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롯폰기 힐즈에 위치한 모리 미술관에서 열린 시오타 치하루의 <혼이 흔들린다> 전시이다.
塩田千春展:魂がふるえる 2019.6.20(木)~ 10.27(日)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전시를 부산 시립 미술관에서 <영혼의 떨림>이라는 부제로 선보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예쁜 워딩을 사용하여 작가의 의도를 포괄하기에 적절치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이라 함은 영어의 소울 SOUL을 떠올리기 쉽지만 일본어로 魂은 혼 또는 넋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서양에는 원혼이라는 것이 없다. 누군가가 죽어서 한을 갖고 이승을 떠돌아 사람들을 해코지한다는 정서는 아시아에 널리 존재한다. 그래서 특히 공포영화를 보면 서양에서 무서운 것은 영혼이 아니라 대개 살아있는 사람이나 외계인이나 좀비 같은 다른 생명체이고, 아시아에서 무서운 것은 '혼'이다. 따라서 이 전시를 보고 있으면 할리우드 영화 <사랑과 영혼>이나 선불교 혹은 요가 구루들의 참선과 같이 다듬어지고 정제된 천국에 가까운 이상향을 경험하게 되기보다 일본 영화 <주온>스러운 괴기함을 담고 있어 누군가의 불안감과 두려움, 공포 같은 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지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서양 지성의 뿌리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영혼의 깨끗함, 천국의 완벽함을 상징하는 크리스털처럼 예쁘고 빛나는 것은 없다. 빨갛고 검은 강렬한 지옥의 색상으로 얽히고설킨 거미줄이 온 사방에 뻗혀 당신조차 집어삼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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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있고 그 거미줄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거미줄은 온 사방을 뒤덮고 있지만 당신은 그 사이를 돌아다니고 지나칠 수 있다. 우리를 옥죄는 수많은 불길한 어떤 것들은 분명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닌 '혼'이기 때문에, 당신이 벗어나고자 하면 사실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사로잡히고자 하면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둘러싼 거대한 혼의 환영에서 벗어나라.
이 곳에 있는 우리 모두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도 모를 이 거미줄에 혼이 사로잡힐 수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