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온도는 어중간했다. 추운 건지 아닌 건지 애매했다. 소파에서 TV를 보다 서서히 기우는 고목처럼 조금씩 몸을 기울여 소파 끝으로 발을 뻗었다. 그다음은 뻔했다. 반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다 잠이 들었다.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결에 이리저리 손을 뻗었다. 몸에 덮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잡히는 것이 없었다. 이불이 있는 방으로 갈까 했지만 귀찮았다. 대신 몸을 최대한 소파에 붙여 웅크렸다. 추위는 집요했다. 성가시게 달려드는 모기처럼 다가와 잠들만하면 깨고 다시 잠들만하면 깨고를 반복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몸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도 방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자박자박하는 부지런한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포근함이 내 몸을 덮었다. 누군가 내게 이불을 덮어 준 것이다. 잠결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이불을 덮어준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이불을 덮고 난 후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잠은 달근한 가을 무처럼 맛났다. 잠에서 깨니 엄마는 요즘 같은 환절기에 그렇게 자면 감기에 걸린다고 했다. 알았다고 했지만 늘 그렇듯 엄마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길어지는 잔소리에 짜증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엄마의 잔소리가 밉지 않았다. 이불을 덮어준 엄마의 마음이 고마웠다.
잠든 사람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잠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잠든 사람 모르게 이불을 덮어 주는 마음은 순수한 헌신이다. 헌신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상대를 염려하는 마음뿐. 잠든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이불을 덮어준 사람은 존재 만으로도 믿음이 된다. 믿음은 생의 바닥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되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할 힘을 준다. 웅크린 나에게 이불을 덮어준 엄마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헌신적이었는지 생각했다. 부끄럽게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는 자식이라는 미명아래 당연한 듯 받기만 했을 뿐. 당신들을 위한다고 했지만 당신들이 나에게 쏟은 헌신만큼은 아니었다.
결심을 했다. 이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때 그들에게 이불을 덮어줄 것이라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깊고 따뜻한 잠을 잘 수 있게 하겠다고. 세상은 누구에게나 모질다. 그 사실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난이 왔을 때 자신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가 될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만 상처 또한 사람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니 당신도 결심해 보라. 11월의 끝을 향해 찬바람 불며 가고 있는 오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잠들어 있을 때 그의 따뜻한 단잠을 위해 순수한 헌신의 마음이 담긴 믿음의 이불을 덮어 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