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9일, 수이가 훤이에게
2023년 11월 9일
by 수이
이전 편지에서 훤이 너가 말했지. 늦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가 '도파민 중독' 때문인 것 같다고. 동감해. 하지만 이건 어때? 나는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도파민에 중독됐다는 생각을 해.
다만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세상은 발전하기에. 살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하지.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패러글라이딩을 감행한 너의 용기를 응원한다. 안 했으면 이게 어떨지 절대 몰랐을 거라는 너의 편지, 재밌게 읽었어. 거기다 여태껏 왜 이 느낌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었다고? 무슨 느낌일지 정말 궁금한데... 난 차마 무서워서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못하겠어...
그리고 너의 이직! 너 말대로 더 쉬운 길이 있었지만, 때로는 가지 않은 길을 갈 필요도 있잖아. 소신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해. 결혼과 함께 새 출발의 기운을 얻어 힘차게 나아가기를!
도전하는 너의 이야기를 읽으며 몇 달 전 내게 있었던 일이 생각났어. 별 일 아니었지만, 내게도 다시금 도전할 힘을 준 일. 그때, 나는 미국에서의 첫 도전이 잘 풀리지 않아서 맘이 싱숭생숭했었거든.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 그냥 어제도 내일도 똑같을 것 같은 그런 하루. 저녁 6시가 됐길래 강아지 밥을 주고 산책을 나갔어. 루디가 그쯤 저녁밥을 먹고 조금 긴 산책을 가거든. 우리 집 근처에 LACMA라고 엘에이 현대 미술관이 있어. 그 옆에 공원이 하나 있는데 강아지랑 산책 가기 좋아. 미국 사람들은 공원에서 강아지를 풀어놓고 걷거든. 나도 공원에 가면 슬며시 루디 목줄을 풀고 열심히 공을 던져줘. 강아지는 하루동안 찌뿌둥했던 몸을 풀고. 나는 엘에이의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미국에 도착하고 처음 이 공원을 발견했을 때는 이 공원의 모든 점에 사랑에 빠졌었어. 울창하게 드리운 나무들. 부분 부분 솟아오른 동산들. 풀냄새, 흙냄새. 미국애들은 잔디에서 정말 말 그대로 데굴데굴 뒹굴어. 어른도 아이도. 편안한 표정으로 햇살을 쬐면서 여유를 즐기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멋지더라.
그런데 매일 오다 보니까, 이것도 일상이 되더라고. 매일 루디 공 던져주는 게 귀찮을 때도 있고. 에어팟으로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공원에 도착해서는, 늘 가던 코너에서 늘 던져주던 방향으로 강아지에게 공을 던져줬어. 이 정도면 됐다 싶으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그날도 마찬가지. 얼른 집에 갈 생각으로 마구 공을 던져주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 이 큰 공원에서 왜 맨날 같은 공간, 같은 방향으로만 공을 던지는 거지?
그렇게 방향을 틀었어. 늘 보던 곳이 아닌 반대편을 바라봤지. 그런데 마법처럼, 핑크색으로 지고 있는 아름다운 석양이 보이는거야. 그러니까 내가 늘 강아지 공을 던지던 쪽 반대편이 서쪽이었던 거야. 정말 멋진 뷰였어. 나는 그동안 뒤만 돌아보면 이걸 볼 수 있었는데, 익숙한 대로만 하느라 이걸 못 봤던 거야.
그 순간 갑자기 공원의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지더라. 해 질 녘의 엘에이 바람이 얼마나 산들거리는지. 잘 깎은 잔디의 냄새는 얼마나 강렬한지.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는 얼마나 싸르르한지. 처음 공원에 왔을 때처럼 다시 느낄 수 있었어. 물론 그 순간도 지나지. 영원한 건 없어. 하지만 그 노을 녘. 그리고 강아지의 신난 표정.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는 느낌은 오래오래 남았어.
그리고 그때 묘한 위안도 얻었어. 비록 이번 도전은 실패했지만.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거라는 희망. 마치 지금 내 앞에 새로운 세상이 잠시 열렸듯. 또 의미 있는 뭔가가 생길 수 있다고. 그러니까 도전을 포기하지 말자고. 마음을 열어놓고 끊임없이 시도해 보자고. 그렇게 힘을 냈던 일이 있었어.
난 미국이 처음이 아니잖아. 어려서 오래 살았는데도, 성인이 돼서 다시 이곳에서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더라. 아직도 쉽지 않아. 니 말대로 새로 시작한다는 건 혼란스러운 일이야.
한국 사회에선 나를 설명해 주는 수식어들이 있었어. 대학 졸업하고 10년 간 가꾼 프로필 덕분에, 어디 가서 얘기할 거리가 있었어. 대단하지 않아도, 그냥 나는 어디 대학 나왔고 어느 회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무슨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런 것들 있잖아.
그런데 그 프로필이 미국에 오는 순간 한 순간에 사라지더라고. 바다만 건넜더니 리터럴리 노바디가 됐어.
미국인들은 우리가 나온 대학교를 몰라. 오히려 듣고 나면 미국 대학교 안 나왔다고 선 긋더라. 내가 한국에서 일했던 회사 이름들은 영어로 말하기가 어색해.
미국에선 사람들이 자기소개를 되게 구체적으로 한다? 한국은 자기 얘기를 최소한으로 하는 게 미덕이라면 여기는 자기를 얼마나 잘 포장하는지도 능력이니까. 거기다 무서운 건 상대방도 친절하게 들어주는 듯 하지만 속으로는 냉정하게 평가해. 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한테 도움이 될까? 오히려 사람 평가할 땐 한국인들보다 미국인들이 훨씬 냉정해.
그래서 처음엔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서 내 소개할 때 주눅이 많이 들었어. 엘에이 사람들 특유의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무시하는 게 느껴진 건 나의 자격지심이었을수도.
상대방: “그럼 넌 여기 와서 무슨 일 해?”
나: “한국에서는 일을 했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넘어왔지. 카피라이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상대방: “아 그렇구나, 그래 좋은 하루 보내."
미국에는 무직인 사람들이 백수라고 불리기 싫을 때 프리랜서라고 한다는 농담이 있어.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가 ‘별 거 없네’ 하고 쿨하게 가버리면 위축되더라.
엘에이에서 내가 장난처럼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는 게 있어. 미국 와보니 나는 머리는 33살 어른인데, 사회경험은 23살, 사람들 대하는 애티튜드는 13살이 되어버렸다고. 한국에서는 나이에 걸맞은 삶을 산다고 느꼈는데 여기오니 나를 바라보는 사회와 자아 사이의 괴리가 생겨. 나는 이 나라에서 그대들보다 짧게 살았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그들의 반응이 따갑지만, 서럽진 않은 이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노바디이기 때문에, 도전이 두렵지 않은 건 확실히 있어.
한국에서는 어디 회사 출신의 누구라는 타이틀, 회사에서의 직함, 하고 있는 프로젝트, 진행했던 업무들이 나를 지켜줬지. 굳이 내가 내 삶이나 일에서의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었던 것 같아. 단단하게 지켜주는 회사 속에 존재하다 보니 도전에 느슨해질 수 있었던 환경이었거든. 무엇보다, 뭘 도전하기에는 잃을게 너무 많았어.
그런데 미국에선 바닥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으니까. 도전이 그냥 일상이 되는 느낌이야. 솔직히 말하면 잃을 게 없는 게 제일 크고. 우리 엄마가 맨날 나한테 했던 얘긴데.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온다고. 무슨 소리냐 싶었는데 정말이구나 깨달아. 난 한 번 쥔 걸 잘 못 놓는 편인데. 이거 좀 아니다 싶으면 가끔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나에게 뭐가 중요한지,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질문들이잖아.
그동안 잊고 살던 이런 고민을 미국에 오고 지난 10개월 동안 참 많이 했어. 내 상황적인 것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이유에는 이 나라의 특성도 있는 것 같아. 미국은 도전하기 좋은 동네긴 하거든. 다음 편지에 좀 더 자세히 쓰고 싶은데, 그냥 내 단에서만 느낀 다분히 개인적인 관점들을 살짝 풀어볼게.
먼저, 미국인들은 서로 간의 물리적, 정신적인 거리감이 커. 서로에게 관심이 있기보다는 나한테 집중을 더 많이 해. 다 그렇진 않지만 많이들 주변 눈치 안 보고 내 페이스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도전을 해나가는 구조야.
한국에서 난 사람들과 타이트한 실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어. 내가 움직이면 나와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는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사람들이 반응하는 느낌. 사람들과 비벼가며 살아가는 느낌. 근데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지리적으로 그러기가 불가능해. 엘에이에서는 차로 10분 이상 운전하지 않으면 친구 만나기도 쉽지 않아. 그래서일까? 여기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shit을 찾아가.
두번째, 매일 변함없이 쨍쨍한 이곳의 날씨처럼, 엘에이는 도시의 변화 속도가 서울 대비 더뎌. 한국은 한 번씩 유행이 확 휩쓸고 지나가잖아. 이태원이 핫하다 하면 상권 한번 쫙 바뀌고. 성수동, 익선동 넘어갔다가. 요즘은 신당동이 힙당동 됐다는 얘기 들었어. 엘에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서울에서는 일 년 내내 유행하는 트렌드만 따라다녀도 재미있게 지냈던 것 같은데. 여기선 주변의 변화가 서울만 하지 못하다 보니…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집중할 시간이 생겨. 물론 엘에이, 트랜디해. 라이프스타일 멋진 사람들 넘치고 할리우드, 베벌리 힐즈 쪽은 넘사벽. 하지만 그런 곳들도 한국처럼 매년 바뀌지는 않아. 사람들이 자기를 발견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에 도시와 함께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발전한달까.
아무쪼록 여러 이유로… 너의 편지를 읽어보니 요즘 너도 나도 삶의 우선순위를 많이 고민하며 사는 것 같네. 이렇게 바다를 넘어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건 참 다행이야.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은, 내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요즘 참 겸허하게 바라보게 돼. 그리고 이제는 아주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이건 다음 편지에 쓰고 싶어.
그리고 난 니 편지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친구인 이유를 알 것 같았어. 우리 둘 다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의미를 찾는. 그냥 해야 한다는 이유로만은 잘 하지 못하는. 삶에 의미가 필요한... 병... 맞아? 결국 이런 우리이기 때문에, 나는 미국에서, 너는 한국에서, 쉼 없이 도전하는 것이 아닐까.
도전의 기반은 믿음이라고 생각해. 도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내가 도전하는 이유는, 도전을 통해서 삶이 의미 있어지기 때문이야. 너는 어때?
끊임없이 도전하는 우리의 삶이 좀 고달프기도 하고. 초조하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 같이 힘내자. 도전 근육을 버프 업 해보자고. 다음번 도전은 조금 더 가벼워지도록.
2023년 11월 9일,
엘에이의 맑은 눈의 광인 (+_+)
수이가 훤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