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날이 가고 있다.
회사에서 작은 음악회를 했다. 오페라 가수들이 노래하는 음악회였다. 늘 그렇듯 정해진 마지막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앙코르를 외쳤다. 진행자는 앙코르송이 시월과 관련된 노래인데 어떤 노래일지 맞춰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고 했다. 반면 나는 '잊혀진 계절'이라고 했다. 무의식적이었던 내 대답과 달리 앙코르송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왠지 내가 눈치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번복할 마음은 없었다. 해마다 시월이 되면 나는 늘 '잊혀진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올해는 더위가 심했다. 끈덕지게 집착하는 스토커처럼 더위는 늦은 구월까지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러다 가을이 오지 않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순 없었다. 어느 날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나뭇잎 색이 조금씩 바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월이 되고 어느새 시월의 마지막날이 왔다. 늘 그렇듯. 나는 가을의 마지막은 시월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가을을 좋아하는 나에게 시월의 마지막이 온다는 것은 참 싫은 일이다.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시월이 왔다는 반가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떠난다 하니 무어라도 손에 쥐어 보내고 싶지만 부스스한 마른 낙엽처럼 마음만 부산스러울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달의 주기를 따라 사라져 가는 시월을 바라볼 뿐.
떠나는 시월이 아쉽다. 이별식이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이도저도 못하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시월을 보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시월이 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시월의 마지막 날을 늘 기다렸던 같다. 노래 속 가사처럼 시월 마지막날 이별을 했던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그놈의 그리움 때문인 것 같다. 그리움은 오래전 커다란 알이 있는 안경을 쓴 이용 아저씨가 잊혀진 계절을 부르고, 잊혀진 계절에 잊혀진 계절을 함께 부르던 친구들과, 그 친구들이 있던 시절과, 그 시절이 담긴 나의 마음이다. 그 그리움은 매년 시월이 되면 돌아온다. 잊혀진 계절을 듣고 부르던 잊혀진 계절들이 희미해질수록.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하루종일 대한민국 모든 라디오에서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하며 노래가 흐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일 년 내내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우연인 듯 노래를 들으며 상념에 빠질 것이다. 헛된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돌아가지도 못할 지난날을 생각하며 저물어 가는 계절과 함께 한해를 마지막으로 기울일 준비를 할 것이다. 이전의 흔적들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아름답게 짙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아름다움의 농도를 짙게 하기 위해 오늘부터 나는 다시 가을이 오는 날까지 꿈을 꿀 것이다. 다시 시월이 되면 오늘의 시월과 그 이전 시월의 날들을 모아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래 속 가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