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스마일로비치, 그리고 여전한 총성
평화로운 금요일 밤, 카페 테라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시민들. 그러던 그 때 갑작스런 총성이 울린다.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업드린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혈흔들이 낭자한다.
- 2015년 11월, 파리
터져버린
해묵은 화약고
1992년 4월 사라예보는 포위된다.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의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들은 자신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공격한다.
같은 민족은 아니었지만, 한솥밥을 먹던 그들의 해묵은 갈등의 화약고가 '보스니아 해르체고비나 독립 선언'을 계기로 터져버린 것이다.
1902년이 아니라
1992년입니다
사라예보 포위전은 1992년 4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이어졌다. 사실 92년이면 지금으로부터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시기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해가 92년인데, 94년 미국월드컵,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이 열린 해 까지 사라예보는 고립되어 있던 것이다.
민간인 5,600여명을 포함해 15,0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희대의 비극인 동시에 인간의 잔혹함과 냉혈함이 여과 없이 나타난 현대사의 수치스런 기록이다.
1992년 5월 27일,
최초의 민간인 대상 포격
92년 5월 27일 박격포 포격에 시장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버렸다. 빵을 사기 위해 줄 서있던 16명의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 공격은 'Bread Line Massacre'(직역;빵을 사려고 줄 서던 사람들에 대한 학살) 이라고 불리운다.
이후에도 세르비아인들은 민간인에 대한 포격을 멈추지 않았고, 93년 6월 세 차례 포격을 비롯 94년 1월과 2월, 95년 8월까지 어른/어린이 가릴 것 없이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민간인에 대한 첫 공격이 있던 1992년 5월, 사라예보의 한 첼리스트는 정장을 차려 입고 악기를 들었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사람들이 희생된 장소, 포격에 폐허가 된 곳이었다.
그는 잔해물을 딛고 올라간 후 그 곳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내 옆에서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죄 없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와중에 그는 첼로를 들었다. 당장이라도 스나이퍼의 타켓이 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는 총이나 돌멩이 대신 악기를 들었던 것이다.
제 어머니는 무슬림이셨어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렇지만 전 상관없었어요, 전 사라예보사람(Sarajevan)이면서 세계인(Cosmopolitan)이고 평화주의자(Pacifist)이거든요.
특별할 것 없어요, 전 음악가이고, 마을의 한 구성원이에요, 다른사람들처럼 말이죠.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뉴욕 타임즈 인터뷰 중(By John Burns)
그 첼리스트는 사라예보 현악 사중주단 일원이자, 사라예보 필하모닉 등 악단에서 연주했던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jlović) 였다.
전쟁을 마주한
한 예술인의 혼
스마일로비치는 포격으로 희생된 22명(기록상 민간인은 16명 사망)의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22일간 연주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사실 스마일로비치는 이 기간에만 연주한 것이 아니라 93년 말 사라예보 탈출 전까지 곳곳에서 음악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졌다.
스나이퍼에 쉽기 표적이 되던 장례식장 등을 비롯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 등에서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쟁과 폭력에 대항했다.
사라예보를 위한
치유의 아다지오
죄 없이 죽어간 사라예보 시민들을 애도하며, 폐허 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민중을 위해 그가 연주한 곡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 작곡가 '알비노니(Albinoni)의 아다지오'가 그 곡이다.
수많은 영화 및 드라마 등에 삽입된 곡이기도 하며, 애절한 선율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곡이다.
사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역시 전쟁과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되 버린 독일 드레스덴의 한 도서관(Saxton State Library)에서 지아조토(Giazotto, Remo)에 의해 발견된 악보가 바로 이 곡이다.
엄밀히 이 때 발견된 부분은 몇 마디에 불과했는데, 교회 소나타 op.4 의 일부라 추정했던 지아조토는 이 곡을 살리고자 했다.
이 노력으로 지금 전해지는 아다지오는 바이올린, 현악, 오르간을 위한 합주곡 형태로 알비노니가 재창조한 곡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이 곡을 'The Adagio in G minor for violin, strings, and organ continuo' 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사라예보 평화의 아이콘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전장 속,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의 연주는 사라예보 사람들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영국의 작곡가 David Wilde는 그에게 헌정하는 첼로 솔로 곡 'The Cellist of Sarajevo' 를 발표했다.
94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국제 첼로 페스티벌(International Cello festival at RNCM)에서 초연이 이뤄졌고 연주는 요요마가 맡았다. 곡이 마친 후 한동안의 긴 침묵에 이어 관객 속에 스마일로비치가 일어났고, 요요마는 그를 마주하기 위해 통로로 내려가 그를 껴안았다. 수많은 관객들의 눈물 중에서도 아픔을 직접 피부로 느낀 스마일로비치의 눈물이 가장 짰으리라.
그 외에도
모티프가 된
스마일로비치
David Wilde뿐 아니라, Paul O'Neill 이라는 작곡가도 그에게 영감을 얻어 'Christmas eve/Sarajevo 12/24' 라는 곡을 발표한다.
또한 포크송 가수 John McCutcheon 역시 그를 모티프로 한 곡인 'In the streets of Sarajevo' 를 써낸다.
현대미술가인 Beliz Brother는 사라예보의 그를 생각하며 '22 Adagio' 라는 조형 작품을 작업했고, 클린턴 정부 시절 백악관에 있다가 현재는 시애틀에서 전시중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를 가장 재조명하며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캐나다 작가인 Steven Galloway의 'The Cellist of Sarajevo'(사라예보의 첼리스트)이다.
22일간 계속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 온전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 소설의 영향이다.
다만 스마일로비치에게 연락 없이 소설의 모티프로 사용한 것이 이 후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아직도
멎지 않은
총성
사라예보의 비극이 끝난 후 20여년이 흐른 지금, 총성은 멎었을까?
11월 평화로운 파리를 뒤덮은 총성과 포탄의 광음은 현대 시대에도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파리 테러 이후 이 부분에 대해 언급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반사적으로 떠오른 사라예보를 통해 글을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파리의 슬픔은 전 세계인의 공분을 샀으며, 이는 비단 파리 뿐 아니라 시리아, 레바논 등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학살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일일테다. 위로 받지도, 기억되지도 못하는 죽음이 어쩌면 평범해져버린 지경이다.
상처를 덮고 치유의 용기는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감동을 주지만, 그보다 바람직한 것은 상처 없이 밝은 웃음으로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요원해보이지만, 너무 더디겠지만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지리한 육중한 벽을 깨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테다.
*Albinoni - Adagio in G minor,
Boston Cello Quartet
https://www.youtube.com/watch?v=IWGPNG-Hgdc
*표지 및 본문 사진 출처 :
http://www.readthespirit.com/explore/vedran-smajlovic-cellist-of-sarajevo-still-moves-the-world/
http://msurman.blogspot.kr/2014/04/the-social-injustice-of-siege.html?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