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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ptember Sky Sep 27. 2018

모든 마라토너도 언젠가는 늙고 꺾인다. sub4.

2018년 춘천마라톤 출사표

마라토너도 언젠가는 늙고 꺾인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이유다. 


2017년 2월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도심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는 주로는 아름다웠고 점점 빠르게 달릴수록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울룩불룩한 아저씨 몸매는 매끄럽고 날씬한 몸이 되어갔다. 달리는 주로가 늘어날수록 삶은 아름답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달리는 동료들과 만날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은 강해졌다. 평일에 있는 훈련과 주말 정기모임에서 하는 훈련은 이어지는 날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날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1년 하고도 6개월을 달렸다. 가끔 오래 살았지만 하나도 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 때처럼, 많은 거리를 달렸지만 하나도 달리지 않은 기분이 든다.


마라톤에 입문하여 달린 거리는 작년 730km, 올해 지금까지 달린 거리가 900km로 모두 1,630km가 된다. 작년 춘천 마라톤 대회의 기록은 4시간 30분 1초였다. 3월에 열린 고구려마라톤에서 기록한 4시간 28분이 가장 좋은 기록이다. 올해는 풀코스를 2번, 하프를 3번 완주하였고, 청남대 울트라 마라톤에 출전하여 64km를 달렸다. 지금까지 즐겁게 달리고, 동료들과 함께 달리고, 부상 없이 건강하게 달려준 나의 두 다리와 팔, 그리고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질기게 버텨준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 가을의 전설 춘천국제마라톤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초보 러너 딱지를 떼었나 싶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발바닥부터 시작된 부상은 발목, 종아리, 무릎을 거쳐 허벅지까지 올라와 깨끗하게 없어졌다. 언덕훈련을 하고 나면 엉덩이와 허리 근육이 아픈 증상도 이젠 사라졌다. 달릴 때 엉망이었던 자세는 선배들의 도움으로 아주 안정된 자세를 보이지만 여전히 달릴 때마다 신경 쓴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충실하게 훈련하기만 하면 누구든 훌륭한 러너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한순간도 집중을 풀어선 안 된다. 중간중간 숨이 차고 '이젠 그만 뛰어야지'하는 생각이 들면 속도를 늦추고 호흡을 가다듬어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페이스를 찾아 달려야 한다.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에서 열리는 춘천마라톤 참가에 대비해 8월부터 주말 장거리 훈련을 한다. 이미 다른 마라톤 동호회나 많은 러닝클럽도 모두 하는 훈련이다. 메이저 대회가 거의 연달아 있다는 이유로 모든 주로는 러너들로 인해 아침 일찍부터 활기차다. 평일 저녁에 관문 체육공원에서 두 번 있는 훈련은 붉은색 트랙을 돈다. 운동장 4곳에 있는 대형 라이트가 밝히는 축구장 외곽 흰색 레인이 선명한 400m 트랙을 달리는 일은 멋진 일이다. 보통 25바퀴, 10km를 달린다. 메이저 대회를 앞둔 요즘 일요일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체육공원에서 영동1교까지 12km를 왕복하거나, 탄천 입구까지 22km, 마지막으로 잠실철교까지 32km를 왕복한다. 


러너에게 모든 거리가 두렵고 힘들다는 말을 이해 못 하는 시절을 지냈다. 하프보다는 10km가, 풀코스 보다는 하프가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달리고 나니 모든 목표로 하는 거리가 힘들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거리에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불쑥불쑥 생겨났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넘어설 수 있는 위대한 운동이 바로 마라톤이었다. 인생에 최상의 절정경험을 주는 운동은 마라톤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2018년 가을을 달리는, 가장 아름다운 마라톤 코스이기도 하고, 누구나 참가하지만 아무나 전설을 만들 수 없는 춘천마라톤에서 sub-4(4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정했다. 매 킬로미터를 5분 40초의 속도로 42km를 달려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모든 러너도 언젠가는 늙고 꺾인다. 나도, 선배와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시간을 끈다고 우리의 삶이 늘어나진 않는다. 두려움에 떨고 주저하며 미룬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바람처럼 흘러가고 쏜 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강해지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무엇이든 도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마라토너임을 알게 하고, 우리를 러너로 규정하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이다. 끝까지 달려야 하고 도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러너들은 모두 다른 이유로 달리기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먼 거리를 달린다 해도 달리는 행위는 모두 같다.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행복하지 않다. 지나간 날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 아쉬움, 그리움이 늘 남아있다. 앞으로 닥칠 걱정과 불안,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나는 벗어나기로 했다. 지난 일들에 기뻐하거나 아파하는 삶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는 일도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달리는 길의 3m 앞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결승선이 어디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달리기 시작한 지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중간의 거리 표지판을 다 무시하기로,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지금, 여기" 내가 또렷하게 볼 수 있는 바로 눈앞 주로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내가 지나쳐 달려온 길이, 앞에 남겨진 달려야 할 거리가 나를 지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내가 금방 도착할 바로 앞의 길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몸 중심을 바로 하고, 옴 몸의 힘을 빼고, 두 발을 굳게 딛고 무릎에 의지해, 중력을 이기고 중력과 타협하며 나아가려 한다. 그게 바로 내가 지금 달리는 이유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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