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꿈을 꿉니다. 대부분은 금방 잊습니다. 꿈속에서 봤던 풀이 자라는 나의 얼굴 정도를 기억합니다. 십 년 전과 같은 방향으로 달아나는 발자국과 사람들이 떨어졌던 뾰족한 첨탑의 모서리도 기억 속에 접어두었습니다. 어떤 꿈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연히 떨어진 곳이 무대임을 깨닫고 서둘러 퇴장하는 식의 꿈은 아닙니다. 이야기가 있는 꿈입니다. 처음과 끝이 있고,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예감이 얽혀 유일해진 꿈입니다. 그런 꿈에서 나는 직접 사건을 일으키고 그런 자신을 관찰합니다. 스스로를 통제하듯 통제할 수 없는 꿈속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적 있습니다. 어둠의 마침표로 끌려가는 꿈이었습니다. 나는 달리고 숨고 싸웠지만 결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말이 나를 찾아왔고 나는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것이 낡았건 새것이었건 간에.
현실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오는 순간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때에, 예를 들면 일요일 오후 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볕을 쬐고 있을 때면 이야기가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인물의 목소리로요. 계속 듣기에 괴로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극적이거나 억지스럽고, 유치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에도 공상으로 치부하기 아까운 이야기는 있습니다. 듣기에 괴롭더라도 현실의 단면을 가르는 이야기가 상냥한 이야기보다 기다려집니다. 그런 이야기는 드물고, 한 번 들으면 받아 적어야 할 의무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나뿐이란 생각에서 입니다. 그럼에도 쓰지 않은 이야기는 길에 두고 온 아이처럼 후회로 남습니다.
내가 아닌 이야기가 나를 찾는다는 게 이상하기도 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고 부른 적 없는 이야기가 눈을 감고 조용해진 나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서서 찾으면 흔적만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산책을 나가 세상에 무심한 척 먼 곳을 보고 걸으면서. 아무 할 말이 없을 때 써지는 글이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느껴지는 허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야기는 비어있는 나를 채우러 오는 걸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이 외면하고 침묵한 나를 대신해서 말해주려고 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라는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