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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14. 2020

고양이 면접을 보다.

무릎냥 스킬 시전

내가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남편은 몇 가지 조건을 내 걸었다. 이것은 우리 부부에게 하나의 원칙이 되었다. 목욕은 내가 시킬 것,  입양을 완전히 결정하기 하기 전까지는 반드시 한번 이상 아이를 보러 간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아마도 고양이에게 면접을 보러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서류상으로 보는 이미지와 실제로 보는 이미지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서로  잘 맞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었다.


너무나 남편스러운 논리였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속은 첫째에게 빼앗겨 버렸기에 그냥 수긍하는 척했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15년 만의 첫 고양이를 입양하는 순간이 바로 눈앞까지 왔기 때문이다.


3년 전 5월 경, 동물 병원에서는 첫째를 바로 데리고 갈 수는 없고. 보호 기간이 종료되어야 집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은 얼마든지 아이를 보러 와도 좋다고 했기에 나는 남편의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퇴근하면서 아이를  보러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첫째가 있는 동물 병원은 원장 선생님 혼자 경영하시는 작은 병원이었지만, 내가 첫째를 보러 가는 날이면 언제나 퇴근하지 않고 기다려 주셨다.


어느 날 원장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을 하셨다.

"이 녀석이 말이죠, 오밤중에 철창문을 열고 나와서 사료 봉지를 뜯어먹어요."

그래서 그런지  퇴근할 때가 되면  병원 안에  있는 애견 미용실에 옮겨 놓는다고 하셨다.


'응? 철창을 열 수 있다고? 상당히 똑똑한 아이잖아...'

나는 속으로 많이 놀랐다. 머릿속으로 사람처럼 철창문을 여는 고양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퇴근 준비 중인 원장 선생님을  뒤로하고 미용실로 들어갔다. 미용실 안에는 매트와 미용기구들, 목욕대, 건조 대등이 놓여있었고, 한쪽 구석에서 하얀 고양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처음 봤을 때의 우렁찬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얌전한 모습으로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잠시 후  세련된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뿐사뿐 다가오는 고양이의 모습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나는 옆에 있는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안녕?이라고 조용히 인사를 했다.

그러자 하얀 고양이는 내 앞에 멈춰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사뿐히 점프를 한 뒤 내 무릎에 걸터앉았다.  


"응?"


뭔가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이걸 심쿵이라고 하나?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몸을 감쌌다.

아이는 내 무릎 위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사람의 손을 탄 아이 같았는데,  어쩌다가 유기가 된 것인지 속이 씁쓸했다. 첫째는 인근 공원에서 어떤 분에 의해 구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분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관심 있게 지켜본 모양이다.


하얀 품종묘가 주인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사료를 줘보니 정신없이 먹었다고 한다. 길을 잃었거나. 유기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아이를 집에 데려와 하룻밤 돌본 뒤에  병원에 데려와 맡겼다고 했다. 방문했던 병원의 원장님 고양이를 좋아해서, 구조된 아이들을 치료하고 분양하는 일도 하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잘 만나셨나요?"

한참 동안 무릎냥을 즐기고 있는 찰나에 원장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아마도 시간이 꽤 지났나 보다.

그리고 남편도 같이 올 수 있도록 주말쯤으로 정식 입양 날짜를 정했다.


아마도 그때 치른 고양이 면접은 나보다 첫째가 우위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반려동물의 선택권은 사람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첫째가 나를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무릎 위에 있던 따스한 촉감에 취해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면 첫째와 지내면서 무릎냥을 해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정말 이날은 엄청나가 면접을 잘 봤던 것이었다.


구조 직후의 첫째 아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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