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내가 호주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가 떠올랐다. 혼자 비행기를 탔고 저녁 9시경에 낯선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다. 영어가 어눌했던 나는 미리 뽑아온 종이를 인포메이션 데스크 안내원에게 보여주고 버스 스테이션을 안내받아 표를 샀다. 내가 홈스테이할 집 주소가 적혀있는 종이였다. 브리즈번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약 2시간을 이동했다. 내가 약 1년 동안 살기로 마음먹은 곳은 선샤인코스트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가보지 않았으므로 그곳이 어떤 분위기를 갖고 있는지 거기 사람들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버스에 함께 탔던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내릴 때마다, 그 인원수가 점점 줄어들수록 나는 마지막까지 내가 혼자 남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내가 가려는 곳에 정확하게 그리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점점 겁이 났다. 나는 긴장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이동시간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다. 창밖의 풍경은 그저 암흑뿐이었다. 나는 혼자 나간 해외는 처음이라 공항에서 휴대폰 유심을 살 생각도 못 했다. 호주에 잘 도착했다는 말을 간절히 전하고 싶은데, 홈스테이하기로 한 집으로 이동 중인데 조금 무섭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아는 누군가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긴장된 상태로 내가 묵을 집이 있는 선샤인코스트에 도착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제대로 없는 곳에서 셔틀 기사에게 뽑아온 종이를 내밀며 잘 하지 못하는 영어로 더듬더듬 대며 호스트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연락이 닿았고 나의 첫 홈스테이 호스트를 처음 만났다. 나를 데리러 나온 호스트는 젊은 여자였고 포근한 풍채를 가졌지만 어딘가 피곤에 젖은 얼굴이었다. 그의 표정은 나에게 안도감을 주지 못했다. 어색한 인사 후 그의 안내로 집에 들어갔고 내가 묵을 방에 짐을 내렸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움츠린 어깨를 펴지 못했다. 낯선 곳에 혼자 떨어졌다는 두려움이 끊임없이 나를 덮쳐왔다. 씻으려고 들어간 욕실에서는 바퀴벌레가 나왔고, 자려고 들어간 방은 너무나도 추웠고 먼지투성이였다. 한참 동안 사람이 묵지 않은 티가 여실히 나타는 방이었다. 그 집엔 와이파이가 없었다. 나를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주고 싶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주변에 오픈 와이파이가 있는지 와이파이 검색을 새로고침하며 폰을 이리저리 흔들었을 때 미약하게 신호가 잡혔다. 겨우겨우 엄마에게 카톡을 했다. 나는 잘 도착했고, 홈스테이하기로 한 집에도 잘 도착했다고, 씻었고 누웠고 집도 괜찮아 보인다고, 내일 집 구경도 하고 주변도 돌아볼 예정이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연락을 마무리했다. 엄마를 걱정시키기 싫었던 마음에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와이파이가 어떻게 끊길지 몰라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의 온기도 없고 히터 또한 없었던 그 방에서 혼자 있었다. 당연히 혼자겠지만 처절하게 혼자 남은 느낌이었다. 계속 잠이 들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 그때는 호주의 겨울이었다. 이불을 덮어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고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떨렸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혹시 몰라 가져왔던 침낭을 펼쳤고 그 안에서 들어가서도 추위를 견딜 수가 없어서 옷을 두세 겹 껴입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상태라 그런지 잠이 들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시라도 빨리 아침이 되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바라던 대로 아침이 왔지만 방에서 나왔을 땐 호스트는 출근하고 없었고 난 여전히 혼자였다. 나는 조심스레 방에서 나와 그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그 집에서 났던 특유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집은 복층이었다. 호스트방은 1층 제일 안쪽에 있었고 내 방앞에는 세탁실이 있었다. 세탁실 옆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로 된 계단이 있었는데 올라갈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다.
2층엔 거실과 주방이 있었다. 햇빛은 2층에만 들었으며 1층은 항상 나무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어 겨울의 찬 공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처음 맡았던 그 향을 잊을 수가 없다. 향료가 다 떨어져가는 방향제의 향인 것 같기도 하면서 나무바닥에 깔려있는 카펫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가 섞였나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조금 오래된 빵 냄새처럼 고소한가 싶으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향이었다. 그 향은 호주에서 지내면서 몇 번 더 맡을 수 있었다. 그 향에 대해 정의할 수 없었던 나는 호주의 집들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일 거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아주 가끔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향을 느낄 때가 있었다. 길을 가다가, 혹은 여행을 가서도 맡았다. 어디선가 그 향이 날 때면 나는 대략 1분 정도의 시간 동안 몸이 굳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너무도 긴장했던 그 순간이 마치 몸에 베긴 듯이 그 향만 맡아도 몸이 긴장하는 것이다. 호주는 나에게 특별한 추억과 현실적인 경험,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을 경험하게 해준 곳이다. 자연환경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따뜻한 사람들도 만났지만 난 그곳에서 차가운 바닥을 더 많이 보았다. 다시 여행을 가고 싶단 생각을 하기도 하고 호주에서 계속 살았으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보지만 나는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