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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Jan 26. 2019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잃었다면

그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라.

5년전 호주에 있을때 시내 아케이드에서 만년필 한 자루를 샀다.

마침 책읽고 글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던터라

별거아닌 필기구 하나였지만 무척이나 애지중지 했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 못가서 그 만년필을 잃어버렸다.

여자친구와 시내 중심가에 있는 펍(혹은 레스토랑 혹은 카페)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보니 분명 가방속에 있던 만년필이 사라졌다.

딱 만년필만.


얼른 집에서 다시 나와 왔던 길을 살펴보았지만

만년필은 어디에도 떨어져있지 않았다.

갔었던 펍에 가봤지만 역시 분실물은 없다고 했다.


PIG&WHISTLE (피그앤휘슬)

얼마나 속상했는지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 가게 이름이 기억이난다...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와서

나의 부주의함과 덜렁댐을

스스로 비난하고 자책하며 있을때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기운내 제이콥, 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걸 잃어버렸을 뿐이야

만년필은 얼마든지 다시 사면되잖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걸. 


"여전히 너에게는 내가 있잖아. 

나를 잃어버리지 않은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일 우리 아케이드에 들리자 내가 똑같은 걸로 선물해줄게."


그런 말을 듣고 나자

단돈 5만원짜리 만년필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세상이 무너진듯 낙담해있는 내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그래 그렇지, 만년필은 다시 사면되는건데 뭐.

그렇구나. 돈으로 살 수 있는것을 잃어버린 것은

정말로 생각해보면 아무일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천적으로 덜렁대고 부주의한 나는

여전히 내 물건을 많이 잃어버리고, 고장내고, 흘리며 다닌다.


공항에서 환승을 하다가 28인치 캐리어를 화장실에 두고 나오고,

할부가 1년이나 남은 아이폰을 박살내는가 하면,

오늘은 또 신품가격 200만원에 달하는 카메라 렌즈를 떨어뜨려서

완전히 두동강 내버리셨다.


고가의 카메라 렌즈를 두동강 내버린것은

불과 오늘 오후 촬영에서였다.

그래서 오후부터 내내 우울했었는데

갑자기 문득, 5년전 호주에서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돈으로 다시 살 수 있는것을 잃어버린 것 쯤이야

돈으로 다시 살 수 없는것을 잃어버린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가끔씩 뇌리에서 잊을 수 없는 말들을 종종 해내는,

배울게 참 많았던 사람이었다.


카메라로 밥벌이를 하는 나에게는

매우 큰 손실임에는 틀림없지만

영영 사진을 못찍게 손가락이 잘려나간것도 아니고

두 눈을 못보게 된 것도 아닌데!

까짓거 어차피 할부인생 아닌가.


오늘의 일은 이걸로 훌훌 털어버리고 자야겠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잃지 않기위해 살아야겠다.








                       *사진: 내가 잃어버렸던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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