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의 장미
20140909_꿈에 그리던 유럽 여행기 6막
세계사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 어릴 적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내게 프랑스와 파리에 대한 로망을 만들어준 만화였다. 극도로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보여주던 베르사유 궁전과 귀족들의 헤어와 의상 스타일은 그 이국적인 아름다운 디테일 속으로 18세기의 프랑스 궁으로 나를 빠져들게 했었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근처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보았었다. 황금색 머리칼을 휘날리던 카리스마를 가진 오스칼과 아름답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예뻤던 마리 앙투아네트, 거기에 극적인 프랑스 역사 스토리는 세계사에 대한 흥미와 프랑스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었었다. 만화 그리기를 빠져있었던 나는 틈만 나면 마리 앙트와네트의 아름다운 모습을 노트를 모나미의 24색 사인펜으로 몇 번을 그리고 색칠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 컬러링북이 유행되면서 이 베르사유의 궁전 시리즈가 나왔을 때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었다.
절대왕정의 거울, 베르사유 궁전 Chateau de Versailles
서유럽의 대다수 왕정국가들이 모범으로 삼고 모방하려 했던 베르사유 궁정은 원래 루이 13세의 사냥터였다가 태양왕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후 축제와 연애의 장소, 절대왕권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아마도 ‘짐은 곧 국가’라고 말했던 태양왕 루이 14세가 지은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물인 궁전은 가장 눈부신 업적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독일의 상수시 궁전, 헤렌킴제 궁전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 궁전은 유럽의 많은 절대 권력자들에 의해 궁전 건물, 화려한 실내 장식, 기하학적인 정원과 숲, 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모방하여 지어진 대표적인 궁전이다.
바로크 양식의 대궁전은 왕권의 장엄함과 위대함을 과시하고자 1층은 저부조로 장식된 돌벽으로, 2층과 3층은 각각 이오니아 식과 코린트 식으로 장식되었는데, 이러한 특징은 훗날 고전주의 건축양식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한다. 성의 외벽과 내벽을 장식한 조각과 그림들은 신화라는 것을 인용해 프랑스 왕권이 신의로부터 부여받은 절대성과 신비로운 것을 가졌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매일 6,000명 이상의 귀족들이 들끓던 베르사유궁은 귀족적 사회성의 무게중심으로써 국왕에 복종하게 하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이기도 했다. 국왕은 자신의 모든 행동에 왕궁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세부적인 위치를 부여했고, 국왕이 정한 위치와 서열에 따라 자신이 절대군주로부터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확인했다고.
이 거대한 궁정 건물은 거의 영구적인 공사장이었는데,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할 때까지도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매년 궁과 정원의 보수 및 유지에 투입되었던 인부는 36,000여 명에 달하고 공사비용은 대략 한 해 예산의 3~-4%에 달했다고 한다.
이후 궁전은 프랑스혁명 당시 절대왕정의 상징물로 약탈과 파괴의 대상이 되어 가구·장식품 등이 많이 없어졌어, 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 부분은 오늘날 역사 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혁명 이후 베르사유의 회화와 조각 컬렉션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장서와 메달은 국립 도서관으로, 시계와 과학적 장치들은 국립 공예학교로 이전되었다.
"그 아름다움이 그 흠결을 메우고도 남는 거대한 궁전" - 볼테르, 철학자 겸 작가
금색으로 장식된 프랑스 왕가 문장이 달린 정문을 지나면 루이 14세 기마상이 보인다. 이곳은 왕족이나 귀족이 승마를 즐겼던 작은 정원이다. 정원을 지나 궁전 내부로 들어가면 보이는 높은 천장에 삼위일체화가 그려진 ‘왕실 예배당’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다. ‘헤라클레스 방’, ‘비너스 방’, ‘다이애나 방’, ‘마르스 방’, ‘아폴론 방’ 등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 붙은 방들은 각각의 신을 테마로 장식돼 있다.
베르사유 궁전은 웅장한 외관 못지않게 화려한 내부로 유명한데, 한가운데에는 있는 접견용 홀들은 그 웅장한 규모가 2,143개의 창문, 1,252개의 벽난로, 67개의 층계에 이른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왕실 예배당으로, 중앙 홀을 중심으로 흰 대리석 기둥이 1층과 2층으로 연결되어 있고, 코발트 벽화를 중심으로 모자이크 바닥과 황금으로 도금된 다양한 조각상으로 꾸며져 있다. 당시에는 신분에 따라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족들은 2층에서, 귀족이나 관리들은 1층에서 각각 예배를 보았는데,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1층보다 2층이 훨씬 화려하다. 단순히 예배만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다.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궁전의 2층에는 오페라 극장, 비너스의 방, 전쟁의 방, 거울의 방, 왕비의 침실 등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7개의 대형 거울이 설치된 ‘거울의 방’으로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방이 아닐까.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큰 방으로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 형태를 하고 있다. 17개의 커다란 창문 맞은편에는 17개의 거울이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고, 화려한 촛불을 밝히고 있는 대형 샹들리에가 곳곳에 걸려 있다. 왕족의 결혼식과 같은 주요 궁전 의식과 외국의 귀한 특사를 맞이할 때 많이 사용됐으며, 1783년 미국 독립혁명 후의 조약, 1811년 독일 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 체결 등 국제적인 행사의 주요 무대로 사용되기도 한 이방은 완성하는데 8년이 걸렸다고 한다. 휘양 찬란한 이곳이 무도회장으로 쓰였을 당시는 그 화려함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상상을 해 보니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 속 한 장면이 그려진다.
거울의 방은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전쟁의 방에는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색조 회반죽으로 된 타원 모양의 커다란 부조가, 남쪽에 있는 평화의 방에는 유럽 평화를 확립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오페라 극장에서 몇 개의 방을 지나면 볼 수 있는 비너스의 방은 비너스 조각상이나 그림이 아닌 루이 14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루이 14세가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이 외에도 왕비들의 출산을 했다는 ‘왕비의 침실’ 등이 대표적인데, 하나같이 화려하다는 수식어를 뗄 수 없을 만큼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세밀한 조각들과 천정과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 온갖 장식들을 달고 있는 가구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방들이었다. 그럼에도 여백이 느껴지는 동양의 궁과는 사뭇 다르게 숨쉬기 정도로 불편하고 복잡한 느낌을 받은 걸 보면 나는 한국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궁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은 이런 점이 아니었을까.
조경 설계사 앙드레 르 노트르의 설계로 커다란 파르테르(parterre, 화단과 길을 장식적으로 배치한 정원), 테라스, 정원, 외국산 식물을 보관한 온실과 심지어 운하까지 포함되어 있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통의 프랑스식 정원을 완성했다. 이 정원에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존재하지는 않았는데, 성을 나와 정원에 들어서면 젊고 패기에 찬 루이 14세를 연상시키는, 황금마차를 타고 아름다운 젊음을 과시하는 태양신인 아폴로상을 만나게 된다. 정원의 시작에 위치한 이 아폴로의 분수에서 모든 자연이 시작되는 것이며, 정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왕의 권위에 대한 메타포였다. 이 아폴로상이 있는 넵튠 분수는 안타깝게도 수리중이라 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 엄청난 양의 베르사유 궁의 운하와 분수에 물을 대기 위해 예전에는 센 강 물줄기를 바꾸는 공사까지 했다고 한다.
궁전 정면에서 바라보는 정원의 경관이 특히 아름다웠다. 산책로와 대운하, 멀리 지평선까지 정원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르 노트르는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중심으로 넵튠의 분수와 라톤의 분수가 있고 녹색 융단이라고 하는 잔디 밭길을 지나면 나오는 아폴론의 분수를 비롯해서 1,400개의 분수와 십자 모양의 대운하 등을 배치했다. 정원의 배치도를 따라 신화에 나오는 조각상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하학적인 모양의 크고 작은 정원은 독특한 형태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는데, 인공 연못과 우거진 녹음, 형형색색의 화단 사이로 신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궁전 바로 옆에는 미로 형태의 거대한 화단과 봄에서 가을에 걸쳐 갖가지 꽃이 만개해 '꽃들의 화단'이라고도 불리는 '남쪽의 화단'이, 지라르동의 <피라미드 샘>, <다이애나 님프들의 목욕> 등 유명한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는 '북쪽의 화단'이 펼쳐진다. 여름밤에는 루이 14세와 귀족들이 모여 별빛 마저도 희미하게 할 만큼 화려한 밤의 축제들이 펼쳤다고 하는데, 지금은 성수기 매주 토요일 밤이면 그 시절의 황홀함을 보여주듯 각 분수마다 다른 분위기로 바로크 시대 음악에 맞춰 음악분수쇼가 곳곳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우리는 시기를 맞추지 못해서 몇 개의 분수만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것과 그 웅장하고 아름다울 모습은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공사 끝에 완성된 너비 62미터, 길이 165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대운하에서는 루이 14세와 15세가 베네치아에서 가져온 곤돌라를 타고 뱃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지금도 운하에서는 배를 타고 관람을 할 수 있다. 루이 14세의 정원사랑은 정원 방문자를 위해 책자 The wqy to Present the Gardens of Versailles까지 직접 쓸 정도였다고 한다.
베르사유 정원 북서부에 있는 루이 14세, 15세, 16세가 애인 및 어린 왕비와 시간을 보냈던 그랑 트리아농 grand trianon과 프티 트리아농 petit trianon은 주변이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별궁이다.
이탈리아 양식의 단층 건물에 장밋빛 대리석을 사용해 지은 왕족의 휴양지로, 그랑 트리아농은 루이 14세가 휴식을, 왕비와 애첩들이 사용했던 프티 트리아농의 사랑스러운 작은 방은 침실로 사용되었는데 루이 15세 시절의 장식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프랑스 정원을 상징하는 베르사유 정원과 달리 영국과 중국 정원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프티 트리아농 외곽에 있는 프랑스 시골을 고스란히 담아낸 농가인 마리 앙투아네트 마을 Le Hameau이 있다. 당시에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마을을 소유하고 평민들의 생활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는데 마리 앙투아네트도 이곳에 마을을 만들어 농촌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지금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집’, ‘물레방앗간’ 등 10여 채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 엄청난 정원은 그 크기가 둘러보려면 꼬박 하루는 걸어야 할 정도라고 하는데, 전부 도보로 둘러보는 데는 무리가 있어 정원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데 필요한 전기차와 자전거를 대여해 준다. 또는 미니 열차(Petit Train)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데, 우리는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며 이 놀라운 정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만화 속에서 보여주던, 영화 속에서 그려지던 그리고 내 상상 속에서 존재하던 모습과는 다르기도 하고 실망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지금이 아닌 그 시대를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놀랍고 가치 있는 곳이다고 할 수 있겠다. 당분간 베르사유궁이 주는 웅장함과 화려함은 그 금빛이 쏟아내는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