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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Oct 01. 2022

나는 글을 쓸 때 기분이 태도가 된다

한 권의 책이 글쓰기의 끝은 아니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글이나 책을 읽어보지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써야 할 것 같아 몇 줄 써 본다. 억지다. 글이 꼰대 같다. 온통 불만에 충고하는 이야기이다. 내 안에 있는 불만스러운 감정을 하소연하고 있다. 이전에는 한두 단락 글을 쓰고 나면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나의 불만을 쓰고 있다. 글 속에는 잔뜩 화가 난 내가 있다. 자기반성도 아니고 불쾌했던 일이나 마음에 담고 있던 감정을 쓴다. 감성이 어디로 갔나 싶다. 가을로 향하는 공기가 선선하지만 계절의 변화에 감흥이 없다. 저녁 산책을 하지만 예전과 다르다. 무덤덤하다.


글쓰기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는 여유다. 찌꺼기 없는 홀가분함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분위기. 그리고 차가운 커피. 좋아하는 장소는 카페다. 단골 카페가 있다. 아니 있었다. 주말이면 이른 아침에 카페에서 글을 썼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 오전 내내 집중하여 썼다. 그러나 코로나가 시작되고부터는 가지 않았다. 대안을 찾아보았다. 집은 도무지 분위기가 잡히지 않았다. 평일에는 일찍 출근해 사무실에서 썼다. 조용해서 좋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무슨 일인지 직장 상사가 나보다 먼저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상사는 내 자리로와 무언가를 묻거나 말을 걸었다. 집중이 되기는 그른 상태다.


글을 쓰는 장소는 다양하다. 집안일을 하며 짬짬이 식탁에서 쓰는 사람. 출퇴근하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휴대폰 메모장에 쓰는 사람. 그에 비하면 여유 있으면서도 방해받지 않는 장소를 찾는 것은 까탈스럽다. 나도 안다. 원하는 장소가 아니어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주위를 주의 깊게 보지 않거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 일 것이다. 감성 없이도 글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감성이 빠진 글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한 내용들이다. 나처럼 불만을 얘기하거나 누구나 한 번쯤 얘기했던 상투적인 내용 같은, 듣는 사람은 한번 이상 듣고 싶지 않지만 말하는 사람은 백번 얘기해도 처음인 것 같은 꼰대처럼.


나의 휴대폰과 노트북에는 글쓰기 파일이 있다. 그 안에는 매일 조금씩 쓰다 말다 한 글들이 있다. 좀 너저분하게 보이지만 지우지 못하고 있다. 글 쓰는 순간에는 온 정신을 쥐어짜 쓴 글이어서이다. 버리기 아까와 심폐소생술 하듯 찔금 찔금 손을 대 보지만 시원하게 써 내려가지 못한다. 듬성듬성 쓰다 보니 흐름이 깨져 글이 딱딱하고 사무적이다. 아. 그런데, 지금 알게 된 것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한 번에 썼다는 것이다.


이 글은 가볍게 시작했다. 잘 쓰려는 생각이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 뜨린 채 체념한 듯 썼다. 그러고 보니 지금 마음이 가볍다. 느낌이 온 것 같다. 복권에 당첨된 적이 없어 어떤 기분인지 모르지만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다. 글을 쓸 때는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는 걸 느낀다. 지친 마음으로 알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듯 썼다. 처음에는 제목이 없었다. 결론도 없었다. 끝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잘 쓰려고 의식하지 않았는데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썼다. 이제 결론의 윤곽이 나오기 시작한다. 제목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불만은 없고 짜증도 없다. 그리고 알았다. 나라는 사람은 글을 쓰는 즐거움과 그로 인한 안도감이 내 생활의 기분이 된다는 것을. 일상에서는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될 테지만 글을 쓸 때는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표정은 진지하고 심각해 보이지만 마음은 행복하다는 것을․


글 쓰는 것이 유행이다. 글 쓰는 사람도 많고 잘 쓰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목표는 책을 내는 것이 다. 저마다 고군분투하며 글을 쓰고 책을 낸다. 그러나 책이 나오고 나면 그들의 새로운 글이 보이지 않는다. 브런치도 그런 것 같다. 한 권의 책이 글쓰기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담긴 산물이다. 그 산물을 얻기 위해 글을 쓰는 것보단 글을 쓰다 보면 자연히 그 산물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래야 글 쓰기가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위해 내가 까탈스럽게 분위기를 찾는 것처럼 글 쓰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고 애타게 쓴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후련하다. 그동안 마음 답답하게 욕구불만을 유발하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이제 나는 이 글을 다듬고 정리할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동안은 행복할 것이라는 것이다. 출근이 짜증 나지 않고 하루를 지겨워하거나 멍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있다 해도 잃어버린 것 같다는 글을 쓰다 말았다. 이제 그 글은 지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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