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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수미 Sep 11. 2023

취미 찾기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나 친해진 한 선배는 예전부터 나에게 취미를 가지라고 조언했었다. 취미라니. 입사지원서 문서에나 나오던 용어 아닌가. 여유시간에 자주 하는 일을 뜻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었다. 맛있는거 먹기, 달리기, 헬스장 가서 무게 치기, 영화보기.. "그런 것도 좋지만" 그는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너는 그런 게 없어 보여. 온전히 재밌어서 몰두해서 하는 걸 찾아봐." 


시간 없어서 엄두도 못 내던 취미 생활, 병가 낸 김에 두루 다양하게 해보리라 생각하고 처음 등록한 게 도예 수업이다. 핸드빌딩 방식으로 접시와 컵, 화분을 만드는 중이다. 어릴때 미술 시간을 좋아했어서 나한테 잘 맞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무지하게 재밌다. 일단 손으로 물기먹은 흙을 주무르는 그 느낌이 좋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실체가 눈 앞에서 착착 완성되는 것도 보람차다. 무엇보다 조금 삐끗하거나 실수해도 슥슥 문지르면 금새 복구 가능하다는 점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됐다. 선생님께 이런 점이 좋다고 말씀드리니, "나중에 백자토 작업을 하시면 성격 나빠집니다." 라고 하셨다. 정교하게 해야 하니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 해맑은 초심자는 즐거울 따름이다.


사실 도예 수업을 애초에 찾아보게 된 건 달항아리 때문이다. 집에 오래 있어야 하니, 보기만해도 편안한 오브제를 갖고 싶었다. 다음달 물레 수업을 들을 때 달 항아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냐고 묻자 선생님은 "2025년쯤에나 가능하시려나... 더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라고 답했다. 대학교 도예과 전공 학생들도 4학년이 되어서야 배우게 된다고, 엄청난 코어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영상으로 보기에는 물레질이 그저 우아해보이기만 했는데, 역시 무식하면 용감한거였다. 


달항아리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은 빠르게 접어두고, 대신 그림 액자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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