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Oct 25. 2020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세요

  살면서 종종 길을 잃는다. 아니면 살면서 종종 길을 잃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까. 실제로 길치이고, 삶의 방향이나 진로를 비유한 길에서도 자주 헤맨다. 나이를 먹을수록 덜 헤매는 것 같긴 하다. 해마다 현명해져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걷기를 포기한 길이 늘어나서다. 삶을 덜 헤매는 게 편하면서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도 누군가 예전이 더 좋았냐고 묻는 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이십 대엔 매사에 헤맸다.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고백을 하며 어떤 땀을 흘리고 어느 시간에 어떤 꿈을 꿔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마다 정답이란 게 있는 줄 알았고 그걸 얻기 위해 한참을 방황하며 쏘다녔다. 그 과정에서 교환학생 신분으로 말레이시아에서 반년 정도 살았던 기억이 난다. 낮은 뜨겁고 밤은 천천히 식어가는 나라였다. 모든 게 새로운 그곳에선 낯선 언어를 말하는 스스로도 새롭게 느껴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당시의 나는 좀 더 진실한 모습을 내보이고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말레이시아 대학교에선 나와 같은 한국인 교환학생들 각자에게 현지인 친구들을 소개해 줘 현지 생활 적응을 도움받도록 했다. 그렇게 모인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원숭이 무리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관광지나 현지인만 아는 로컬 음식점,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는 다름을 느낄 때가 있었다. 어떤 농담에 나는 웃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웃었다. 내겐 부담스러운 가격의 음식을 어떤 이는 태연히 주문했다. 나는 음악을 들었고 다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깨를 흔들고 춤을 췄다. 지나치게 공손한 나의 태도와는 달리 짓궂지만 허물없이 남을 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 앞에서 나는 평소대로 행동했으나 나의 다름을 부각하는 사람 앞에선 그러지 못했다. 그들과 나의 다름과 접점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룰 것인지 고민하는 날이면 이곳에 오기 훨씬 이전부터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는 걸 문득 깨닫곤 했다. 국가와 인종, 언어가 다른 곳에서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던지며 정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교환학생 무리에서 겉돌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더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혼자이고 싶다가도 그들과 가보지 않은 이국의 해변에 가보길 원했다. 그들에게 맞춰 나를 변화시켜야지 하다가도 금방 나답지 않은 짓을 하기가 두렵고 거북해졌다.

  어느 날엔 교환학생 친구들과 연등축제가 열리는 공원에 갔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었던 '나나'라는 친구의 초대를 거절하지 못했었다. 키가 작고 긴 곱슬머리를 한 그녀는 어린 동생처럼 보이면서도 곳곳에서 나를 배려해 주던 친구였다. 그녀에겐 무리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우리는 저녁이 다 돼서 큰 연못을 둘러싼 공원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등을 연못에 띄우기 위해 모여있었다. 우리들은 현지인의 방식대로 직접 고른 색깔의 종이로 연등을 만들었고 완전히 어두워지기까지 돌아다니면서 간식을 먹거나 기념품을 사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유별나게 굴지 않고 그들과 마주 보고 웃으며 대화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어색하고 불편해한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았다. 공원에 물안개가 퍼지고 있었다. 달이 사람들의 머리를 비출 만큼 높이 떴다. 더 이상 교환학생 무리와 함께 있을 이유가 그곳엔 없어 보였다. 나는 나나를 따로 불러 세워놓고 말했다.

  "미안해 나나, 난 그만 가봐야겠어."

  나는 무엇이 미안한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나나는 당황스러워했다.

  "왜? 뭐가 문제야?"

  "별 문제없어. 그냥. 난 너희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여기 있으면 안 되겠어. 먼저 갈게. 안녕."

  그녀에게 인사하고 무리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나나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고 친구들이 그녀의 곁에 모여 있었다. 마치 내게서 끔찍한 말을 들은 그녀를 위로해주는 모습 같았다. 못된 짓을 한 기분이 들었다.


  그 후 휘적휘적 걸었던 어둠 속의 공원은 내게 방황과 미로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나는 발 닿는 대로 걸었다. 안갯속에서 마스크를 쓴 중년의 경찰관이 오토바이에 기대 서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던 연인들은 나를 보곤 서로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흐릿한 얼굴의 가족들을 지나쳤다. 내가 남자이고 이방인이고 또 혼자이기 때문에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오랫동안 그랬다. 유쾌하지 못하고 마음은 여린데 사람은 좋아해서 쉽게 상처 받는 자신을 숨기느라 진을 뺐다. 다름과 그름을 구분하지 못해 자신을 마냥 잘못된 사람으로 여기던 시절의 마음이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고백을 하며 어떤 땀을 흘리고 어느 시간에 어떤 꿈을 꿔야 할지,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정답 없는 질문을 품고 사는 법 정도를 이젠 안다. 누구나 저마다의 질문이 있고 정답은 없더라. 그러니 함께 사는 삶에서 서로의 다름은 잘못이 아니라 개성이고 방향성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긍정하고 고유의 방향성을 따라 걷는 사람은 언젠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 위에 서있게 된다고 믿는다. 그곳에선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 내가 걷는 자리가 내가 가려는 곳을 향하는 길이 될 테니까. 그러나 까만 밤하늘의 미로를 걷던 나는 정답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나나를 울리지 않으려면 어떤 말을 건네야 했을까? 서투른 나를 용서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친근하고 두려운 친구들에게 담담히 작별인사를 건넬 수는 없었을까.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연못에 초를 밝힌 연등을 띄우며 소원을 빌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좋아 동생이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