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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Oct 20. 2024

사소한 희망

작은 희망이라도 기다리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해마다 9월이 되면 가을을 기다린다. 올해는 유독 기다림이 깊었다. 한여름 더위가 9월까지 이어져서 인 것 같다. 사실 가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해 정도는 기다림 없이 그냥 넘어갈 만도 하다. 그런데도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나의 첫가을은 9월 어느 새벽녘 슬며시 창너머로 들어오는 가을냄새로 시작된다. 그러나 올해는 9월까지도 열대야가 이어졌다. 게다가 운 없게도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그 덕분에 선풍기 모터 열기 가득한 눅진한 바람을 맞으며 골방에서 며칠을 지냈다. 방안은 한껏 성난 더위로 가득했다. 그래도 행여 시원한 바람이 들어올까 기도하듯 경건히 창문을 열어놓았다. 결국 가을 냄새가 묻은 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격리를 꿋꿋이 버텨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희망 때문이었다. 곧 가을이 올 것이라는 희망.


희망을 품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희망은 야무지고 거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소원에 가까운 큰 희망을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루기 힘든 희망만 품고 살아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작고 사소하고 소박한 일상의 기쁨도 희망이다. 당장 오일만 버티면 오는 주말. 금요일 밤 헐렁한 옷을 입고 즐기는 맥주와 치킨과 넷플릭스. 빨간 글씨가 연달아 나열된 연휴. 누군가와 혹은 홀로 떠나는 여행. 특별한 약속이 없는데도 캐럴을 들으며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차가운 공기 가득한 계절을 맞이하는 기대감 같은 것. 이런 작은 희망들은 온몸 부서지도록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들에게는 사막을 헤매다 마시는 한 모금 물 같은 것이다.


사소해 보일지라도 작은 희망을 품고 기대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로또를 사고 일등이  확률이 수천만 분의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주일 동안 마음이 부푸는 것처럼, 좋은 일을 마음에 품고 고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금 나에게 즐거운 일은 오늘이 가을이라는 것. 낮과 밤의 공기는 선선하며 살갗에 닿는 공기는 축축하지 않다. 게다가 다행인 것은 아직 나무들이 푸릇하다는 . 그 말은 이제 가을이 시작이니 가을이 많이 남았다는 것. 그러나 알고 있다. 하얀 달이 뜬 서늘한 을 몇 번 보내고 나면 나무들은 가을을 위해 울긋불긋 해질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 사람들은 그 광경을 만끽하기 위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빌 것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나는 차마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채 하늘과 보색을 이루듯 선명하고 화려하게 물든 나무들을 보며 계절이 사라지지 말 것을 고대할 것이다. 그러나 가을은 지 않는 것이 아니듯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닌 것. 그러니 힘든 생을 살아온 곱게 수척해 가노인을 안타깝게 바라보듯 나는 가을을 바라볼 것이다.


오늘 비가 내렸다.

비를 보며 나는 행복했고 애처로웠다.

울긋불긋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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