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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요가생활 Feb 12. 2021

익숙한 일상

그 위화감과 두려움

초록아, 네가 태어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나는 출산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단다. 예약했던 조리원은 취소했어. 너도 없는데 좁은 조리원 방에 홀로 있는 것보다 익숙한 집에서 네 아빠랑 같이 있는 게 좋을 거라 판단했거든. 집으로 돌아오면 이런저런 일들이 눈에 밟혀 가만히 쉬기는 힘들겠지만 마음은 좀 더 편할 것 같았어.


퇴원 전 검사 등을 포함해 오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필요한 일 몇 가지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더라. 거실에 상을 펴고 네 아빠와 나란히 앉아 식사시간에 항상 보는 예능 프로를 틀어놓고 시시덕거리며 밥을 먹었어.


그렇게 저녁을 먹고 앉아있는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너무 평소와 같았거든. 널 낳기 전의 익숙한 일상과. 새벽에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가기 전 날 불과 수시간 후에 일어날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바다 전망의 카페에 나들이를 다녀왔었는데, 딱 그 날의 다음 날이 오늘로 이어진 듯했어.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결되는 일상에 위화감을 느꼈단다.


출산의 고통, 행복에 젖어있던 밤, 네 호흡 이상의 발견과 대학병원으로의 전원,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 그렇게 이어진 수술과 초조한 기다림과 첫 면회까지. 그 모든 일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어. 내가 널 낳긴 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너와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인사했던 시간은 그저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환상 같았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집도 일상도 익숙한 그대로였고 당연하다는 듯 네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와 스며들어버렸지. 그 익숙한 감각이 이상해서, 그리고 너에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났어.


나도 알아, 네가 돌아올 날을 생각하며 나는 정상적인 일상과 몸을 회복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걸. 그래야 네가 돌아왔을 때 더 잘 돌봐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너와 함께 집에서 보낼 일상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데 너 없이 보내는 이 일상은 너무도 익숙해서 네가 없는 지금을 너무 당연하게 느낄까 봐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어. 심지어는 이대로 네가 집으로 영영 오지 못하더라도 나는 너무 쉽게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와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마치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너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면 내 마음이 좀 달랐을까? 우리가 좀 더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있었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아주 잠시라도 네가 우리 집에서 함께 했었다면 난 더 힘이 들었을까? 무엇이 더 괜찮은 건지 난 잘 모르겠어. 그저 하루라도 빨리 네가 우리 곁으로, 우리 집으로 와서 내 일상을 가득 채워주기만 바랄 뿐이야.


사랑해 초록아. 우리 꼭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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