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g Aug 26. 2020

소년이 온다. - 후기

소년이 온다. - 한강


소년이 온다.




1980년 5월 18일 내가 태어나기 8년 전 나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학교에서 말하는, 뉴스에서 나오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무엇인지 제대로 관심을 갖은 적이 없어 그저 '억울한 사람들이 그때 많이 죽었다.' 이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강의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내 인식을 달라졌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무고한 생명들이 파괴되어 죽어갔는지 인터넷으로 계속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강의 소설은 그 사건의 일부에 불과하고 어떤 이는 이 정도는 순화된 거라고까지 말한다. 인터넷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검색하기만 해도 책속의 처절함은 정리된 사실들을 만나 배가되어 내게 다가왔다.



책의 1장은 잃어버린 친구를 찾아 나선 중학교 3학년인 동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호는 친구인 정대를 찾아 헤매다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게 됐다. 사실 동호는 친구 정대가 총을 맞아 쓰러져가는 모습에 정대의 손을 놓고 혼자 숨었다는 죄책감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대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걸 봤지만 죽지 않았으면 하는 헛된 희망이 그 아이의 마음에 짐처럼 남아있었다. 그리고 동호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찾아오지 않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상무관 한쪽 구석에 놓인 냄새 나는 시신이 정대의 누나일 거라고. 동호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며 저녁 6시에 도청이 문을 닫으면 집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 아이는 알았을까,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무엇이 그 아이를 거기서 떠나지 못하게 했을까.




더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너는 허리를 편다.
어둑한 실내를 둘러보자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p.12-13



2장에서는 정대의 이야기가 나온다. 죽은 자기 몸을 끊임없이 지켜본다. 누나를 찾아, 동호를 찾아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근처에 자신과 같은 혼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말을 걸 방법은 없다. 썩어가는 몸을 지켜본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나는 이 장은 동호의 생각을 답해주는 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억울한 영혼들을 기리고 달랠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동호와 정대의 나이는 중학교 3학년, 고작 15살의 나이였다.



책의 내용은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위주로 계속 전개된다. 총을 들었단 이유만으로 극렬분자로 취급되어 수감되고, 고문들을 받게 된다. 그 고문들의 종류는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고 악독했다. 그렇게 지속된 육체적, 정신적 학대들로 인해 그들은 평범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석방되어 살아나온 자들도 대부분 자살로 목숨을 끊을 만큼 그들은 괴로워했다. 그들이 지은 죄는 무엇인가, 생을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않는 청소년들이, 그저 열심히 돈을 벌고 싶었던 여자들이, 동지를 지키고 싶었던 남자들이 지은 죄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물어도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이 소설로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작가의 디테일한 묘사에, 글 솜씨에 놀라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난 후에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훼손되었던 그 순간들이 너무 잔혹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책의 제목이 '소년이 온다'인 이유를 묻자, "소년은 이미 죽어서 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넋으로도 오고, 우리가 호명하면 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우리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계속해서 호명하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현실로 가져와야 한다. 잊히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린 지금도 최초 발포 명령자를 알지 못한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아니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인상적인 글이 하나 있어서 아래에 소개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분들을 기억하고, 6.25 때 나라를 지켜낸 분들을 기억하고, 일제 치하에서 항일독립투쟁을 했던 분들을 기억함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힌 기억을 되뇌며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함과 기회주의자들이 다시는 내 위에서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 출처 네이버 카페 "유공소리님"








작가의 이전글 그대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