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팕 Apr 04. 2023

30대 싱글 여성이 연애가 어려운 이유

올해 안에 연애를 하려면 길게 가든 중간에 빠그라지든 일단 누굴 만나기라도, 트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틴더에 들어갔다. (말고 뭐 방법 있겠냐)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들어간 지 10분 만에 어떤 바리스타와 매칭이 됐고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나를 스와이프 했으나,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는 않고, 연락을 이어가려고는 하지만 자기 얘기만 한다. 심지어 틴더는 답답한지 연락처를 주었으나 뭐 카톡이라고 딱히 사정이 다를 바는 없었다. 연신 본인이 로스팅 중이라 너무 힘들고 덥고 녹아내리는 중이라고. 정신이 없다는 말만. 정신이 없으면 안 바쁠 때 연락하라고 해도 간신히 대화의 끈을 이어가서 뭐 하자는 건지 의아했다. 넋두리 상대가 필요한 것 같은데 챗쥐피티라는 신문물을 권해볼 것을 그랬다. 녹아내리고 정신없는 와중에 스와이프는 왜 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그이를 비롯한 이 틴더 안에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선택되는 상대인지 확인하여 자존감을 챙기고 싶을 수도 있겠다. (거봐,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한 손안에 쥐고 엄지만 좌 우로 움직여 상대를 선택하기도 탈락하기도 하능 과정을 통해 전지적인 권력을 맛보았을 수도 있겠다. 상대를 선택 과정은 먼저 이 앱을 켤 의지와 본인의 취향에 따른 데이터를 곁들이고 종국에는 좌로 보낼지 우로 보낼지 결정하는 판단력까지 갖추어야 하지만 그 과정 뒤를 잇는 <대화> 과정에서는 그 전지적인 권능이 급 제로에 수렴한다. 이야기할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작정 선택만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책임감 없는 엄지>라고 부르겠다. 


조승연의 탐구생활 <저출산의 진짜 이유> 중


3년 만에 샘솟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무안할 정도로 3시간 만에 이성에 대한 마음을 도로 닫게 됐다. 간판 내리고 문 닫아 셧다운~ 누구를 만나도 다 이러겠지. 기대는커녕 실망 없는 디폴트의 상태가 그리울 지경이다. 안 본 눈 삽니다. 


이 어려움은 처음 해보는 카피라이팅 미션 보다도 어렵고, 통 말이 없는 사람들을 말하게끔 질문하는 모임장 역할보다도 어렵다. 어떤 한 사람과 대화를 잘해보자는 의지에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퇴사를 하고 소속이 없어 처음 겪는 여러 가지 난관들, 사회생활을 하며 부딪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제대로 된 대화 상대를 찾는 것보다는 아주 쉬운 축에 속한다. 요새 내가 겪는 어떤 어려움보다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2023년을 살아가는, 30대 싱글 미혼 여성에게는 이렇게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지만 말을 아예 않기에는 억울한, 말 못 할 사정이 꼬릿꼬릿하게 고여있다. ”남자요? 트라이는 했으나 잘 안 되더라고요. “라고 슬라이스 치즈 한 장처럼 담백하게 요약하기에는 고르곤졸라나 에멘탈 치즈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풍미와 모양새의 경험들인 것. 


이러니 사람보다는 새가 궁금한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같이 심야영화를 보고 이야기할 사람(그러나 본인이 더 아는 척하지 않아야 함), 새를 같이 구경하고 새 색깔이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할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지와 충동이 가득한 냉장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