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ffee Einstein - District - Arema
도착 후 정교하게 맞아떨어진 꿀잠 엔딩으로 인해 바로 시차적응에 성공했다. 서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미라클 모닝을 맞이하게 된 것. 이미 경험해 본 바, 2월의 베를린 하늘에 '기대'란 것을 하지 않았지만 눈을 뜰 때마다 아쉬움이 커져갔던 것도 사실이다. 하루에도 몇 번은 얼굴을 바꾸는 날씨에 우산을 드는 것을 포기한 지는 오래였고, 파란 하늘과 건축의 곡선이 닿아 포토제닉한 순간을 만나는 것도 나중의 그 어느 여행으로 (진작에) 미루었다.
그치만 비가 추적이는 창가에서 리슬링 와인을 따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어떤 베를리너와 인사하고, 슈프레 강변을 휘적이며 커피를 사러 가는 하루들이 쌓이니 내가 좋아했던 여행을 잘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다시금 좋았던 조각들을 모아보니 예산을 두 배로 불리면서 이 곳에 찾아온 나, 결국은 칭찬해.
그리고 베를린에서 즐겼던 굿-모닝 플레이트를 소개한다.
보드랍고 달콤한 디저트보다, 원재료의 식감이 살아있고 건강한 기분을 주는 빵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가미하거나 가향하지 않은 채로 시큼한 풍미를 갖춘 독일의 빵을 좋아한다. 유럽의 도시에서는 스타벅스보다 다양한 로컬 프랜차이즈 카페를 두드리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인데, 베를린에서는 <Einstein Kaffee>를 자주 찾았고, 거기서 내 취향을 완벽히 저격한 아침 메뉴를 선물 받았다.
커피만 시키려다 우연히 시선이 머물게 되어 직원에게 물었지만, 딱히 영어로 병기된 이름도 없거니와 그저 샌드위치라는 설명만이 가능해 보였다. 마른 곡물빵 사이에 크림치즈와 오이를 끼운 종류였는데, 한 입을 베어물고나니 오늘 아침은 이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펄펄 끓는 까만 커피에 곁들이니 음습한 날씨 아래에서도 기운이 솟았다.
취향의 한 조각을 찾으면서 알게 된 것은, 독일식 통곡물빵은 '메스테마허'라는 건강 스낵으로 국내에서도 일부 애호가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었다. 납작하고 촉촉하면서, 단단하게 익은 쌀알과 유사한 질감이고 씨앗류를 가득 섞어 즐길 수 있어서 씹는 재미가 상당하다. 서울에 돌아와서 바로 찾아보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독일빵 사랑해.
어느 아침에는 미테 지구 근처에서 꽤 많은 베를리너들이 들른다는 카페를 찾았다.
<District> 라는 이름의 공간. 혼자 와서 더운 커피를 올려놓고 하루를 시작하는 단골들도 꽤 많아보였다. 이곳에서도 매력적인 풀 맛을 간직한 소중한 빵 한 접시를 발견했다. 거의 유일한 여행자인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초록색이 가득한 메뉴를 주문했다. 빵 위에 아보카도를 고르게 뭉개고 그 위에 풀로 탑을 쌓은 오픈샌드위치가 모습을 드러냈고, 짧고 깊게 감탄을 뱉었다. 잎채소와 허브를 포갠 것이라 향이 참 좋았다.
숙소를 나서자마자 왈칵 쏟아진 비를 피하던 중 들어가게 된 레스토랑.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그 어떤 메시지도 없이 담백하게 고여있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룹들이 소곤대며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식사가 한창이었지만 가게의 공기는 부산스럽지 않고 고즈넉했다.
영어 메뉴는 당연히 없었기 때문에, 그저 메뉴의 배치 순서와 직원의 추천을 통해 택하게 됐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내 앞에 놓인 접시는, 종합선물세트 그 자체였다. (어쩜 이리도) 예쁘게 배열된 신선한 과일과 치즈가 한눈에 들어왔고, 이것들을 종류마다 꼼꼼하게 썰고 맛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특별하게 조리된 것은 없었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달까. 거기에 당연히 곁들여진 곡물빵의 맛은 말할 것도 없고.
식기가 팅팅탱탱 부딪히는 가운데,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넘게 지나간 베를린에서의 여정을 정리하는 메모도 한 판 정리했다. 이미 와인을 비웠지만 식탁 위로 신문을 꺼내는 중년의 남자, 랩탑을 켜고 함께 치즈를 자르는 북클럽 멤버들이 있어서인지 크게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시간을 보냈다.
짭쪼름하고 쿰쿰한 치즈를 한 스푼 바르다가, 무화과를 양껏 슬라이스해서 덮어보기도 하고. 빵과 치즈, 과일을 접붙여서 내 마음대로 먹다보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있었다. 부글부글한 국물이나 덥혀진 고기가 없어도 꽤나 든든한 한상 차림을 끝낸 기분은 덤. 여기에 리슬링 한 잔을 곁들여볼까 했으나, 여행자의 하루는 이제 막 시작이기에 꾹 참고 우산을 털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