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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Sep 05. 2023

헤어질 줄 알면서도 시작하는 만남

반려견 입양, 내가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구나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 인연의 법칙이라지만, 이별이 빤히 예상되어 있는데도 만남을 시작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이다. 네 발 달린 반려 동물들의 평균 수명은 15년에서 20년. 견주의 인생 항로에 큰 이변이 없다면 반려견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지극히 짧은 시간만을 함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별과 슬픔이 예견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반려동물과 함께하기로 하는 실수를 범한다.


2019년, 남편의 가족으로 오랜 시간 함께했던 '못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난이는 계속 아팠고,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들은 지 이미 오래였다. 곧 떠날 것을 알았지만 정작 난이가 정말로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생전에 내가 나눈 추억이라곤 캠퍼스에 남편이 데려와 쓰다듬어주었던 하루 잠깐의 시간 정도. 그 외엔 가끔씩 난이를 볼 때마다 점점 눈이 뿌옇게 변하고 고개를 삐딱하게 떨구곤 잘 걷지 못한 채 힘없이 누워있던 모습들이 전부다. 고작 그뿐이었던 나도 슬픈데 처음과 시작을 함께한 가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히 헤아려지지 않았다. 차갑게 굳어버린 난이와 마지막 인사를 하며,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서 17년의 견생을 마감하다니, 그래도 참 복이 많은 강아지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난이를 떠나보내고 1년여쯤 후, 나와 남편은 유기견이었던 토리를 입양했다. 그제야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흐릿했던 난이의 죽음이 다시 생각났다. 내가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물론 입양을 생각할 때 떠나보내는 아픔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끝까지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처 몰랐다. 이렇게 입양하자마자 토리와 빠른 속도로, 깊게 사랑에 빠져버릴 줄은 말이다. 이토록 순수한 사랑을 주는 생명체가 나보다 훨씬 먼저 세상을 뜬다니. 한동안은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입양한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는데 펫로스 서적을 잔뜩 구입하기도 하고, 남편과 토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실 헤어짐 없는 만남은 없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헤어진다. 영원히 살아있을 것만 같은 부모님도 언젠가는 먼저 돌아가신다. 생각만 해도 울컥하지만 어느 시점엔 준원과 나 둘 중 한 명만 살아있을 것이다.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친구들 장례식에 가게 될 수도 있지.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이 모든 것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라면 겪게 되는 고통이다. 하지만 받아들이기에 너무 괴로운 사실 이어서일까. 좀처럼 일상생활에서 상기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자꾸만 망각하고,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서로를 미워하고, 상처 주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곤 한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토리는 내가 경험할 가까운 첫 번째 죽음일 것이다. 깨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토리가 언젠가는 생기를 잃을 것이다. 나는 그 옆에서 이제까지 무수한 견주들이 그랬던 것처럼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좌절하고, 무너질 것이다. 우리에게 이별은 분명히 찾아온다. 하지만 이왕 이 겁도 없는 일을 저지른 만큼, 길지 않은 토리의 생을 최대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별의 과정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고스란히 겪어내고 싶다. 어쩌면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그러니 짧은 시간 힘을 내어 사랑하라는 진리를 알려주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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