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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23. 2020

하이 프롬 네덜란드(하)

고객이자 친구사이

한나와 본격적인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먼저 약속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곳은 일 년에 단 몇 달만 잔디밭이 오픈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포즈를 취해가면 촬영이 가능했기에, 첫 번째 촬영 장소로 삼았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고 난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대부분의 내 고객은 일반인이다. 그래서 포즈를 어떻게 취할지 모르거나 매우 어색하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나는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뭐하고 할까 그렇다고 프로페셔널한 모델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한나는 촬영을 정말 즐기는 것 같았다.


"사실 내 여동생이 암스테르담에서 사진 공부하고 있어. 그녀도 일종의 작가야."


아하, 그럼 그렇지, 그래서인가 한나의 포즈는 매우 자연스러웠고,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한나는 동생 덕에 숙련된 모양이었다. 보통 나는 내 고객에게 어려운 포즈를 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곤 한다.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는 개인차가 따르긴 하지만 한나의 경우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특히 얼굴 표정은 나무랄 때가 없었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생각보다 많은 컷을 촬영한 나는, 내 명함의 연락처를 다시 확인해주면서 납품 날짜를 알려주었다. 한나는 일반인으로서는 정말 좋은 모델이었기에  나는 이대로 헤어지에는 조금 아쉬웠댜. 한나에게 괜찮다면 커피라도 한잔 사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이후 일정이 급하지 않았는지 한나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차를 마시면서 그녀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한나는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고, 호텔 경영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다. 한국에 온 이유는 일본과 한국에 있는 호텔에 인턴쉽에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녀는 호텔리어였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면서 나 같이 서투른 영어를 하는 사람도 듣기 매우 쉬웠다. 유럽이란 지리적 환경은 다국어를 사용에 매우 유리한 것 같다. 게다가 네덜란드어, 프랑스어까지 구사할 줄 안다고 했다. 이 정도면 감탄이 아니라 셈이 난다고 할 정도가 아닌가.


한나는 한국에 며칠 더 머물면서 서울에 여기저기를 볼 예정이고, 일단 일본으로 돌아가서 서류 전형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한나는 유럽인임에도 한국과 일본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머나먼 아시아 나라에까지 와서 인턴쉽을 지원하지는 않으리라.


사실 내가 20대까지만 하더라고 일부 유럽인들이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아냐고? 나는 20대 전부를 일본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 많은 유럽 출신의 유학생들을 만났고, 그들은 일본에서 꽤 오래 공부를 했었다. 반면에 당시 한국은 그리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한국에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고,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본인들 조차 한국의 카페와 한복을 입고 싶어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잠시 잡생각을 한 후, 내가 일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러자 한나가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아마도 일본에서 10년 이상 살았다고 하니 내 나이가 궁금해졌나 싶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나. 내가 몇 살로 보여? 맞춰 볼래?'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글쎄... 한 30살?"

아, 땡큐다.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건 너무나 큰 기쁨이다.


솔직히 서구권 사람들은 동양사람을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당연히 어리게 볼 줄 알았다.

나는 한나에게 실제 내 나이를 말해줬다. 그러자 그녀의 동공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나이 때부터 수년 전까지 고국을 떠나 살면서 느꼈던 후회되었던 점까지 이야기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영어가 능숙해야 마음껏  할 수 있었겠지만,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아직 무리였다. 그래도 한나는 이해를 했는지, 나에게 고맙다면서 괜찮다면 계속 연락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웃으면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했다.


한나같은 고객과 일하면 피로감이 전혀 없다. 오히려 친구를 한 명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이 차이도 꽤 많이 나지만,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입장은 나이를 떠나서 누구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제약을 제약이 따를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이란,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이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내 마음먹기에 따라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나도 이번 여행에서 뭔가를 찾았을까?


한나와 촬영한 사진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컷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네덜란드를 덮치고 나서 인스타그램으로 한나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도 한나와는 쉽게 연락이 되었다. 바이러스가 유럽을 강타하기 전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자주 왕래했는데, 요새는 집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별 탈 없이 지내는 것 같아 보였다. 언젠가 한나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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