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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요가생활 Feb 18. 2021

홀로 집에 남겨진 날

그 기나긴 밤

네가 태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고 네 수술 후 여섯째, 내가 출산 병원에서 퇴원 후 이틀 째 밤이 되었어. 오전과 낮 시간은 꽤 바쁘게 보냈단다. 일주일간 집을 비웠더니 집이 엉망이라 정리도 해야 했고, 양가 할머니께서도 오전에 한 분, 오후에 한 분 다녀가셨어. 내가 조리원도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왔더니 할머니들이 반찬이니 뭐니 챙겨주시느라 더 바빠지셨지 뭐야. 고생시켜드리려 한 것은 아닌데 이렇게 의지를 하게 된다. 네 아빠는 밤 근무 중 새벽에 산부인과로 불려 온 이후로 첫 출근을 했단다. 8일 주기를 한 번 돌고 다시 밤 근무 차례라 이른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어. 집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모두가 떠나간 저녁 홀로 집에 남았단다.


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야. 혼자서도 심심할 틈이 없지. 임신 중에 하던 일을 다 정리하고 별다르게 해야 할 일이 없이도 혼자 시간을 잘 보냈어. 네 아빠가 쉬는 날이라 온종일 붙어있게 되는 날은 은근히 출근하는 날을 기다릴 때도 있었단다. 혼자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 그래서 널 만나기 전엔 이 시간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다 싶어 이것저것 하느라 바쁠 정도였지.


그런데 오늘은 잘 모르겠다. 뭘 해야 할지. 내 계획과는 전혀 맞지 않고 예상도 못하게 전개된 현재의 상황에 그저 황망할 뿐이야.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곤 시간 맞춰하는 유축밖에 없고, 다들 산후조리 잘해야 한다며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기만 하라고 하니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이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보니 얼마간의 기간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볼까 하는 계획도 세우질 못하겠고. 사실, 하고 싶은 것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아. 즐겨하던 수공예 취미들은 이미 좋지 않은 목과 어깨 그리고 불편해지기 시작한 손목에 부담이 가는 것들이라 손대질 못하겠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읽거나 넷플릭스 드라마나 보며 마냥 시간을 소비하는 것도 지치는 것 같아.


멍하니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또 다음 유축 시간이 다가오긴 해. 이 긴 밤도 금방 흘러가겠지. 너와 함께 있었다면 난 지금쯤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서툰 육아로 혼이 나가 있었겠지?


사랑하는 초록아, 우리 그 날이 서둘러 오길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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