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storyteller Oct 27. 2024

아빠 이야기


“지금 뭐하는 짓이야? 쟤를 집으로 데려오면 어떻게 해? 결혼생활이 장난이야?”


나는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게 아니다.

15년 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작은 이자카야에 들어갈 때만 해도 나는 내 평생 결혼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그녀와 알게 된지 한 3년 쯤 되었을 때였고 우린 이상하게도 편한 술친구였다.

그녀는 평소와 달랐다. 


“있잖아.”

“어.”

“기준씨는 마치…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내뱉는 것처럼 살고 있잖아.”

“에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것만은 아니..”

“...라고 부정할 수 있어?”


모두에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삶은 자만하는 순간 발각된다. 나는 여유부릴 형편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말도 못하고 침울해지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두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만약 기준씨가 산소만이 가득한 방에서 살아야만 하는데, 그 방에 보통의 사람이 들어와 함께 숨을 쉬면서 이산화탄소를 뱉어주면 기준씨는 그것을 마시고 다시 산소를 뱉고…… 그것을 다시 상대편이 마셔서 이산화탄소를 뱉어주면서 영원히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론상으론.”

“뭐 이론상으론.

“그래서 말인데,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봤을때, 이론상으로는 말이지. 우린 아주 완벽한 부부가 될 수 있어.”

“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되잖아. 지금.........그러니까 한번 실험해보자.”

“야, 결혼이 장난이냐? 농담이지?”


그녀는 아주 간절하고 확고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때 나는 그 눈에 설득당해버린 것일까?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 이론은 실험으로 꽤 오랜 기간 동안 증명되었다. 우린 실험으로 결혼한 아주 되바라진 커플인데도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내가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절대로 부딪히지 않을 줄 알았던 우리에게 충돌의 순간이 왔다. 이는 서로 다른 은하계에 존재하여 몇백 광년이 지나도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이라던 두 별이 실은 충돌하게 될 것이며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만큼이나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드넓은 우주에 나만 버려져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이상한 안도감도 느끼게 해주었다. 


이 드넓은 우주에

나만 버려진 게 아니구나.


조금은.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