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g Aug 27. 2020

양말

마음의 여유

여유란?


 벗겨진 오른발이 시리다. 양말 발목 고무줄이 늘어남으로 인해 마치 맞지 않은 양말을 신은 듯, 발이 자꾸 양말을 신발 안에 두고 빠져나온다. 빠져나온 오른발이 부끄러울 거 같다. 왼발을 옷을 입고 있는데 오른발은 발가벗었으니까. 마치 겨울철에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 거와 같다. 쓸쓸한 마음은 덤으로 왔으니. 양말 한 짝이 벗겨지는데 슬리퍼가 무슨 소용일까, 맨발로 슬리퍼를 신으면 슬리퍼 바닥은 차갑게만 느껴진다. 맨바닥을 걷는 느낌은 아니겠지만 온기 잃은 대리석을 걷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내내 혼자 걷는 기분을 준다. 죤이 양말을 사준다고 해서 기다리는데 영 소식이 없다. 그래서 버리려고 했던 양말을 다시 꺼내신었다. 이놈들도 처음엔 쨍쨍하게 내 발을 잘 감싸줬는데 계절이 바뀌니 이 녀석들의 시절도 다 갔다 보다. 한시절 잘 살고 수명을 다하는 매미 같은 녀석들. 문득 죤이 인문학을 배워보라고 한 게 생각이 났다. 대학을 다시 다녀도 될까, 여유가 있을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면 나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려나. 나는 지금도 좋은데, 자유롭게 읽고 쓰는 지금도 좋은데, 그렇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고 성장하려면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게 더 낫겠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단순히 돈에서만 오는 건 아니길 바란다. 나의 마음의 여유로 감싸줘야 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들에게 내 마음의 여유를 다 쓸 때까지 나는 내 마음의 크기를 조금 더 키우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나에게 집중할 시간은 조금 더 유보되어도 괜찮다. 그러므로 세세하게 관찰하는 눈을 조금 더 키워보려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 다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했으니 이번에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엄지발가락의 거스러미도 새끼발가락의 갈라지는 발톱도 모두 까끌까끌한 촉감을 가졌지만 잘라내면 부드러워지듯, 관리하면 깨끗한 발을 가질 수 있듯 말이다. 그리고 따뜻한 양말로 감싸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까끌까끌한 마음은 그리 간단하게 다듬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쉽사리 감싸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으니까. 더 노력해야지 한다. 지금 보이는 마음의 거스러미를 다듬어내고 나면 내 인생에도 한편의 소설 같은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하면서, 내 마음의 여유가 그들에게 닿아 모두가 단단해지길 바라고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냄새로 찾아오는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