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다비전을 보고
이 글은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완다비전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분들은 완다비전을 시청한 후 읽어주세요.
너는 진짜 심심하고 외로울 틈이 없겠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모르는 소리. 어디부터 해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는 저런 말을 들으면 괜스레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네가 뭘 알아!" 사실 전혀 화 낼 일이 아니다. 침착하게 설명하자면, 오히려 정확하게 그 반대다. 나는 외로워서 하는 일이 많아졌다. 독립출판도 그렇게 시작했고, 춤도 그래서 추고, 요리도 어쩌면 그래서 시작한 것이라고 욱여넣어 볼 수 있다. 물론 대외적으로 지금의 에리카팕을 만든 것이 외로움이라고 밝힌 적은 없다.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시간이 길기도 했고, 그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좋아하는 게 많아~" 로 포장한 외면 안에는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 나 혼자 뭔가를 많이 좇게 됐다는 내면이 숨겨져 있다.
얼마 전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완다비전'을 정주행하고 완다라는 캐릭터에 한 껏 이입한 나는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것은 인간 행동 동력에 건전한 연료이자 타당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건전한'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한 때의 나는 '분노'가 모든 힘의 근원이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부모의 원수를 되갚기 위해 무언가가 되는 주인공의 클리셰나 "분노는 나의 힘" 같은 말들을 쉽게 답습한 미디어 키즈였던 나는 10대 시절 느꼈던 돈에 대한 분노, 어쩌면 자격지심을 연료 삼아 20대를 일궈왔고, 그 이후에는 사람에 대한 분노를 연료 삼아 30대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는 분노만큼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추진력도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분노를 동력 삼아 일군 것들은 지나고 보니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었거나 그다지 나한테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적성에는 안 맞지만 남 보기에 그럴듯한 직장이 그것. 7년간 직장을 참고 다닌 이유는 수 만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쟤 보다는 잘 나가야지." 같은 생각을 기저로 하고 있다고 고백해본다. 여기서 "쟤"는 취업준비 기간 당시 헤어진 남자 친구가 되겠다.
BGM : 에일리가 부릅니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반면, 외로움을 동력 삼아 일군 것들은 순전히 내 내면을 관찰하고 발견하게 된 요소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원래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야. 사람은 다 외로워." 따위의 말들로 위로되지 않는 외로움에 사무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게 된다. 하다 못해 떠오르는 생각이라도 적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나의 세 번째 독립출판물 "도시시"라고 고백한다.
그 시작은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바람맞은 저녁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잘 차려입고, 준비한 시간이 허무했고 비참한 마음에 욕실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고는 몇 자를 끄적였다. 그리고 그즈음 좋아했던 시티팝의 감수성으로 그 책을 포장하고 싶었고 어쩌다 보니 무의식 중의 좋아하던 것들이 망라되어 하나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도시시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에리카팕이라는 자아에 좀 더 기대어 외로운 박지윤은 외면할 수 있었다. 외로움이 만든 자아로 외로움을 무찌른 아이러니다.
완다도 그랬다.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잃고 극심한 슬픔에 무릎 꿇어가며 내면의 힘을 끌어내던 완다에게서 몇 년 전 욕실에 주저앉아 울던 나를 겹쳐 보았다. 완다는 완다비전이라는 시트콤 세계를 만들어냈고, 나는 도시시를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 활동을 덧대어가며 에리카팕으로 잘 먹고 잘 산다.
* 그래서 완다비전이 뭐길래?
완다비전을 완결한 시청자라면 '완다 비전'이라는 제목이 중의적인 제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완다 캐릭터와 비전 캐릭터의 이야기 '완다&비전' 이기도 하지만, 완다의 내면의 세계가 만들어낸 텔레비전 시리즈이기도 하다. 1950년대 시트콤 포맷으로 시작해, 회를 거듭할수록 80년대, 90년대, 모던 패밀리 같은 2000년대 시트콤 포맷을 표방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그 허구의 세계가 만들어진 비밀은 8화에서 밝혀진다. 다시 한번 스포일링 주의를 하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완다가 사랑했던 비전이 죽기 전 그 둘이 살 집으로 마련해 놓은 집터를 찾아간 완다는 그 자리에서 극심한 슬픔에 빠지고 무릎을 꿇으며 울부짖는다. 그리고는 그 슬픔에 절규하던 완다의 무의식 세계의 마법은 '웨스트뷰'라는 마을을 통째로 납치하기에 이르러, 마을을 자신의 드라마 세트장으로,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드라마의 조연들로 만든다. 사람 하나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라면 이게 얼마나 강력한 마법인지 알 것이다. 완다의 무의식 세계가 시트콤을 연출하게 된 것은 완다가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미국 시트콤을 보는 일이 그녀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는 배경도 밝혀져 완다를 더 안타깝게 바라보게 한다. 이것이 닥터 스트레인지 2편 예고편에 나오는 완다의 '웨스트뷰 사건'이며 이 사건 이후로 완다는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 소서러 슈프림을 뛰어넘는 마력을 소유한 캐릭터로 인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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