 시간 정도 차에서 쉬거나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몸이 편안하게 릴랙스된 것을 느끼면 그때 연습실로 갔다.


연습실에서도 마음대로 노래할 수 없다. 내 목소리의 문제는 단순히 성대결절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정확히는 성대 주변 근육의 문제였다. 오랜 혹사로 성대 주변의 근육이 뒤틀려 성대 접촉이 잘 이뤄지지 않고, 그래서 쉽게 피로해지고 음 조절이 잘 안 됐다. 방송에서는 이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성대결절로 압축해서 전달했다. 연습 과정은 재활이나 치료와 같았다. 혹사당했던, 정상적이지 않은 근육들은 겁 많은 강아지를 훈련할 때처럼 조심스럽고 끈기 있게 다뤄야 했다. 운동선수가 정확한 폼으로 반복 훈련을 해서 감각을 익히듯, 좋은 소리를 내는 경험을 계속 쌓아서 그것을 몸이 기억하도록 해야 했다. 방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실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오랜 혹사와 방치로 인해 조금만 부주의해도 목소리가 금세 원래의 안 좋은 상태로 돌아갔다. 약간만 무리하면 방금까지 잘 나던 소리 대신 탁하고 답답한 소리가 나고, 노래가 잘 된다고 맘껏 부르면 며칠은 노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항상 방송이나 녹음을 목전에 두고, 성대와 근육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듯 연습해온 것이었다. 그런 연습 방식을 완전히 버린 것이 이번 준비 기간의 가장 큰 변화였다. 내 몸과 밀당(?)하듯 어르고 달래며 연습하기 시작했다.

 

연습 방법이 바뀐 건 파트너의 조언 덕분이었다. 여기서 파트너는 프랑스의 ‘팍스’ 같은 동반자 계약을 맺은 커플이 서로를 칭하는 표현을 빌어온 것이다.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연인보다는 깊은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 역시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좋은 뮤지션이자 보컬리스트인 건 알고 있었지만, 코칭에도 소질이 있다는 건 그때 알았다. 그녀는 내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는 연습 시간을 1시간이 넘지 않도록 하고, 연습 기간 중 한 달을 성대 강화 훈련만 하도록 조언했다. 듣는 귀가 좋아서 내가 좋지 않은 소리를 낼 때 정확히 짚어 냈고, 그걸 바로 잡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제시했다. 혼자서 연습할 때는 내 소리가 좋은 소리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고, 또 의욕이 넘쳐서 무리할 수 있는데 그럴 때 곁에서 들어주고 충고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나 큰 힘이 되었다.

     

연습 과정에서 그녀는 내가 다친 목에 신경 쓰느라 놓치고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돌아보게 했다. 예를 들면 노트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정확히 부르는 것, 언제나 편안하고 안정적인 내 소리가 기준이 되도록 유지하는 것 등이 그랬다. 그때 깨달았다. 목을 고쳐야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노래’하면 소리도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수개월에 걸쳐 이어진 그 지루한 과정을, 내가 겨우 두세 마디를 한 주 동안 수백 번씩 부르며 씨름하고, 5분 남짓 노래하고, 쉬고, 다시 부르기를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함께 해주었다. 내가 회복되지 않을 거란 의심에 사로잡힐 때면 괜찮다고, 좋아지고 있다고 다독여 주었다. 그 모든 시간과 마음이 겹치며 내 노래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좋은 소리가 쌓이고, 컨디션도 점점 좋아졌다. 예전의 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작은 변화가 보일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다. 노래가 안 되는 날보다 잘 되는 날이 많아졌다. 기대만큼 되지 않아서 우울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대로 해나가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우리는 평일에도, 주말에도, 비가 올 때도 정자동 연습실로 갔다. 그때 연습하기 전 인근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냈던 순간들, 좌절감에 극도로 예민해져 툴툴댔던 밤들, 고달팠던 연습실에서의 하루하루, 보람과 희망으로 가슴 벅찼던 감정들 모두 지금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7월에 녹음이 진행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디렉팅을 부탁했다. 녹음이라는 산을 넘으려면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내 목소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는 부담스러워하며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내심 작곡가에게 맡기기 불안했는지 받아들였다. 부스 안으로 들어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때까지도 나는 녹음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잘 되길 바랐지만, 머리는 아직은 어려울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녹음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녀가 녹음을 잘 리드했고, 후배 가수와 작곡가를 포함해서 모두가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준 것이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세 시간여 만에 녹음이 끝났다. 결과를 떠나서 내게는 녹음을 마쳤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십 년 넘게 이어진 녹음 트라우마를 극복한 순간이었다.      


내게는 너무도 의미 있는 날이었다. 그 후로 나는 다시 노래를 발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목소리가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때 얻은 자신감으로 KBS <백투더뮤직>에 출연할 수 있었고, 이후 <싱어게인>에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내 곁에는 파트너가 함께 하고 있었다.    


https://youtu.be/Fq1MjLx_FaU

그대에게 뮤직비디오

  

마지막 기회를 얻다.

  

싱어게인 지원서를 넣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회사를 옮겼다. 뉴스 기사를 쓰고, 책을 만드는 에디터 일을 하게 됐다. 글을 쓰는 일이면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직업이기를 바랐는데, 그런 비전을 가진 스타트업 회사였다. 내가 살고자 했던 삶에 한 발 더 다가선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스타트업인 만큼 해야 할 업무가 많았고, 저널리즘 분야는 내 예상보다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야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고, 배우고 싶은 일이니까 즐기며 일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기사를 쓰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싱어게인 작가라며 방송 출연이 확정되었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들으면 뛸 듯이 기쁠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정말 나가게 되었구나, 이제 어떡하지? 그런 마음이었다. 회사 일에 정신이 없어서 기뻐할 경황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기회를 얻은 것은 무척 기뻤으나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 무대는 내가 가수로서 노래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까지도 내 안에 쌓여 있던 노래에 대한 나의 마음을 사람들 앞에서 꺼내 보여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출연이 확정되고 한 달 남짓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싱어게인 지원을 준비할 때도 파트너와 함께 연습에 매진했었다. 지난봄의 고행이 반복되었다. 더구나 이직한 뒤로는 주말에만 잠깐씩 연습할 시간이 났는데, 피곤하고 지쳐 있을 때가 았다. 노력한 만큼 좋은 무대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번이 내 이야기를 전할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한창 일에 빠져 있을 때이기도 했고, 이번이 내 마지막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녹화는 10월에 진행됐는데, 1회 차는 오프닝을 포함해서 3일에 걸쳐 촬영했다. 나는 회사에 2.5일 휴가를 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무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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