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자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lein Sep 20. 2024

달리기는 꽤 교훈적이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오랜만에 간 헬스장은 전 보다 넓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새로운 운동기구가 많아 이런저런 운동을 했다. 근력운동을 하면 운동 부위가 아프기 마련이다. 다음날 오후가 되니 전날 운동했던 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픈 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전에는 참을만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몸살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팠다. 


근력운동 후유증 때문에 운동을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운동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불어난 몸과 비둔한 옆구리와 배를 보면 운동을 멈출 수 없었다. 대안은 근력운동을 줄이고 유산소 위주로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유산소 운동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러닝머신에서 걷기부터 시작했다. 걷는 것은 지루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며 걸으면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운동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슬슬 뛰어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얼마 못 가 지칠 줄 알았는데 힘이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육상을 했었다. 주 종목은 단거리.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중장거리 선수가 없었다. 육상 선생님은 단거리 선수들 중 한 명을 중장거리 선수로 뽑기 위해 이백미터 운동장 세 바퀴를 뛰라고 하셨다. 나도 뛰었다. 뛰기 전 '그깟 세 바퀴쯤이야' 생각하며 후다닥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두 바퀴를 돌고 나니 입이 바싹 마르고 숨이 차 멈추고 싶었다. 어찌어찌 남은 한 바퀴를 뛰고 난 결과는 함께 뛴 선수들 중 꼴등. 그날 이후 오래 달리기는 금기라 생각할 만큼 자신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오래 뛸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에 자신이 붙은 후 나는 매일 달렸다. 하루 목표는 삼십 분 동안 6에서 7 속도 사이에서 뛰는 것. 그런데 뛰다 보면 종종 7 속도 이상으로 더 오래 뛸 수 있을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7 속도보다 높여 삼십 분을 넘겨 뛰어 보았다. 결과는 의욕은 의욕일 뿐이었다. 그 여파로 다음날은 하루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날 달리기도 하루 목표를 뛰지 못했다. 전날 자제 하지 못하고 무리한 것이 후회되었다. 앞으로는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아도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는 뛰기만 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달리기는 꽤나 교훈적인 멘털 운동이기도 했다. 달리다 보면 내가 정해놓은 목표를 넘어서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절제했다. 순간순간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아도 무리하지 않았다. 기분에 도취되어 목표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오래 뛴다면 다음날 달릴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간의 과욕이 매일 느끼는 행복을 빼앗아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선수가 아니다. 나에게 달리기는 건강을 위한 것이다. 전문 선수처럼 오래 뛰거나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없다. 내 능력에 맞는 속도로 정해진 시간만큼만 달리면 되는 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난 후 몸에 변화가 생겼다. 체중이 삼 킬로가 줄고 몸이 가벼워지니 피곤이 덜 했다. 게다가 고혈압 초기 진단을 받았는데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참아내고 자제하는 멘털 관리가 쉬워졌다. 더 빠르고 더 오래 뛰고 싶은 유혹을 참아 내는 것처럼 나의 주장이나 고집을 부리며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할 때 잠시 한 번 생각하고 참아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나 때는~~"을 끊임없이 외치는 꼰대 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의 이기심이나 고집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 언짢은 일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제해야 하는데 요즘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게 된 것 같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달리기를 할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와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꾸준히 자제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