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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팕 Sep 17. 2022

향, 꽃, 절

뭐가 먼저일까?

모든 것은 하면 할수록 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주할 때마다 생경한 것이 있으니 바로 장례식이다. 물론 내 나이 겨우 서른셋, 부모님 나이의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직 경험이 한참 부족할 나이인 것도 사실이지만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장례식 갈 일이 많아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학년 n반 줄에 있는 큰언니는 갈수록 결혼식 갈 일은 없고 장례식 갈 일만 많아진다고 했다. 인생 선배이자 우리 집의 소식통 큰언니가 지난 토요일에 대뜸 전화를 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지윤아, 이야기 들었어?"

'여보세요'도 없이 '이야기 들었냐'니, 꼬꼬무도 아니고 너무 쪼이는 도입부 아닌가.


"무슨 얘기? 들어봐야 들어봤는지 안 들어봤는지 알지~"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려고 충청도식 너스레를 떨었다.


"시골 고모부 돌아가셨대. 우리 다 보령 가야 돼."


새해가 되고 벌써 두 번째 장례식 소식이다. 나한테 시골 고모부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먼 친척 어른이지만, 아빠의 매형이자 친할머니를 가장 쏙 빼닮은 큰 고모의 남편이 돌아가신 것. 올해 첫 장례식은 작은 형부의 큰 형의 장례식이었다. 모두 나에게 가까운 죽음은 아니었으나 가까운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었다. 당장 차오르는 슬픔은 없더라도 한 발짝 건넌 슬픔에 공감해야 마땅하니 검은 옷을 꺼내 입을 때 애도를 위한 차분한 마음가짐도 같이 껴입었다.


그런 차분한 채비에 산통을 깨는 질문이 끼어든다.


"절이 먼저였나, 향이 먼저였나? 형부 아세요?"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을 잘 아는 큰 형부한테 물었다.


"절 두 번 하고, 분향하면 될 거야."

형부도 확신에 찬 말투는 아니었다.


"그럼 꽃은요?"

검색해서 찾아보면 될 일이지만 이런 것은 왜인지 먼저 경험한 사람한테 묻고 싶지 않은가.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프로세스가 오갔고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서 몇 가지 옵션을 더 했다. 여러분도 맞춰보시라.


1) 절 2 > 분향 > 헌화 > 상주에게 절 1

2) 절 2 > 헌화 > 분향 > 상주에게 절 1

3) 절 2 > 분향 or 헌화 > 상주에게 절 1

4) 분향 or 헌화 > 절 2 > 상주에게 절 1

5) 분향 > 절 2 > 상주에게 절 1

6) 헌화 > 절 2 > 상주에게 절 1


* 기독교/현대 식인 경우, 절 대신 목례와 묵념으로 대신

* 정답은 맨 아래에


시골의 장례식장은 확실히 도시의 장례식보다 훨씬 떠들썩했다. 하얀 국화 화환들이 흐드러지게 늘어져 있는 '백합실' 안에는 사람들이 얼큰하게 가득 차 있었다. 사람도 꽃도 참 많았다. 꽃들은 하얗고 사람들은 울긋불긋했다. 1층 전광판에 떠오른 고모 이름 앞에는 ‘미망인'이라는 슬프게 생긴 한자가 덧대어져 있었다. 2층에서 만난 고모는 너무도 태연하게


"왔어들? 신발 잘 챙겨. 잃어버리지 않게."라며 장례식이 아니라 이바돔 감자탕집에서 만난 것 같이 말했다. 호상이었다. 준비했던 애도의 마음이 머쓱할 정도로.


상주들의 젖은 얼굴을 마주하고는 마음이 새하얘졌다. 고모부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이미 다 울어 젖다 못해 눅눅해진 얼굴로 나란히 서있었다. 그제야 누군가의 죽음이 실감이 났다. 죽음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가늠이 됐다. 이런 마당에 향, 꽃, 절 어느 것이 먼저인지가 중요할까. 그래서 장례식은 갈 때마다 익숙하지가 않다. 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어도, 각기 다른 슬픔으로 서있는 남은 이들을 마주하면 준비해뒀던 애도의 마음을 꺼내는 대신 내 얼굴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대입하게 된다. 내가 저 자리에 서있으면 어떨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생각하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으로 유명한 김명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책 제목도 같은 맥락일 것. 하루를 더 잘 살기 위해, 생을 더 잘 살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라는 것은 장례식장에서 본 상주들의 얼굴과 영정사진에 자신을 대입해보면 그것이 어떤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쯤에서 공개하는 정답은  두구두구두구두구 대체로 3) 아니면 4)라고. 분향과 헌화 중 둘 중 하나만 하면 된다고 한다. 참고로 나는 향, 꽃, 절 다 한 경우도 있다. 물론 다 해도 상관없다고 한다. 사실 향이니 꽃이니 절이니의 순서 보담도 그 자리에 찾아간 애도의 마음이 이미 정답이다. 예절은 어디까지나 예절일 뿐. 그래도 이것만은 기억하자. 누군가에게 웃참 챌린지가 되지 않기 위해 발가락 양말만큼은 지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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