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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Feb 04. 2023

인생은 그 자체가 여운 덩어리 일지도

여운에 약한 편이다.

작년 연말부터 지친 느낌이 들었다. 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여파인지 새해부터 전에 없던 어지럼증이 생겼다. 이비인후과,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몸 상태가 안 좋으니 마음도 쪼그라들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솟아났다. 오랫동안 마음 안에 쌓여있던 온갖 것들이 터져 나왔다.


설 연휴 동안에도 어지럼증은 여전했다. 어지럽기 시작하면 숙취처럼 속이 울렁거려 계속 누워 있어야 했다. 누워만 있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침대에 걸터앉아 TV를 켰다. 송골매 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송골매 공연 방송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 하는지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 방송을 보며 잊고 있었던 지난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이상하고 야릇한 감정에 힘들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노래를 들으니 외면할 수 없었다. 공연을 보는 동안 어지러움도 울렁거림도 느끼지 못했다. 방송이 끝난 후 마음이 이상했다. 그들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던 시절의 여운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여운은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한다. 어릴 적 겨울 방학이 되면 도시에 사는 사촌 누나들이 시골인 우리 집에 오곤 했다. 누나들은 동생과 나를 알뜰히 챙겨 주었다. 겨울밤 늦도록 누나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누나들의 이야기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신기했다. 이야기를 하다 출출하면 누나들이 떡볶이를 만들어 주었다. 떡볶이는 맛이 있었다. 누나들이 집으로 가지 말았으면 했다. 그러나 며칠 후 누나들은 다음 방학에 또 오겠다 하며 돌아갔다. 누나들이 떠나고 나면 마음이 이상했다. 사방이 고요하고 허전해지며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이 몰려왔다. 그것은 여운 때문이었다. 봄바람이 불어올 즈음이 되어서야 사라지곤 했던.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딘가를 다녀오면 여운 때문에 실체 없는 대상을 그리워하곤 했다. 고등학생 시절. 버스에서 노래를 들으며 보았던 창 밖 풍경의 여운 때문에 같은 노래를 들으며 초저녁 거리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여행을 갔다 오면 지독한 마음 몸살이 걸린 것처럼 여운에 휩싸여 며칠을 보냈다. 여운은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안타깝고 조바심 나고 보고 싶고 가고 싶게 했다. 그래서 어딘가를 갈 일이 있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할 일이 있으면 더럭 겁부터 났다. 그 감정이 불편해 의식을 안 하려 애썼지만 여운은 단호히 끝맺음을 못 한 채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나를 멈춰 세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여운에 약한 편이다. 나에게 여운은 참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늘 여운을 남기지 않으려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을 걱정했다. 곤히 잠을 자다가도 한밤중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지는 것도 여운이 마음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여운이 무디어질 수도 있겠지만, 무디어져 간다는 것은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농도가 짙어져 그 이상하고 야릇한 감정이 힘들어 그것을 외면하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운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지루한 행동을 하는 순간에도 쌓인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비를 맞고, 눈을 맞고, 기계 같은 루틴을 하고, 지겹도록 곁에 있던 누군가 멀리 떠나거나, 매일 퇴사를 꿈꾸던 직장을 떠나거나,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온종일 뒤꿈치를 불편하게 했던 구두를 볼 때, 매일 아무 감정 없이 타던 자동차를 더는 탈 수 없을 때처럼.


여운은 늘 우리 곁에서 마음을 저리게 하고 허전하게 한다. 그러나 여운은 순간순간의 지난 시간을 든든히 잊지 않도록 해준다. 송골매 공연을 보며 잠시라도 어지러움을 잊게 한 것처럼 마음을 위로해 준다. 지난날을 잊지 못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여운이 없다면 우리 감정은 죽은 나무처럼 갈라진 사막의 땅처럼 메마를 것이다. 그 메마른 마음에 물기를 머금게 하는 것이 여운이다. 매몰차고 인정 없이 딱딱히 굳어가는 마음을 온순하게 한다. 그렇게 여운을 간직한 사람들이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을 만들고 마을이 되어 세상을 만든다. 장면을 보고, 음악을 듣고, 음식을 먹고, 걷고, 뛰고, 낯선 곳에서 냄새를 맡으며 여운을 만들어 살아간다. 만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도 표현할 길 없는 그리움과 설렘을 간직하고 있다면 마음에 쌓여있는 여운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인생은 아마도 그 자체가 여운 덩어리 일지도 모른다. 여운이 불편하다 하면서도 가슴 아픈 이야기의 여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화양연화의 'Quizas, Quizas, Quizas'를 듣는 나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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