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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Dec 31. 2020

찬란하게 아팠던 한 시대를 마치며

20대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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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올해의 마지막 책은 며칠 전 불현듯 떠오른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은 몇 년 전 어느 봄, 혼자 어린이대공원에 가 한적한 곳을 찾아 읽던 책이다. 반짝이는 햇살, 간혹 지나가는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 조금은 서늘했던 나뭇잎의 움직임. 아름다운 광경 속에서 나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이 늘 곁에 있다고 느꼈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 자신감을 갖고 한 시간 거리의 근교도 거의 나가본 적 없던 서울촌년이 생경한 해외로 무작정 떠나기도 했다. 내 선택에만 의존해 나아가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

상황은 통제할 수 없어도 나 자신은 고개를 가눌 수 있다고 여겼던 신념이었다. 암흑같은 구덩이처럼 속이 뻥 뚫린 원이 아니라 안이 채워진 ‘0’이 되기를 원했다. 깊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집착하며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생채기만 났다. 버티는 날들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어떠한 것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무언가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올곧음은 시간이 갈수록 급격하게 시들었다. 두려움을 동반한 낯선 것들을 직면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크고 작은 두려움들이 일상을 파고 들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나약함을 ‘발전’으로 승화하며 어른으로 잘 커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남은 건 결국 열렬히 불타오르다 소진해버린 잿더미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20대는 도망쳤다. 지금까지 느낀 행복은 모두 착각이니 고개를 숙여 발밑의 현실을 보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용기가 불안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나이를 먹는 게 슬픈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려졌다. ‘뭔가는 달라지겠지’싶은 미련한 기대때문이었다.

김연수 역시 책의 서문에서 자신을 ‘도넛’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는 마음의 한 가운데가 텅 비어버린 자신을 채우려 부단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모든 게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애초에 우리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을 뿐더러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깨달음이, 빛나는 문장들이 내게 답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다만 ‘유레카’와 같은 지루한 클리셰가 생애 처음 진심으로 와닿을 때 얼마나 큰 위안을 느끼게 되는지 알게 해줬다. 그 구멍은 채우거나 없애기 위한 존재가 아니구나. 품고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이구나. 2020년 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이, 나의 10대가, 나의 20대가 불완전함으로써 내가 존재했다.

이제 찬란했던 시절들은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영원히 멈춰있을 것 같던 혹독한 계절 역시 지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불안한 나의 새 시대는 빈자리에 우뚝 서 있다. 그 어디에도 없는 맛으로 충만해질 나의 도넛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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