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부터 석 달째 쉬고 있다. 오른쪽 얼굴에 안면마비가 와서다. 구안와사로 흔히 알려진 벨마비, 70%의 환자들은 두세달안에 저절로 낫는다고 한다. 불행히도 나는 그 70% 안에 들지 못했다. 발병 2주차쯤 받은 근전도검사 결과 평균 90% 넘는 손상도가 나왔다. 눈과 입가는 98%에 육박했다. 이정도면 회복하는 데에 6개월이 걸릴지 1년이 지날지 알 수 없고,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유명한 병원을 부지런히 예약해봤지만, 하염없이 몇 달씩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서 이런 저런 병원들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혹시 내가 몰라서 치료의 적정한 타이밍을 허비하고, 증상을 악화시키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 두려웠다. 영원히 굳은 얼굴로, 웃지 못하는 얼굴로,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살게 되는 건가 싶었다.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하지? 이제 방송기자는 영영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마음이 힘드니까 아침 저녁으로 걸었다.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가면 안돼서 기껏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밖에 없었다. 걸으면서 유튜브에서 부처님 말씀을 찾아 들었다.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폭풍우 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언제나 너는 네가 있어야 할 곳에서 너와 함께 할 운명인 사람들과 네가 해야 될 일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부처는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구나,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번역투가 거슬렸다. 예컨대 '것'을 너무 많이 반복하는 것.. 문장을 이렇게 저렇게 더 쉬운 말로 고쳐보면서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고 싶었다. 얼굴 변화는 아주 더뎠고, 그래서 답답하고 불안했다. 차라리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바빠져버리면, 일에 몰두해버리면 스트레스를 덜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담당 교수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말까지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후유증이 남으면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그 전에 모두 회복할 수 있게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안면마비는 스트레스에 특히 취약하다고 했다. 일에 대한 집착을 진짜로 내려놓기로 했다.
2009년 10월에 입사하고 만 14년을 꼬박, 쉬지 않고 일했다. 일 중독자, 알콜의존증 환자에 가까웠다. 안면마비를 앓으면서 중독돼 있던 두 가지가 동시에 사라졌다. 2주마다 만나고 있는 정신과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일하는 데에서 보람도 재미도 느꼈지만 솔직히 버거울때도 있었거든요. 찰리채플린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태엽에 끼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태엽이 멈춘 셈이니, 어지러워요." 선생님은 수면보조제와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셨다.
잘 안보던 드라마를 하나씩 보고,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다. 김민식 PD가 쓴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고 나도 블로그에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에겐 '육아일기'라는 뚜렷한 주제가 있었지만, 아직 나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2016년 가을의 나는 '술'을 주제로 브런치를 열었었다. 아쉽게도 그해 9월말부터 국정농단 특별취재팀에 들어가면서 무지막지하게 바빠졌고, 그로부터 벌써 7년이 지났다. 세월 참. 술 관련 글을 보니 조금 부끄러워서 비공개로 돌리고 싶지만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시작이 반이니까 오늘은 이정도 쓰고, 매일의 '한시적' 백수 생활을 기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