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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Dec 23. 2022

겨울을 싫어할 수 없는 이유

눈은 성가신 거라 생각했다.

눈을 좋아한 적이 있다. 눈이 내리면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다. 정신없이 놀다 보면 소매 끝이 어 저녁이 되소매 끝에 얼음이 맺혔다. 집에 돌아와 꽁꽁 언 손을 꽃이 그려진 담요가 깔려있는 아랫목에 넣으면 벌겋게 된 손이 간질거렸다. 그러다 온몸에 퍼지는 훈기에 노곤해져 잠이 들었다. 그랬던 눈이 어른이 되고부터 더 이상 놀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눈이 내리면 미끄러운 길을 뚫고 출근을 해야 했다. 어딘가를 가야 할 때 가까운 곳이 아니면 눈 속을 뚫고 차를 운전해야 했다. 눈은 성가시고 귀찮은 것이었다.


눈이 오면 평소에는 반만 채워져 있던 지하 주차장이 차로 가득 찬다. 주차선에 세워진 차 말고도 통로에 세워진 차까지 합세해 주차선에 세운 차를 빼려면 통로에 세워진 차 두세 대 정도는 밀어야 한다. 운이 나빠 대형 SUV처럼 큰 차를 밀기라도 하면 온 힘이 빠져 아침부터 맥이 빠진다. 그래도 그 정도는 나은 편이다. 연락처 없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가 오도 가도 못하거나, 코너에 애매하게 주차해 앞으로도 뒤로도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같은 란한 일을 몇 번 겪은 후부터는 눈이 내리면 텅 빈 지상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차는 밤새 눈이 쌓인다. 생명이 없는 기계지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차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깨끗이 눈을 치워 주는 . 다음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차에 쌓인 눈을 치운다. 꼼꼼히 눈 치우기가 끝나고 운전석에 앉으면 꽁꽁 얼었던 차에 훈기가 올라온다. 창에 려있성애는 녹아 물방울이  창 아래로 흐른다. 와이퍼로 물기를 걷어내면 깨끗한 차창 너머 하얀 세상이 나타난다. 이른 아침 출근 준비가 끝고 보는 눈 덮인 세상은 아름답다. 영락없는 설국의 세계다. 눈을 치느라 훈훈해진 몸 조금씩 생기가 돈다. 혈액 순환을 위해 먹는 영양제 보다 효과가 좋다. 그러고 보면 눈이 귀찮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눈이 좋은 적이 있다.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눈은 아름다운 배경이 된다. 눈이 많이 내렸던 날. 좋아하는 그녀와 찻집 다. 그곳은 도시 외곽 산길 끝에 있었다. 우리는 차를 몰아 발목까지 들어갈 만큼 눈 쌓인 길을 따라 그곳에 갔다. 눈에 덮인 조그만 창이 있는 찻집은 동화에 나오는 집 같았다. 눈길을 뚫고 올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곳 나왔을 때  그 하늘에는 말간 달이 떠 있었다. 눈은 달빛을 받아 몽환스러운 빛을 내었다. 우리는 차를 몰았다. 아주 천천히 눈 덮인 세상을 만끽하며. 그리고 큰길에 나와 알게 된 사실. 우리는 자동차 라이트를 켜지 않고 오직 눈 빛에 의지해 그 길을 나왔다는 것.


눈이 궁금한 적 있다. 어느 해 여름 북해도 북동쪽  끝 시레토코에 갔다. 그곳에서 도로마다 높게 서 있는 막대 기둥을 보았다. 그 막대가 무엇인지 궁금해 그곳을 잘 아는 이에게 물어보았다. 막대는 한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눈에 파묻혔을 때 도로를 표시하는 막대라고 했다. 나는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면 그 높은 높이로 막대가 서 있을까 궁금했다. 북해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보지 못해 눈의 양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눈의 양을 짐작할 수 있었던 건 그곳에서 묵게 된 호텔 여주인의 말을 듣고 서다. 그곳의 호텔은 여름에만 운영한다고 했다. 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호텔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것이 고립될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눈이 내린다고 했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눈 속에 묻힌 고요가 궁금했다. 호텔주인에게 어떻게 하면 겨울에 그곳에서 묵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방법을 생각해 본다면 아주 간단하다고 했다. 눈이 내리기 전 그곳에 들어와 이 되어 눈이 녹을 때 그곳을 나가면 된다고 했다.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는 정말 그고 싶었다. 겨울 내내 하염없이 내리는 하얀 눈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눈 내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박 거리는 소리를. 소리는 비처럼 무언가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아니다. 그보단 물기를 머금은 눈이 차곡차곡 쌓이는 소리다. 소리는 눈 내리는 밤 커튼 뒤에 비친 창너머의 밝음과 함께 찾아온다. 밤의 암흑과 하얀 눈이 섞 묵직한 회색이 감도는 밝음. 그 밝음들이 세상 며 들리는 사박거리는 소리. 소리를 듣고 있으면 사랑하면 안 될 사람과 헤어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른다. 더는 어찌할 수 없어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겨 강박처럼 자리 잡은 의지와 편견을 포기하는 것. 잔뜩 움츠 긴장했던 마음을 쌓이는 눈 소리에 묻어버리는 것. 그러면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그래서 눈 내리는 밤을 다시 기대하는 것.


눈은 성가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겨울을 싫어할 수 없는 이유가 눈 때문이라는 것을. 밥벌이를 위해 미끌거리는 길을 뚫고 일터로 가야 하는 강박에 부담스러워하다가도 걱정 말라는 듯 천진난만하게 내리는 이 만든 세상을 보 감탄하는 것. 세상을 삼켜버릴 만큼 많은  내리는 이국의 나라에서 고요한 고립을 열망하게 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잊지 못할 배경이 되어 그 사람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밤새 사박거리는 소리를 듣다 기꺼이 잠을 양보하고 훈훈하게 데워지는 하루의 시작에 오붓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은 눈. 그리고 내가 겨울을 싫어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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