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그리고
While no one has ever successfully defined music, we can, at least, permit ourselves to say of it that it is a language of feeling.
Music, therefore, has often been
referred to as a universal language
어떤 사람도 음악을 정확하게 정의하진 못하겠지만,
우린 스스로에게, 적어도, 음악이 감정의 언어라 말할 수 있을거에요.
음악은, 그래서, 종종 모든이들의 공통언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세이모어 번스타인, from the movie Seymour: An Introduction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고양시키기도 또 추스르기도 한다.
'universal language' 라는 표현을 넘어선 그 무언가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통해 진정으로 소통한다. 물론, 클래식 음악도 예외가 될 순 없다.
이제, 그 소통의 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페스티벌, '교향악축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의 음악 축제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아니 축제란 이름이 너무 오래된 낱말 같다면, 음악 페스티벌이라고 해볼까.
좋아하는 장르에 따라 각자의 머리 속을 스치는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이젠 국내에도 제법 다채롭고 수준있는 음악 페스티벌들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지 않는가.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비롯 지산벨리와 같은 락페스티벌, 봄 향기 물씬나는 곡들로 사랑받는 뷰티풀민트라이프 등이 그 대표적인 예겠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훨씬 오래된 올해로 28년째를 맞는 음악 페스티벌이 있는데, 바로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가 그 주인공 되시겠다.
땜질용 행사가
대표 축제로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부랴부랴 음악당을 시작으로 개관했던 예술의전당은, 한달여간의 음악제를 준비했다. 사실상 최초의 클래식 전용홀을 가진 자부심과 정부의 지원으로 예술의전당은 한달이 훌쩍 넘는 음악제 프로그램들을 기획했다. Musica Antiqua Köln(무지카 안티콰 쾰른), 로스트로포비치 리사이틀 등의 해외 음악인들의 공연과 더불어 국내의 다양한 악단들 특히 상당수 지방 시립교향악단들도 개관기념 음악제에 이름을 올렸다.
그로 부터 1년 후, 1주년 기념 음악제를 준비하던 예술의전당은 턱없이 모자란 예산과 기획난에 봉착했고, 결국 국내 오케스트라를 섭외해 '오케스트라 축제'라는 이름으로 1주년 음악제를 열기로 한다. 개관 기념은 해야겠고, 해외 악단 등을 섭외할 여건이 되질 않으니 일종의 땜질용으로 구색을 갖춘 것이다라는 평가가 전해진다.
당시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의전당 측은 "당초 외국의 유명한 교향 악단을 초청할 것도 검토해보았으나 국내 음악계의 내실을 다진다는 뜻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음악 잔치를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열악했던 지방시향으로선(현재진행형이지만) 큰 비용 없이 상경해 좋은 홀에서 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에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유야 어떠하든, 그렇게 1989년 11개 악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교향악 축제의 씨앗이 뿌려졌다.
경쟁?
아니 '축제'
전국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참여해 거의 매일 공연을 하니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가 있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리고, 프로의 연주이기에 호연일 경우엔 칭찬을, 졸연을 펼쳤을 땐 가차없는 평가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분명히 할 것은 이 축제는 연주실력을 평가하고 그에 따른 순서매기기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참신한 기획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도전이 있다면, 조금은 아쉬운 앙상블에도 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제주도립교향악단이겠다.
2년에 한번 꼴로 서울을 찾는 그들은 매번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과 정성껏 빚어낸 소리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작년에 찾았을 땐 4.3 사건의 아픔을 담은 작곡가 최정훈의 '관현악을 위한 진혼곡, 4.3 레드 아일랜드'를 연주해서 제주의 아픔을 담아내었고, 그에 앞선 2013년에는 섭집아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영조의 섬집아기 환상곡과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을 선사해주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관객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음을 그들은 그렇게 직접 보여주었다.
젊은 음악가들에게
주어진 기회
교향악축제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젊은 연주자들에겐 협연무대 하나 하나가 소중한데, 수많은 관객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정적인 국내 시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무대인 것이다.
최근 열린 3년내 협연자만 보더라도 조성진, 윤홍천, 김다솔, 최예은, 클라라 주미 강, 신지아 등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올해 역시 임지영, 문지영, 함경, 아벨 콰르텟 등이 참여해 2천여 관객들을 앞에서 자신의 색깔을 선사했다.
다양한 레파토리는
축제의 근간
이 교향악축제가 지금껏 이어진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다양한 음악들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평소에 잘 연주되지 않는 곡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며 클래식 음악의 밑바닥을 닦는데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올해의 경우에도 현악사중주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보기 드문 슈포어의 곡(현악사중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비롯,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닐센 교향곡, 프랑크 교향곡 등의 다채로운 레파토리가 관객 앞에 선보였고, 이러한 곡들은 분명 축제를 더 밝게 빛내주었음에 틀림 없었다.
또한 교향악축제는 국내 작곡가들의 곡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사실 초창기부터 대중적인 곡만큼이나 국내 작곡가들의 다양한 곡들을 시도하는 데에도 공을 들인 교향악축제였다.
정치적 뉴스에서 더 자주 보던 윤이상, 안익태 등의 곡을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차치한 채) 귓가에 어떻게 울리는지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의미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올해는 김성태의 '한국적 기상곡'과 박정규의 '아리랑 연곡'이 무대에 섰으며, 스페인 작곡가인 파브레가스의 '카탈로니아의 기질'이 세계 초연되는 인상적인 순간도 함께할 수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시도들
최근의 가장 인상깊었던 교향악축제 프로그램은 2013년도 프로그램이었다.
바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교향악축제에 참여해 콘서트홀에 선 것이다. 단순한 지역과 레파토리의 탈피가 아닌, 획기적 기획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2012년 준프로급에 문호를 개방했었을 때(이화여대 오케스트라 참여) 보다 더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자주서던 남산골(국립극장)이 아닌 서초동 우면산 자락이었지만 그들의 정성은 반사판을 타고 관객들에게 들어갔다.
클래식 음악보다 더 저변이 좁은 국악이지만, 이를 통해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도 더 열린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을테다.
페스티벌의 일환이 아니었다면, 찾아 가기 어려웠을 이런 무대가 축제의 큰 묘미가 아닐까한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또한 올해 새롭게 시도한 인터넷 생중계도 주목할만 하다.
예년의 클래식 FM의 생중계와 더불어 포털 사이트와 연계해 개막/폐막 공연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실시간 채팅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을 듣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음악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는 아주 긍정이었으며, 내년부터는 더 확대되길 기대해본다.
타성을 넘어
도약할 수 있기를
사실 2013-14년을 기점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올해 같은 경우, 같은 곡들을 연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울산시향과 청주시향은 공히 생상 교향곡 3번 '오르간'을 연주했고, 부천시향과 전주시향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 겹쳤다.
또한 현대음악에 대한 시도는 사실상 전무했으며, 국내 작곡가들의 곡들도 서곡 성격의 곡 두 곡이 전부였다.
각 악단들 마다 사정은 다양하고, 현실적 여건도 무시하지 못할테지만, 축제가 한 단계 나아가려면 더 도전적인 레파토리도 필요할 것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정말 시도해본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물론 꼭 현대음악이 아니어도 된다. 이를테면 꽤나 알려졌지만 전곡 연주는 거의 듣기 힘든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 레파토리에 올라와 있다면 상당한 흥미를 끌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해외의 몇몇 페스티벌 처럼 주된 작곡가나 테마를 선정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사실 교향악축제의 경우 이른바 '부제'가 없다보니 큰 정체성의 줄기를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어쩔땐 각 악단들의 정기연주회를 단순히 연달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물론 사정이 녹록치 않은 악단들이 많기에, 레파토리 선정에 있어 예술의전당측의 입김만을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어느덧 30주년을 맞아가는 이 축제에도 이제 갈피하나는 분명 필요해보인다.
마지막으로 협연자 선정에 있어서 어리고 젊은 연주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했으면 한다(한 때 오디션을 통해 협연 기회를 주기도 했는데, 몇년 전부터는 그마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여러번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만났던 노장들의 모습도 좋지만, 샛별들이 교향악축제를 통해 기회를 얻고 경험을 쌓는다면 더 의미있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조금의 아쉬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껏 자리를 지켜준 교향악축제가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계에선 정말 중요함은 분명하다.
한 번에 성큼 내딛기보다 차근차근 걸어가며 늘 대중들에게 아낌없는 음악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