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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oresprit Jan 26. 2016

여행 첫날, 자그레브를 마주하며

크로아티아 2막

2015년 8월 22일, 넥타이의 나라 크로아티아의 시작 자그레브 Zagreb




어제의 일로 이른 아침 잠이 깬 덕분에 아침을 준비할 겸 시장 구경에 나섰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현지 분위기를 만끽하려면 역시나 시장이 최고!!

자그레브의 100년이 넘은 재래시장인 돌라치 시장 Dolački Vremeplov 시장은 이른 시간에도 갖가지 신선해 보이는 과일과 야채들로, 직접 만든 농산가공품과 소박한 생활용품들로 활기차 보였다. 돌라치 시장은 안쪽으로는 수산시장이 별도로 있어 아드리아해에서 잡힌 다양한 생선과 해산물을 구할 수 있고, 아직도 추를 얹어서 무게를 다는 구식 저울을 사용하는 착한 가격에 선한 상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크로아티아는 도시 어디를 가나 그곳이 성벽 안 올드타운이라고 해도 이곳처럼 새벽이면 각종 신선한 과일과 야채, 꽃 등을 파는 시장이 항상 열린다. 우리나라 이마트처럼 콘줌  KONZUM이나 빌라 BILLA 같은 대형마트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시장이 이곳 사람들의 생활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친근하고 좋아 보인다.

거기에 과일 못지않게 인기가 많은 꽃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 우리처럼 특정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나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닌, 집안을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은은한 향기로 채우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

크로아티아에서 유명한 라벤다 향이 코끝을 스쳐 지나간다. 아침부터 향기롭다.

첫 아침식사를 위해 기분 좋아 보이는 아저씨에게는 크로아티아식 자두와 무화과를, 진열을 맛있게 보이게 한 넉넉한 아줌마에게 포도를 구입하고 오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서 갓 구운 빵과 카푸치노를 사가지고 돌아 왔다.


아침으로 배가 든든해진데다 루프트한자의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캐리어를 찾아 숙소로 배송 중이라는

메시지를 확인하자 무거웠던 기분이 조금은 좋아짐에 따라 예정된 여행 일정을 시작했다.






작은 도시에서는 원하는 뷰포인트는 쉽게 띄었고, 관광객이 많지 않아 느긋한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었다.

자그레브의 심장이라 불리는 반 옐라치치 광장 Ban Jelacic Square 은 양 옆으로 길게 뻗은 일리차 거리를 기준으로 중세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북쪽의 구시가 고르니 그라드(upper town)과 신시가지인 남쪽의 도니 그라드(lower town)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크로아티아는 발칸반도에 있지만, 동유럽보다는 서유럽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듯하다. 거리의 건물들을 보면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탓인지 이탈리아 풍이 강하고 오랫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아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색채도 진하게 느껴진다. 종교를 보아도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이니, 정교를 믿는 동유럽과 공존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다. 

광장에 도착하면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헝가리로부터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주도한 크로아티아의 영웅인 요시프 옐라치크 장군상, 광장 이름의 주인공인 그의 이름을 자그레브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게 된다. 

장군상 옆에는 만두세바츠 Mandusevac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분수가 하나 있는데, 한때는 진짜 샘이 흘러나오는 곳이었고 자그레브 이름을 유래가 되었다는 곳으로 원래는 이곳이 자그레브의 심장이라고 한다.

운이 좋으면 성당을 시작으로 시내 곳곳을 행진하는 근위병 교대식과 행렬을 볼 수 있다.





광장에서 언덕을 오르면 자그레브 대성당 Zagrebačka Katedrala 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그레브라는 도시가 탄생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오래된 성당으로 11세기에 헝가리의 왕 라디슬라브가 건설하기 시작했고 그 후 13세기에 성모 마리아와 스테판 성인에게  봉헌되었기 때문에 이름이 두개로, 정식 이름은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 (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혹은 슈테판 성당이라고 불린다. 무려 잉카제국보다 반세기 정도나 앞선 오래된 성당이다.

외관은 로마네스크의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쌍둥이 첨탑은 타타르족의 침입과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복원하면서 높이가 다르게 되었고 현재도 보수 중이라 원래의 모습은 확인할 수가 없다.

100미터가 넘는 첨탑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자그레브 도시 어느 곳에서든지 보여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고. 10여 개의 보물급 유물이 있어 ‘크로아티아의 보물’이라 불린다지만, 내부의 어떤 보물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예수 상위로 보이는 상형문자들이다. 실제로 크로아티아에서 사용했던 글자로 성당을 지을 당시의 내용을 기록해 둔 것이라고도 한다.


성당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넥타이 가게가 눈에 띈다.

넥타이는 크로아티아 용병이 목에 매던 스카프를 본 루이 14세와 프랑스 귀족들이 흉내를 내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유행시켰고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넥타이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넥타이는 프랑스어로 ‘크라바트 Cravat’라고 하는데, 이는 ‘크로아트 Croat, 크로아티아 사람에서 유래되었다. 안타깝게도 넥타이의 디자인은 구매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이진 못했다.





이어서 돌의 문 스톤게이트가 나오는데, 옛날에는 몽골의 침략을 막기 위해쌓았던 이런 돌의 문이 4-5개 정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직 이 문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대부분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기이하게도 이 안에 있던 성모 마리아 그림만은 불에 타지 않았고 이후 사람들은 이를 신성하게 여겨 예배당을 설치하여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두 손을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스톤 게이트를 지나면 빨강,파랑, 흰색의 아름다운 체크무늬 바탕의 지붕으로 유명한 성마가 교회 St. Mark Church 가 보인다. 타일로 만들어진 특이한 지붕의 모습은 정교한 카펫에 예쁘게 수를 놓은 듯하고 한번 보면 결코 잊어버릴 것 같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이 화려한 체크무늬 장식은 19세기에 더해진 것으로 왼쪽의 하늘색 문양은 크로아티아 최초 통일왕국인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달마시아 왕국의 각 문장을 혼합한 문양이며,  오른쪽 붉은색 문양은 자그레브 문장이 자리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전체적으로는 고딕 양식이지만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성당 남쪽 정문 위에는 요셉과 아기 예수를 안 고있는 마리아와 그 아래에는 성 마가(Mark)를 비롯한 예수님의 12제자의 오리지널 고딕 양식의 조각품들이 있다.

비록 많이 손상되었지만 남동유럽에서 가장 귀중한 예술성이 높은 고딕 양식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여타 유럽의 다른 도시의 것들처럼 화려하거나 웅장하진 않지만 여러 문화양식이 조화롭게 섞여있는 것이 이곳 크로아티아의 특징인  듯하다.

성당의 각각 오른쪽과 왼쪽의 권위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소박한 건물에는 정부청사와 대통령궁이 있다. 

다른 유럽의 도시처럼 화려하거나 눈에 확 띄진 않지만, 정감 있고 긴 호흡으로 천천히 보게 하는 매력이 존재하는 크로아티아다움이 느껴진다.

 


빨강,파랑, 흰색의 아름다운 체크무늬 바탕의 지붕으로 유명한  성 마가교회




성 마가교회를 지나 로트르슈차크 탑이 보이는 공터에 이르면 자그레브 전경이 한눈에 보이고, 이 탑은 오스만투르크가 자그레브를 공격해 왔을때 대포를 쏘아 물리친 역사를 기념하는 뜻으로 지금도 매일 정오에 대포를 발사하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바로 옆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푸니쿨라 중 하나인 우스피나차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케이블카로 탑승장 간의 고도차가 30m 밖에 되지 않으며, 탑승 시간도 약 1분 정도라고 한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의 푸니쿨라나 독일 하이델베르크성으로 올라가기 위해 탔던 타자마자 내리던 그 느낌의 케이블카로 보면 될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 카페거리인 트칼치체바 거리 Tkalčićeva  Ulica에서 아침을 넉넉히 먹은 탓에 점심을 건너 띄고 길가 노천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이거리는 해가 지면 테이블위에 촛불를 올려놓고 술집으로 얼굴을 바꾸고 커피를 마시던 이들은 어느새 별빛 아래서 술을 주문한다.

 





자그레브의 구시가지 구경을 마친뒤에는 근처 즈리네바츠 공원을 산책하고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이나

박물관을 볼 예정이었지만, 혹시나 짐이 왔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야했다.

숙소로 도착해서 얼마 뒤 집주인 토미가 기다리던 여행가방과 함께 렌트비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그 순간 그가 그토록 잘생겨 보이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제야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한숨이 쉬어졌다. 갑자기 제대로 씻고 싶어 졌고 잠도 오는 것같이 느껴졌다.

토미에게 후하게 팁을 지불하자 그의 얼굴이 웃음으로 환해졌고 우린 친밀하게 안녕을 고했다.




더불어 여행 전 좀 더 크로아티아에 대한 역사를 공부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그랬다면 자그레브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트래코스칸 성을 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여행이란 자고로 미련을 남겨둬야 다음을 생각하는 법. 블로그나 각종 여행책자에 교통이나 먹을 것에 대한 정보가 넘칠 만큼 많지만, 진짜 보아야 할 숨은 곳곳들을 알려주거나 알고 보면 더 잘 보이는 것들에 대한 것이 별로 없는 듯하다.

다음 여행은 진짜를 더 잘 보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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